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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와 트라우마

by 고래배꼽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한다. 아이는 유치원에 갔다가 같은 시간에 돌아오고 우리는 하루하루를 소소한 것들로 채우고 잠자리에 든다. 주말에는 어김없이 어떠한 '활동'을 제공해야 하고 삼시 세끼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은 이 동네는 아침 점심 빵만 먹는 동네라 빵조각 하나에 파테(간요리) 같은 것을 쓱 발라주고 오이 몇 조각 잘라주면 한 끼라고 할 수 있다. 어떨 때는 감기가 걸리기도 하고 한동안 기침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일 년 내내 꽤 건강한 생활을 유지했고 이러한 일상은 안정적으로 운영되었다. 의사는 감기 걸린 아이들에게 전혀 약을 주지 않으니 대부분 그냥 버티며 넘어간다. 우리도(부모도) 한 두 번쯤 크게 앓았는데 그 이후에는 그렇게 잘 아프지 않았다. 유치원은 오전에 자유롭게 앉아 아침을 함께 먹을 수도 있었고 아이와 조금 천천히 인사를 할 수도 있었다. 다른 유치원들은 노르웨이 인들이 대부분이라는데 우리 아이가 다니는 곳은 대학과 연계되어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을 수용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우리에게 아주 편안하고 웬만한 일들은 원만히 해결이 된다.


이런 '원만한' 생활이 노르웨이 사람들의 중심이 아닌가. 이렇게 안락하고 편안한 것이 그동안 한기가 끊임없이 들어오던 인생에 온기가 된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한국어를 꾸준히 아이에게 하면서 나에게 돌아오는 한국어가 없는 것을 자꾸 느낄 때에는 내가 거부된 것 같고 혼자 덜렁 남겨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안락한 생활을 나의 피가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너무나 불편하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평화로움이. 나의 아이는 아마도 나와는 다르게 긍정적인 어린 시절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그다지 긍정적인 어머니로 기억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마치 나의 어머니처럼. 급하고, 부정적이고, 무례하고, 어색한.


예전에 나는 나의 부모와의 관계를 이해하였고 그로 인한 내 삶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끊어냈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것은 또다시 끊임없이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며 다시는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들이 떠다니고 영영 알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서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는 것이다. 누구는 내가 산후우울증을 늦게 겪는 것이라고 예상했고. 누구는 내가 많은 일들을 한 번에 겪어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나의 상태를 다양한 이유를 들어 논리적으로 이해했지만 그것을 감정적으로 소화하지는 못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생활 속에서 무언가 속이 쓰리다는 것은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더욱 남에게 굳이 끄집어낼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서른다섯이 되어서 우울함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멀리서 보면 인생의 매우 작은 한 단면의 이야기일 것이다. 커다란 우주를 생각하고 아주 작은 미시 세계를 생각하면 나 스스로를 조금 잊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나를 조금 잊어버리면 다시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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