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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Jan 07. 2022

할리우드 CG로 조각한 셀 아니메의 향취

영화 <퍼시픽 림> 리뷰

1. 개요

 이 세상에는 다양한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다양한 영화 제작 의도가 존재하죠. 어떤 영화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 어떤 영화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그리고 어떤 영화는 정치적 프로파간다와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 제작되곤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일본 괴수물과 메카물을 사랑하는 매니아층을 위해 제작된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 <퍼시픽 림>은 상당히 특이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서브컬쳐에 감명을 받은 멕시코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미국영화라는 점도 그렇고, 이 영화가 추구하는 바가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전작과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도 포함할 수 있겠습니다. 혹자는 이 영화가 <판의 미로>와 같은 감독의 색채가 제대로 묻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혹평하고, 또 이 영화의 개연성을 문제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이들에게 이 영화는 말합니다.


 영화는 개연성이 떨어져도 충분히 멋질 수 있어

 제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장점은 1. 액션과 사운드, 2. 매니아틱한 디테일 요소를 꼽을 수 있겠고, 다소 아쉬웠던 점은 1. 개연성과 2. 가시성을 선정하겠습니다.


2-1. 액션과 사운드

 이 영화는 시청각적 요소가 가장 중요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봇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 기체가 출격할 때의 그 설렘과 웅장함을 묘사하기 위해 온 정신을 쏟아부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영화는 예거 관련 시청각적 요소에 큰 힘을 주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은 영화 극초반부에 집시데인저가 출격하는 장면입니다. 해당 장면은 웅장한 일렉기타 베이스 음악이 울려퍼지며 관객들의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한편 격납고 문이 열리고 서서히 그리고 묵직하게 집시데인저가 바다를 향해 걸어나가는 이 장면은 액션과 연출은 빠르고 화려한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우리에게 다시금 상기시켜줍니다.

 

 이런 점은 체르노 알파가 카이주 오타치와 전투를 벌일때에도 부각됩니다. 이 장면은 크림슨 타이푼이 격파된 이후 체르노 알파는 주먹을 서로 부딪히며 오타치를 향해 돌격하는 장면입니다. 이 부분 역시 평범하다면 평범한 장면이지만, 느리지만 무게감있는 움직임과, 낮고 웅장한 뱃고동 소리를 사운드로 배치함으로 멋진 장면을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가 제작비 절감과 새로운 시도를 목적으로 트랜스포늄을 통한 빠른 변신을 시도하다 팬층의 빈축을 산 점과 대비되는 점입니다. 이 영화는 액션에서 투박함과 무게감을 통한 매력을 잘 이끌어냈다고 할 수 있겠네요.


2-2. 매니아틱한 디테일 요소

 <퍼시픽림>은 고질라같은 괴수물과 건담같은 리얼로봇물을 좋아하는 이에게 맞춰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당 장르의 팬들은 이런 존재들이 실존한다면 어떤 메커니즘으로 움직이고 살아있을 것인지에 관한 여러 고찰을 합니다. (일례로 건담 시리즈의 경우 우주 공간에서의 인간형 로봇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AMBAC이라는 개념까지 만들었습니다.) 로봇의 경우 작동 연료는 무엇인지, 구동시 어떤 움직임을 보여줄 것인지에 관한 것부터, 괴수의 경우 태아기 혹은 유아기의 모습이나 습성, 외계 존재의 경우 몸의 구성 성분과 같은 점을 상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에는 디테일한 요소들이 잔뜩 숨어있습니다. 예거의 동력이 핵에너지인지, 전기에너지인지부터, 관절마다 디젤엔진을 사용했다는 점이나 멈춰서는 순간의 관절의 움직임까지, 메카물의 매니아라면 충분히 만족할만한 요소들이 곳곳에 포진되어있으며, 카이주의 경우 탄소와 최외각전자의 개수가 같은 규소 기반의 생명체라는 점과 태생을 통해 출산하는 모습이 묘사됩니다. 또한 카이주의 신체를 먹고, 기생충을 보관하는 존재들의 모습 및 그들을 신봉하는 모습까지 등장합니다. 이처럼 <퍼시픽림>은 해당 장르의 매니아라면 한번쯤 생각해보고 흥미롭게 상상해봤을 디테일적 요소들을 영화에 잘 녹여놓았습니다.


3-1. 개연성

 이 영화는 개연성이 부족합니다. 메카물 장르의 기본적인 문제부터 시작하여, 캐릭터까지 개연성에 관한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우선 장르적 문제입니다. 핵무기 사용의 제약이 생겼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굳이 비효율적인 인간 형태의 병기를 만들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이는 팔다리를 달고 있는 인간형 병기와 로봇을 다루는 장르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퍼시픽 림>이라고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는 파트입니다.

 

작중 마코와 롤리는 서로 호감을 갖고 정을 나누는 관계를 가지지만, 그 둘이 친하게 지내는 계기가 부족합니다. 원작에서는 서로가 무술 대련을 하며 서로의 행동이 읽히면서 잘 맞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는 묘사가 있다고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묘사가 너무나도 빈약합니다. 거기다가 동양인 여성 캐릭터 마코가 서양에서 생각하는 동양 여인의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도 비판거리이긴 합니다.


 허나 앞선 장점들처럼 이 영화는 해당 장르 팬들을 위한 헌정 영화에 가깝기에 이 파트는 장르팬들에게는 그렇게 큰 단점이 아닐 수 있습니다.


3-2. 가시성

 제게 있어서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바로 가시성 문제입니다. 이 영화는 1억 9000만 달러라는 결코 적지 않은 제작비(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보다 많은 제작비)가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CG의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서 예거들의 활동 배경이 대부분 밤이거나 심해로 설정하였습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CG의 어색함은 줄일 수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액션의 가시성이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이 단점을 부각하는 요소는 바로 주인공 예거 집시 데인저의 컬러링입니다. 해당 예거는 짙은 남색 계통의 컬러링을 지니고 있는데, 대부분의 활동 배경이 어두운 영화의 특성상 주인공 기체가 가장 가시성이 떨어지는 상황을 마주하고 맙니다. 사운드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잘 만든 영화의 요소가 가시성 문제로 색을 약간이나마 바랬다는 점은 상당히 아쉬운 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4. 마무리

 영화 <퍼시픽 림>은 메카물, 그리고 괴수물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헌정 영화입니다. 해당 장르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영화이면서, 시청각적 요소를 중시하는 분들께도 굉장히 추천할만한 영화입니다. 각본상의 개연성 문제를 상회할만한 장점을 지니고 있는 영화이지만, 그래도 개연성에서의 문제가 존재하는 영화이기에 개연성과 각본의 완성도를 중시하는 분들께는 추천드리기 힘든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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