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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Jan 03. 2022

메타버스적 세계관 속 인간의 자성에 관하여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 리뷰

1. 개요

 저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을 좋아합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제 인생 최고의 애니메이션 중 하나였고, <늑대아이>까지도 매우 좋아합니다. 두 작품 이후 그의 커리어가 비평적인 측면에서 하향세를 겪고 있고, 한국에서는 인기가 미야자키 하야오, 신카이 마코토에 밀리는게 현실입니다. 오늘 다룰 <용과 주근깨 공주> 역시 한국에서 크게 인기를 얻지 못한 영화였습니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개봉 사실조차 알지 못했을 정도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장점은 1. 환상적인 시각효과, 2. 익명성과 잠재력 묘사, 3. 사운드트랙이고, 단점은 1. 산만한 스토리텔링, 2. 매력적인 조연 방치, 3. 이상주의적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2-1. 환상적인 시각효과


 용과 주근깨 공주의 시각적 효과들은 환상적입니다. 현실세계에서의 모습들은 기존 작품들의 범주 이상으로 크게 뛰어나다고 평하기는 힘들지만, 메타버스인 U안에서의 시각적 효과들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공간 자체를 구성하는 그래픽의 경우에는 평범하였지만 그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캐릭터들은 상당히 매력적이었고, 고래를 이용한 연출이나 무대 자체를 꾸미는 그래픽, 용의 격투 장면 같은 부문에서의 그래픽은 훌륭했습니다. 특히 OST인 U를 통해 시작되는 오프닝은 고래를 탑승하고 있는 벨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U라는 메타버스적 공간이 가지고 있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잘 표현해냈습니다. 또한 무대별 드레스 역시 컨셉이 겹치는듯한 의상이 있을지언정 전반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다만 용의 성의 그래픽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용의 성에서의 화면은 화면 중심부에 초점을 맞추고 주변부의 경우 옛날 3D화면처럼 RGB를 분리시킨 느낌의 화면입니다. 이런 점은 용의 성이라는 공간이 다른 메타버스 공간과는 차별점이 있는 특별한 공간임을 드러내는 시각적 장치였지만, 셀로판지 3D 효과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며 눈에 피로도가 심했습니다. 극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용의 성에 투자했기에 눈이 조금 아플 수 있는 효과가 사용된 점은 약간 아쉬웠습니다.



2-2. 익명성과 잠재력 묘사


이 영화의 주제 의식 중 하나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본질적으로 U는 인물의 잠재력을 끌어올릴 뿐 그 이상의 것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 것으로 말을 합니다. 저는 익명성 혹은 인터넷 공간이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현실의 문제를 직면하고서는 할 수 없었던 행위를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니까요.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타인과 집단의 영향을 필연적으로 받습니다. 이처럼 사회적 압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본인의 생각 혹은 꿈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적습니다. 하지만 익명성의 뒤에서는 그것이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당사자의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악플러들이 생기고, 익명의 힘을 빌어 용기를 내는 밀고자나 작업물을 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지요.


 인터넷 혹은 가상 공간은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을 공간이기도 하면서 추악한 내면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공간입니다. 현대 인터넷 혹은 SNS를 통해 유명해진 인물(대표적으로 lil nas X)의 잠재력이나 능력을 과소평가할 이유는 없지만 SNS로 인해 이미지를 깎아먹은 많은 인물들의 과오를 애써 두둔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제작자가 가지고 있다고 느껴졌고 이는 벨과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을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2-3. 사운드트랙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OST역시 훌륭했습니다. 극의 오프닝에 등장했던 U의 경우에는 약간은 탱고 느낌이 나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내 오프닝의 파괴력에 큰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해서 들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던 노래이기도 하고요. 결말부에 등장하는 노래인 <멀리 떨어진 그대에게>의 경우에는 약간 시간을 끈다는 느낌이 있어서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곡의 완성도는 높았습니다. 극중 등장인물들의 마음이 공명하여 연등과 같은 불빛으로 변화는 장면과 이후 고래가 벨을 태우고 그 금색 불빛의 바다를 헤엄치는 듯한 연출은 아름다웠고 약간의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이런 멋진 장면의 파괴력을 높여준 것은 누가 뭐래도 멋진 노래였습니다. 이처럼 시청각적으로 멋진 이 영화가 완벽했다면 좋았겠지만, 아쉬운 단점이 너무나도 많이 존재했습니다.


3-1. 산만한 스토리텔링

 제 기준으로 이 영화의 단점은 주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스토리텔링입니다. 보통의 좋은 영화들은 간단한 주제로 축약이 가능합니다. 하나의 주제를 바탕으로 다양한 요소를 사용하고 그 깊이를 더해나가는 방식을 사용하는데요. 하지만 이 영화는 중심 주제가 불분명합니다. <미녀와 야수>를 연상시키는 사랑과 보호라는 주제와, 인터넷 상에서의 심판(이하 네티즌 수사대)의 윤리적 문제, SNS 스타의 말로와 같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 깊이가 현저히 낮다는 것이 단점입니다.


 이는 지난 시간에 다룬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와 공유하는 단점이자, 감독의 전작 중 하나인 <괴물의 아이>에서도 나타난 단점입니다. 이런 단점이 몇년째 이어지는데 이쯤되면 감독의 커리어 하이들은 감독의 역량 덕이 아닌 각본가인 오쿠데라 사토코의 역량이 아니었을까하는 의심까지 들게 합니다.


3-2. 매력적인 조연 방치

 이 영화에는 저스티스라는 집단과 저스틴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U세계의 평화를 위해 문제를 일으키는 이의 실제 모습을 공개하는 인물과 집단인데요. 이들이 하는 행위는 정의로 포장되어있지만 누구도 그에게 그러한 권력과 당위성을 부여한 적 없고, 그들의 자발적이고 독단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네티즌 수사대와 비슷한 집단입니다. 그러한 이들의 등장은 이용자 수가 많은 집단에서는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그들의 행위가 온전히 도덕적이라 할 수 있는가? 그들은 사리사욕이 아니라 온전히 정의를 위해서만 힘을 사용한다고 할 수 있는가?"에 관한 질문도 뒤따르게 됩니다. 이런 인물을 바탕으로 그들의 처벌 원칙과 모순점을 보여주며 현대 사회에 관한 비판도 가능한 캐릭터인데, 작중에서는 너무나도 단편적인 악역에 가깝게 묘사가 됩니다. 캐릭터가 가진 잠재력이 상당히 높기에 더욱이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죠.

 이는 페기 수라는 인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벨의 등장 이전 U세계관 최고의 인기 스타였다가 벨의 등장 이후 몰락해버린 캐릭터죠. 이는 SNS라는 관심을 빠르고 쉽게 받을 수 있는 공간에서 그만큼 빠르게 잊혀진 인물의 현실을 다룰 수 있는 좋은 캐릭터입니다. 또한 언젠가 잊혀지게 될 벨의 미래로도 볼 수 있는 인물인데요. 그런 페기 수는 오프닝 그리고 엔딩을 제외하고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잘만 활용한다면 블랙스완에서의 선대 발레리나와 같은 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인물인데 뭔가 안타깝더군요.


 이처럼 이 영화는 좋은 캐릭터성을 가진 조연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서사를 끌어올려 지금보다 더 좋은 각본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조연들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불분명한 주제의식과 산만한 스토리텔링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좋은 캐릭터들을 그저 방치하고만 있습니다.


3-3. 이상주의적인 결말

작중 결말 혹은 결론들이 너무 이상주의적이라는 점도 저에게는 단점으로 다가왔습니다. 언베일 되며 본래 얼굴이 드러난 벨을 향해 모든 이들이 찬사를 보내며 그녀를 응원하는 듯이 표현하지만 초반부에 말했듯이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녀를 비판하는 존재들은 있습니다. 그것이 익명성의 폐해이니까요. 그렇기에 "그녀가 앞으로 행복하게 실제 생활과 U에서의 생활을 가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던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가정폭력을 일삼는 인물의 앞에서 그를 응시한 것 만으로 아이가 용기를 얻고 해당 인물은 도망치는 것이 너무 이상주의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돕지 못했습니다. 경찰이 온다 한들 아버지와 잘 대화한 정도로 끝날 수 있고, 아이가 부모에게 맞설 경우 더욱 심한 폭력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죠. 현실적인 관점에서 저런 결말은 어떻게든 극을 마무리 짓겠다는 느낌만 들뿐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4. 마무리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의 리뷰는 여기까지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호소다 마모루 커리어 상 최고의 영화로 꼽는 인물은 적을 것으로 보입니다. 시각적 청각적 성취의 경우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와 같이 기타 애니메이션에 비해 몇 년 정도 앞선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각본 상의 허점이 좀 부각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시각적 청각적 요소들은 분명히 후회하지 않을 수준의 영화들이니 볼 가치는 충분한 영화라고 생각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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