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을 버티게 해주는 것

생강쌍화 한 병에 담긴, 보이지 않는 삶들

by 도민하

저희 약국에는

매일 저녁 6시쯤이면

생강쌍화 한 병을 사러 오시는

경비원 선생님 한 분이 계십니다.


날씨가 본격적으로 추워진 뒤로는

거의 빠짐없이 뵙는 것 같아요.

너무 자주 오셔서 이제는

밖에서 선생님이 걸어오시는 모습만 봐도

저도 모르게 생강쌍화 한 병을

미리 꺼내 놓게 됩니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요.


며칠 전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저녁 6시였습니다.

선생님은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셔서

늘 하시던 말로 말씀하셨습니다.


“생강쌍화 한 병이요.”


그런데 그날은

천 원짜리가 아니라 만 원짜리 지폐를

내미시더군요.


“잔돈이 있으면 그걸로 드리려고

한참을 찾았는데, 없네. 미안해요.”


괜찮다고 말씀드리려는데,

선생님은 말을 이어가셨습니다.


“밤에 이거라도 먹어야 버틸 수 있어요.

머리 털 나고 경비원 일하는 건 처음이야.

아, 이 일도 보통 일이 아니네.

정말 힘들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괜히 가슴 한쪽이 묵직해졌습니다.




사실 저는

경비원 선생님들을 보며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 경비원으로 일하고 계신 분들 중에

처음부터 경비원으로만

일해 오신 분은 많지 않겠지요.


그날 이후로는

혼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게 됩니다.


생강쌍화로 그날 밤을 버티시는

그 선생님도,

어쩌면 한때는 사무실에서

정해진 출근 시간에 맞춰 일하시던 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며

오랜 시간 한 직장에서 일하다가

정년을 맞이하고,

이제는 자녀의 결혼과

자신의 노후를 책임지기 위해

쉬어야 할 나이에도

다시 일을 시작하신 건 아닐까요.


그럴듯한 시나리오일 뿐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생각이

자꾸만 마음에 남습니다.


오늘도 저녁 6시가 되면

저는 생강쌍화를 한 병 꺼내 놓습니다.

그 선생님의 하루가

조금 덜 춥고,

조금 덜 고단했으면 하는 마음을

그 병에 조용히 담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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