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인지 화인지

by 고래배꼽



노르웨이에 이민 온 지 거의 2년이 다 되어간다. 아직도 나와 남편은 이 사건에 대해 다툰다. 나는 왜 내가 여기에 있는가에 대해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주 잘못된 결정을 한 것은 아닐까.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해 후회할 가치는 없는데 왜 이렇게 쓰린가. 아이를 낳고 나서 몇 년간은 제정신이 아니라는데 이런 커다란 결정을 너무 빨리 내린 것을 아닐까. 그러나 저러나 어찌 되었건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일을 집에서 혼자 하다 보니 완전히 인간관계에서 고립된다. 아이를 따라 매일 같은 시간에 맞추어 생활하니 무언가 다른 일을 해낼 힘도 의지도 없다. 전혀 영감을 받을 일이 생기질 않는다. 즐거운 일도 없고 흥분되는 일도 없다.

노르웨이어를 배우고자 하는 동기가 전혀 생기지 않는다. 독일어를 해서 대충 알아듣고 영어로 대답해도 소통이 가능하니 그저 시간만 지나가고 있다. 독일어를 배울 때와 같은 열정, 의지, 언어에 대한 호기심 등이 전혀 없다. 독일어 배울 때는 영화와 노래와 모든 장르의 문화를 찾아보았는데. 노르웨이는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다. 외국생활 한지가 하루 이틀인가. 독일에서도 오 년쯤 지나선 빵도 그만 먹게 되었다.

아무리 산을 올라가고 낚시를 하여도 헛헛한 마음이, 나의 정체된 인생에 대한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는다. 내 나이 삼십 대 중반. 지금 독일에 있었으면 커리어를 다시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 노르웨이의 사회는 너무나 작아 보이고 너무나 고요하며 새삼스럽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가장 커다란 문제는 '동기'의 부제이다. 살아가기 위해 나는 동기가 필요하다. 아마도 사람들 모두가 동기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고집이 세고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해야 하는 성격의 나인데 하고 싶은 일이 단 하나도 없으니 나의 일상은 완전한 회색이 되었다.


이제 막 세 살이 되어가는 아이는 떼쓰는 일이 늘어가고 소리를 지르고 바닥에 드러눕는 일도 잦다. 신생아부터 1살까지는 나는 세상의 모든 행복을 맛본 사람 같았다. 잠도, 모유수유도, 전부 다 힘들거나 문제 되지 않았다. 그저 웃거나 우는 아이를 달래고 살결을 맞대어 사랑을 주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하자 이 전과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 찾아온다. 이제는 정말로 내가 어떠한 인간이고 어떻게 자랐는지 테스트하는 것 같다. 소리 지르는 아이에게 똑같이 소리 지르지 않는 것. 감정적으로 얼굴이 굳고 노려보는 것. 무섭게 강요하는 것. 이러한 욕구가 흘러나온다. 내 남편이나 다른 사람들은 아이에게 언성 높이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이 자란 방식이기 때문일까. 나의 이런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부모에 대한 미움이 커진다. 미움은 흘러넘치고 나는 나의 미움이 다른 이들을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친다. 가장 어려운 것은 아무리 끊임없이 한국말을 내뱉어도 나의 아이는 나에게 대답해주지 않는 것이다. 아이의 세상에서 나 혼자 다른 언어를 쓰는 것은 아이에게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겠다. 그러므로 아이 탓을 할 수는 없으나 매일같이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기다리며 나의 언어도 나처럼 고립된다.


욕구의 부재는 나를 좌절에 더 쉽게 무릎 꿇게 만든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솟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자포자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는 자유로워질 것인가? 분명한 것은 적당한 일을 하고 적당한 집을 사서 적당한 인간관계를 맺고 산다고 해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는 나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고 하였다. 정신과 상담을 찾아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집 근처 수영장에서 연간 회원권이나 끊어볼까 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깨고 나가는 것이 가장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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