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내가 20살 때의 일이다. 누구나 외관적인 모습과 다이어트에 관심 많을 나이.
친구들과 다 같이 모여 노래방에 갔다. 한참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탬버린을 흔들고 춤을 추며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그날따라 기분도 좋아서 더 신나는 음악에 몸을 맡기는 중, 뒤에서 들려오던 목소리.
‘쟤 봐봐, 다이어트 한다고 춤추는 척 뛰면서 칼로리 소모하는거 봐봐’
“야 오바하지 마”
그냥 즐겼을 뿐인데. 유난히 기분이 좋아서 오버를 좀 했을 뿐인데.
그때의 나는 한참 다이어트에 집착하느라 정말 중요한 가치는 다 놓치고 있던 시절이었다. 모든 일을 다이어트에 엮고, 스스로를 그 프레임에 가두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한들, 뭐 어때서? 내가 다이어트를 위해 춤을 추든, 다 같이 즐기자고 몸을 흔들든. 어차피 즐거우려고 모이는 자리인줄 알았는데 나만의 생각이었나보다. 그 당시, 그들을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도 다 같이 즐기는 자리라고 믿었던 것도 결국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돌아보면, 이미지 메이킹의 중요성도 느낀다. 물론 이미지로 먹고사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만년 다이어터’라는 프레임에 갇혀 친구들까지 나를 그렇게 바라보게 만들었으니까. 결국 그 이미지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일이었다. 억울해할 것도 없다.
그 후,
운동습관과 식습관, 간헐적 단식 등으로 노력해서 땀흘려 살도 빼고 원하던 몸매도 만들었다.
"너 다이어트 주사도 맞지 않았어?"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물론 다이어트에 집착하던 시절에 체지방 분해 주사를 맞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효과는 보지 못했다. 잠깐 효과를 봤다해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금방 다시 원상복귀됐다. 이제는 운동과 단식 등 건강한 습관을 몸에 장착하지 않은 이상 요요는 필연적인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내가 만들어논 프레임은 꽤 오래 따라다닌다.
그때의 내가 유혹에 흔들려 체지방 분해 주사를 맞았더라도 내가 10년이상 흘린 땀과 눈물, 노력의 가치는 변함없다. 난 그 노력의 가치를 믿는다. 내가 살아낸 시간을 믿는다.
따라서 그 말에 흔들릴 필요도 없다. 그때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