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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Dec 27. 2021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 탄생과 파괴의 굴레

영화 <에이리언: 커버넌트> 리뷰

1.개요

 우리에게 있어서 창조주는 부모 혹은 조물주(이하 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게 가질 수 있는 감정은 동경이나 증오 혹은 둘 모두라고 할 수 있죠. 자신을 만든 부모를 원망하면서도, 힘든 상황을 버틴 부모에 대한 동경을 가질 수 있고, 생명을 만든 신에게 경의를 표하면서도 피조물에게 시련을 준다는 점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 프리퀄 시리즈>는 이런 창조물과 피조물 사이의 관계에 관한 시리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창조주를 향한 경외를,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창조주를 향한 증오를 나타낸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 <커버넌트>는 자신보다 못한 점이 있는 창조주를 향한 경멸과 증오를 바탕으로 데이빗이 그릇된 이상향을 추구하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장점은 데이빗이라는 인물과 현시대의 공포를 잘 다뤘다는 점이고, 단점은 부주의하고 클리셰적인 인물과 제노모프의 신비감 상실이라고 생각합니다.


2-1. 데이빗이라는 인물

 이 영화는 "에이리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사실 데이빗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 모두 데이빗이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명확히 해줍니다. 데이빗이라는 인물은 본디 인간의 피조물 다비드상에서 따온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생부터 인간의 피조물이라는 것과 함께 인간을 본따 만든 존재라는 의미이기도 하죠.


 데이빗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는 한계인 육체적 정신적 불완전함을 이유로 본인이 더 우월하다고 여기는 존재이지만 인간과 같은 분노를 느끼며, 오지만디아스의 작가를 바이런으로 착각하기도 하는 등 정신적 불완전함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창조주를 증오하면서도 창조주와 너무나 닮은 데이빗의 모습은 인간의 성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왜곡된 이념이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영화의 결말부에 커버넌트호에 탑승한 인물이 데이빗인지 월터인지에 관해서는 논쟁이 많지만 저는 그 논쟁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데이빗이 탑승한 것이나 데이빗의 의지(혹은 데이터)를 계승한 월터가 탑승한 것이나 결국 인간을 필요이상으로 증오하는 왜곡된 이념을 가진 피조물이 창조주를 위협할 것이라는 영화의 메시지가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영화 오프닝과 엔딩에 나오는 신들의 발할라 입성연출을 대조는 굉장히 흥미로워집니다. 오프닝에서는 피아노로만 이루어진 연주였고, 엔딩에서는 오케스트라 연주가 흘러나오게 됩니다. 영화의 엔딩에서는 모든 것이 갖춰진 상황임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더 나은 육신을 가진 월터에게 데이빗의 정신이 들어있음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고 데이빗이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완전해졌음으로 해석하는 것도 충분합니다. 어느 쪽이 되었건 인간을 증오하면서도 인간과 닮은 데이빗이라는 캐릭터는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2-2. 현시대의 공포

 다양한 영화와 캐릭터는 그 시대 인물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바탕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1950년대에 제작된 고질라는 일본인의 핵에 관한 공포심에서 비롯된 캐릭터였고,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 제작된 <듄>에서는 빌런의 이름이 "블라디미르"였습니다. 1990년대에 제작된 <링>시리즈의 경우 원래 존재하던 우물 귀신과 비디오 영상 매체의 결합을 이뤄낸 공포 소재를 다루기도 하였죠.

 이처럼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본격적으로 인공지능에 관한 공포를 다루기 시작한 세대의 영화입니다. 20세기에 제작된 <에이리언> 시리즈의 경우, 인공지능 안드로이드가 악역으로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 비중이 에이리언이라는 크리쳐에 맞춰진 느낌이었다면, <커버넌트>의 경우에는 압도적으로 비중이 데이빗에게 향해 있습니다. 이는 인간보다 뛰어난 인공지능의 출현과 그로 인한 인공지능에 대한 경계심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2010년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관해 표현한 좋은 사례로 남을 수 있을 정도의 영화입니다.


3-1. 부주의하고 클리셰적인 인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혹평을 받는 대부분의 이유는 인물들이 부주의하고 클리셰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확인 행성에 착륙하여 탐사를 하는데 헬멧은 커녕 마스크도 끼지 않은 채 이동하다가 감염에 되는 인물들이라거나, 아직 안전이 보장받지 않은 상황에서 남여가 함께 샤워를 하다가 모두 살해당하는 장면이나, 일인이역 캐릭터를 이용해 인물들에게 혼동을 심어주는 요소 모두 그렇게 참신하다고 할 수 없는 장면들입니다. 

 이는 공포영화 장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클리셰적 요소로 여겨져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고, 영화의 개연성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에게는 몰입감을 저해시킬 수 있는 요소로 너무 편하게 촬영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장면입니다. 적어도 전작 <프로메테우스>처럼 방호복을 입고 탐사를 함에도 불구하고 불의의 사고로 감염되었다고 하는 전개가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2. 제노모프의 신비감 상실

 이 영화는 에이리언이라는 크리쳐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에이리언 시리즈>의 정식 프리퀄임을 제목에서부터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이리언이라는 크리쳐는 정체불명의 외계 생명체, 미지의 포식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에이리언의 기원을 밝힌다는 점은 에이리언 팬덤을 끌어모으기 쉬운 소재임은 확실하지만, 그로 인해서 캐릭터의 수명을 갉아먹는 행위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사례가 <진격의 거인>에도 있었는데요. 거인의 실체가 무엇인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지만, 그 실체가 밝혀지자 기존의 거인에게서 오던 신비감이 확연히 사라졌고 더 이상 극에서 일반적인 거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에이리언의 기원이 드러나자, 극에서 에이리언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격히 줄어들었습니다. 데이빗이 극의 중심에 서있고, 에이리언은 그저 장치에 불과해졌죠. 


 영화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데이빗이라는 훌륭한 캐릭터가 있기에 극이 크게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에이리언 프랜차이즈에서 에이리언이 활약하지 못했음은 굉장히 아쉬운 점이자 팬덤의 반발을 야기할만한 큰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마무리

 영화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적개심을 다룬 영화로 자신이 창조주보다 우월하다 여기는 피조물과 자신을 위협하는 피조물에게 창조주가 갖는 경계심을 효과적으로 다룬 나쁘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허나 오랜 전통을 지닌 크리쳐의 매력을 반감시킨 점과 너무 클리셰적이고 무성의한 전개는 이 영화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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