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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데드 Jul 06. 2023

쉬엄쉬엄

간헐적인 걸음

나는 앞으로 네이버블로그에 일기를 쓰지 않기로 했다. 아무도 강요한 바 없지만, 블로그를 켤 때마다 일일이 보고식으로 올려야 한다는 강박에 지쳐 귀찮아서 올리지 않은 이유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인생을 살면서 최대로 집중해야 하는 지점이 다른 방향으로 뺏긴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다. 같잖은 농담, 이를테면 피상적인 대화, 문구와  허접잣거리 기사들에 길들여져 인생의 본질을 탐구하기 바쁜 때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잠시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자신의 길을 갈고닦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아류다운 아집을 가진 반대자들의 만류와 방해공작 같은 상황적 장애가 있어 제 갈길을 정진한다는 것은 열정의 기본용량을 상회하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 용기를 얻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선 그 용기를 얻으려면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자.


용기를 얻으려면 첫째로 만성적인 어슬렁거림, 즉 배회에서 얻어지는 자연의 힘이 필요하고, 둘째로 정신과 육체의 고통이 뒤따르는 인내의 힘, 셋째로 문제에 대한 심사숙고 후에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통달의 힘이 필요하다. 그것이 내적동기의 근본이 되는 '용기의 우물'을 형성하므로, 우리가 현실에서 검은 벽을 마주할 때마다 단백질 보충제처럼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어 마시는 것이 좋다. 셰익스피어는 하루 약 25리를 걸어 다니면서 육체적 및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동시에 뇌에 자극을 자주 주었다고 한다. 달리가나 걷기, 경보 등 신경에너지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고 무궁무진하다. 또한 걷기 운동은 매우 간단하여 누구나 실행하기 쉽다. 걷기 운동은 자체로 신경전달물질의 활동을 촉진시켜 주며 뇌신경세포를 확산시켜 그 끝에서 퍼지는 갈고리들을 그물처럼 엮도록 도와준다. 크로플 빵 무늬처럼 엮인 신경그물은 접점에서 '시너지'라는 병렬구조적인 에너지를 새롭게 창조한다. 이들은 창의적 사고와 능동적 사고를 극대화시키고, 효율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가소성을 발현한다. 기존에 얻은 경험들이 가로와 세로, 대각, 점과 선분이 되고 이렇게 만들어진 서로소가 어떤 방식으로든 성립이 될 때마다 독립적인 '신식 사고방식'을 구축한다.

신식 사고방식이 햄버거 패티와 참깨빵처럼 함께 얹어져 다른 아이디어가 그걸 한입에 먹어버린다면? 이것이 배회와 방황에서 얻어지는 신식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생각의 뒷이야기가 나쁠 수 있지만, 그만큼 시도에 대한 리스크를 감내할 불굴의 용기가 생긴다. 이 영역에 머무르면 불시에 플랜  B를 세우는 순발력이 생겨나 사방이 벼랑이어도 날지 못하는 대신 안전하게 절벽에서 내려오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정신과 육체의 수양은 위험에 뛰어드는 것으로부터 생겨난다고 볼 수 있다. 아무런 위협에 맞서려는 시도도차 하지 않으면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는 잠재적인 성장 가능성마저 저버리게 된다. 그러나 세상은 인생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널려있다. 안정적인 상황을 전적으로 지향하는 안정추구형, 위험을 무릅쓰고 감내하는 리스크테이커형, 상황이 위협적이면 안정을 추구하다가도 편안해지면 리스크에 뛰어드는 중립운영형이 있다. 나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리스크테이커형에 속한다. 누군가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엔 안정형일 수 있겠지만 내 삶은 전반적으로 위협적이고 요동이 심하고 불안하다. 사실, 지금도 협곡 위 두 개의 절벽을 연결하는 썩은 동아줄에 매달린 위급한 원숭이 신세나 다름없다. 그런데 어디서 길어온 건지 모를 이상한 용기가 삶을 함부로 포기하지 말라하니, 어찌 무책임하게 윗 절벽으로 향한 유일한 줄을 놓는단 말인가?

다음 무대로 옮기려면 나의 어떤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 현재 내가 안고 있는 가장 불필요한 두려움, 후회를 '어느 정도'가 아닌' 전부' 두고 가야 가벼운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다. 애매한 태도로 삶을 살아가면 그 인생은 사회로부터 애매한 것으로 치부되고 동시에 멸시와 미움을 산다. 또한 고민을 길게 하면 과정의 무게에 짓눌려 결국 포기해 버리는 상황이 발생하므로 '자기만의 타임라인'을 확실하게 정해야 한다. 비슷한 상황의 통달이 지속되면 108 번뇌의 부비트랩에 연쇄적으로 갇히게 되므로 단 한 번의 행동을 하는 최종적인 결과, '시도'의 속성을 지님과 동시에 해결의 말로로 보답할 가능성이 높은 '행동'을 불러들이는 연습이 시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시 요구되는 것이다.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통아대를 이마에 두른 건장한 묶음머리의 여성 혹은 올백머리의 남성이 땀에 젖은 운동복을 펄럭이며 트랙 위를 힘차게 달려가고 있다. 탓, 탓, 탓. 도움닫기 트랙 끝에 폴을 바르게 세워 전신의 힘을 아래로 내보낸다. 팔힘으로 폴을 지지함과 동시에 다리를 앞으로 점프, 허리가 장대에 데이지 않게 몸을 최대한 앞으로 당겨 무사히 매트에 착지.


발 구르기-도움닫기- 점프-착지.


환호가 쏟아지건 말건 우선 앞을 바라보자. 내가 제대로 착지했는지. 하늘을 보고 그 어떤 말을 해도 좋다. 감사하다는 인사건 왜 나를 떨어뜨렸냐는 부정적인 말이건 무슨 말이던지 좋다.

적어도 시도는 했으니까 나를 향한 박수만은 칠 줄 아는 자신이 되어보자. 앞으로 쭉 그렇게 되면 좋고.


태블릿에 긴 글을 쓰는 오늘이 처음이다. 노트북을 등에 메고 다니기가 너무 무거워 들고 다니기 편하고 휴대하기 쉬운 이 기기로 작업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블루투스 키보드가 있으면 작업하는데 훨씬 편하다. 오늘은 아쉽게도 준비성이 철저하지 못해 챙겨 오지 못했다. 손가락을 세우며 불편하게 쓰는 독수리 타법보다 양손목 모두 편안한 기본자리 타자가 더 낫지 않은가? 육체적으로 일을 하는 시간은 늘어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이 시간이 턱없이 적어졌지만 앞으로의 '글쓰기 작업'은 이 태블릿에 익숙해짐을 시작으로 구조적인 발전 흐름이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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