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전보다 마음이 먼저 읽히는 순간들
약국에 있다 보면
내가 누군가를 돕는 입장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몸이 불편하거나, 마음이 지친 사람들에게
약을 건네며 나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믿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끔은 환자들에게서
제가 더 많은 것을 배웁니다.
며칠 전, 평소 자주 오시던 할머니 한 분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약국 문을 여셨습니다.
손에는 병원 처방전이 들려 있었고,
그보다 더 눈에 띈 건 주름진 얼굴에 번진 미소였습니다.
“약사님, 저 많이 좋아졌어요.
덕분에 당 수치가 많이 내려갔어요.”
그 한마디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제가 한거라곤 처방에 맞게 조제한 것 뿐이지만,
저의 수고로움도 알아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했습니다.
다른 날엔, 항암 치료 중이라
항상 모자를 쓰고 오시던 분이
그날따라 밝은 목소리로 말하셨습니다.
“오늘은 바람이 참 좋아요.
이런 날엔 그냥 살아 있다는 게 고마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무미건조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닌,
1분 1초라도 삶을 느끼는 태도를 배웠습니다.
우리는 늘 해야 할 일과 채워야 할 일상에 묶여
그저 하루를 버티듯 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약국 카운터 너머에서 만난 분들은
그 하루를 살아내는 법,
그리고 작은 것에서 감사를 찾는 법을
저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결국 이 일은,
약을 파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배우는 일이라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처방전을 건네받을 때마다
그 종이 뒤에 담긴 누군가의 하루를
함께 읽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