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갔지만, 한번씩 생각나는 인연에 대한 단상

그 시절의 나를 잠시 안아주던 얼굴 하나

by 도민하

시절인연이라고 하죠.

각자 삶의 궤적이 바뀌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무 이유 없이 생각이 납니다.

그 사람, 잘 지내고 있을까.




며칠 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후배님께서

제게 고민을 남겨주셨습니다.

신입이라 실수가 잦은 것 같아

스스로를 많이 책망하고 있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반복되는 실수로 자기 효능감을 잃어버렸던

옛날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지금이야 그 시절을 돌아보며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왜 저를 탐탁지 않게 여겼는지도 이해가 되고,

나 역시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뒤늦은 아쉬움도 남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납득할 수 없는 업무를 감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참 많이 우울했고,

매일이 버거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작은 임무 하나를 제대로 해내지 못해

주변 사람들이 고생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사람은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더군요.

나의 실수로 누군가가 피해를 본다는 사실이

제 자신을 더욱 미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조직에 새로 들어온 분이 있었습니다.

중국인이었고, 저보다 다섯 살이 어렸습니다.

서로 서툰 영어와 번역기에 의지해 소통했죠.


제가 많이 힘들어 보였는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제가 조심스럽게,

‘나의 실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더니

그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 실수는, 수습이 되는 실수인가요?”


지금 다른 사람들이 수습하고 있다고 답하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습이 되는 실수라면 괜찮아요.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되잖아요.”


그리고는,

아주 담담하게 빙긋 웃어주었습니다.


마음 둘 곳 없던 그 조직에서

그 당시 유일하게

제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떠난 뒤에도

몇 번은 안부를 주고받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약사 국가시험,

약국 운영,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삶에 치이다 보니

어느새 그는

조용히 추억 속 인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연락이 끊어졌다고 해서

인연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시절의 나를

잠시라도 덜 외롭게 해주었던 기억은

이렇게,

아무 예고 없이 다시 떠오르니까요.


아마 그 사람은 모를 겁니다.

그날의 짧은 말 한마디와 웃음 하나가

한 사람을 얼마나 오래 버티게 했는지.


그래도 괜찮습니다.

지나간 인연이지만,

지금의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그 사람을 조용히 마음에 남겨두면 되니까요.


가끔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한번씩 생각나는

인연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가끔은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읽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