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으로 버텨온 시절을 지나
여느 때처럼 유튜브를 서핑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쇼츠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완벽주의를 내려놓을 때, 인생을 조금 더 잘 살 수 있다는 내용이었죠.
그 영상을 보는데,
한때 ‘완벽’이라는 허상이 실재한다고 믿으며
스스로를 혹사시키던 어린 시절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학창 시절의 저는 늘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으로 살았습니다.
이번 시험에서 성적이 잘 나왔다고 해서
다음번에도 잘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으니까요.
언제든 미끄러질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매번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잠을 줄이고, 식사 시간을 줄이고,
공부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을 늘리려고 애썼습니다.
그 당시 저의 세계에서는
공부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면
이 세상에서 엉망인 사람이 되는 것 같았거든요.
불안은 제 공부의 원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공부 기간이 길어질수록
저는 점점 더 피폐해졌습니다.
문제를 하나 틀리는 일에도 크게 흔들렸고,
모르는 문제가 나타날 가능성 자체가 두려워
평소에 ‘완벽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해도
시험지 앞에 앉으면
모르는 문제는 늘 몇 개씩 나타났습니다.
지금의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준비 기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고
시험 날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아, 이건 내 영역 밖이었구나’ 하고
조용히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그렇게 아슬아슬했던 학창 시절을 지나
서른의 초입에 들어선 지금에서야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완성도만 갖추고 있다면
그 상태를 믿고 한 걸음 나아가도 괜찮다는 것,
부족한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채워 넣어도 된다는 것을
조금 늦게 배웠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마음이 한결 편안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처음부터 완벽해야 한다는 욕심이 들지 않습니다.
일단 시작해보고,
부족한 부분은 살아가면서 고쳐가면 된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조금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결국 여기까지 왔다는 것만으로
지금의 저는, 그 시절의 저에게
괜찮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