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데드 Dec 29. 2023

낡은 외투

06

새해가 다가온다. 좌우지간 좌충우돌이었던 나의 한량 같은 20대를 돌아본다. 나에 대한 고찰이 다시금 필요하거니와 어쩌다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 현재의 나는 정말로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지를 재검토해야 했다. 잘 다닐 것만 같았던 대학교는 돈 부족으로 중퇴했고, 어렵게 구한 집은 최대한 유지하려 하고 있어 이런저런 일을 마다하지 않고 시고 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결국 이 혼잡한 여정이 끝날 믿음으로 내일을 기대한다. '규칙적이게 살지 않음'이란 결국 나를 '불안이란 지옥에 살게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다.


마침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일기 쓰는 걸 잠시 중단했다. 지치지 않는 무한의 글쓰기는 흐지부지 인 상태로 펜을 잡는 것조차 어려워졌으며, 그로 인해 사람을 믿는  또다시 어렵게 되었다. 수차례 겪은 사기로 인해 금전적으로 궁핍한 마당에 나 이외의 타인을 거의 적으로 간주할 즈음 극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건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약으로는 말할 것도 없겠다. 그러나 내겐 가족 같은 사랑이 있다. 말없이 뒤에서 안아주는 사랑이 있음에 불안에 젖어 탁한 용기나마 내둘러본다.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를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역사와 그 사람이 선택한 과정의 이유쯤은 들어봐야 되지 않을까. 오늘부터 다시... 처음, 또다시 반복되는 처음처럼 마음의 잔에 독한 글을 따라보자.


[도구는 대체 가능한 것이지만 존재는 대체 불가능한 대상이다. 어머니가 교양이 없다고 해서 어머니를 바꿀 수 없고, 아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아들을 바꿀 수는 없다. 더 뛰어난 미모와 인간성을 가진 존재로 나의 애인을 바꾸고 싶다면 이미 그녀는 나의 애인이 아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그녀를 받아들일 때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다.]


- 김보일 저.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 2 <과학 편> 99p


존재를 바꾸려 하지 말고 존재를 받아들이되 더 가까이 있어보면 어떨까. 마음처럼 바뀌지 않을 대상에 힘주어 나의 에너지를 쏟기보단 지금의 나를 바꾸는데 힘을 더 쓰는 편이 오히려 더 쉽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의 가족관계증명서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찾기를 포기했다. 어머니 역시 주민번호가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되도록이면 찾아서 만나고 싶다. 친모의 곁에 머물러 '낳아줘서 감사해요'라는 말만이라도 하고 싶다.


존재의 가치를 상실한 지금 나는 무얼 바라고 어머니를 보겠다고, 대성공하겠다고 호언장담했을까. 인생은 빌어먹을 정도로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나의 태도는 바꿀 수 있다. 시도는 충분히 해 볼만하다. 그것이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해를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애착 손상에 대해 공부하기에 앞서 인생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 지금 결정한 나의 선택이 대체불가능한 존재라면 앞으로의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질까?


새해에는 새로운 목표, 투두리스트와 같은 계획을 세워 다시 이어나가는 것도 좋다.

그러나 푸석해진 머리는 지식의 갈증으로 비쩍 말랐으며 빛바랜 눈과 입술은 헛것을 보고 논한다.  

내 영혼의 다리는 처참히 부러졌고, 매 걸음마다 힘겨운 호흡에 죽음이 머지않게 느껴진다.


이제 낡은 외투를 벗자.


부러진 다리를 목각과 함께 동여매자. 습관적으로 가시 돋는 목을 피로 축이고 진실된 땀을 흘리자.  


슬프고 지친 마음을 뒤로하고 새로운 나를 입자.


이지미 출처 : istockphoto.com

금요일 연재
이전 05화 기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