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짧아지면, 마음이 깊어진다

차갑지만 따뜻한, 그 사이 어디쯤에서

by 도민하

요즘 약국 문을 여는 순간,

제일 먼저 들어오는 건 차가운 바람입니다.

가을의 부드러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깨를 움츠리게 만드는 공기가 스며듭니다.

초겨울이 가까워졌다는 신호겠지요.


해가 짧아지니 하루도 조금 더 빨리 끝나는 것 같습니다.

퇴근 준비를 하기도 전에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고,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가로등 불빛이

왠지 더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확실히, 초겨울은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더 뚜렷해지는 계절이에요.




예전에는 이런 변화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늘 바쁘게 뛰어다니고,

하루를 넘기기에도 정신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서른이 되고, 약국을 운영하게 되고,

조금씩 삶의 속도가 달라지면서

계절의 변화가 마음 깊숙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의 냄새가 변하는 것도,

사람들의 옷깃이 조금씩 높아지는 것도,

떨어진 낙엽 위로 가볍게 밟히는 소리까지도

이상하게 또렷하게 들립니다.

마음이 깨어 있다는 증거일까요.

아니면, 마음이 조용해졌다는 뜻일까요.




초겨울 문턱에 서면

항상 비슷한 감정이 밀려옵니다.

쓸쓸함과 편안함이 공존하는 묘한 기분.

뭔가 끝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새로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한,

그 두 감정 사이 어딘가에서 잠시 머무는 느낌입니다.


낮에는 여전히 분주하게 살아도

해가 지고 난 뒤의 공기 속에는

도무지 설명하기 어려운 차분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 고요함이 저는 좋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

그 모든 것을 잠시 품어주는 계절이니까요.


아마 초겨울의 고요는

우리에게 잠시 멈춰서라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너무 빨리 달리지 말고,

조금 느리게 걸어도 좋다고.

기온처럼 마음도 천천히 식혀가도 괜찮다고.




요즘 저는 약국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흐르는 차가운 공기를 일부러 더 깊게 들이마십니다.

그 순간마다 묘하게 마음이 가볍습니다.

오늘 하루가 분주했고 버거웠더라도

초겨울의 공기가 작은 위로처럼 다가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계절을 조용히 좋아합니다.

화려하지도, 시끄럽지도 않은

아주 작은 고요의 계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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