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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Jan 10. 2022

시간의 굴레를 해탈하여 현실을 목도하라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 리뷰

1. 개요

 우리는 시간과 후회, 근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과거의 선택 또는 잘못에 매몰되어 현실을 살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현재만을 살고자하여 미래의 문제를 목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특정 시점에 집중하여 삶을 살아가라는 말은 어찌보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죠. 그런 우리에게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은 말합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너의 현실을 살아가라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의 장점은 1. 미쟝센과 메시지, 2. 에피소드의 리듬감, 3. 좋은 캐릭터성을 꼽겠습니다. 이번에는 딱히 단점을 지적하고 싶지 않네요.


2-1. 미쟝센과 메시지

 이 애니메이션은 훌륭한 미쟝센과 메시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총과 장미를 활용한 장면들이 굉장히 훌륭한데요. <카우보이 비밥>은 떨어진 장미꽃이 총격전이 지날수록 색이 뚜렷해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주인공 스파이크가 조직원과 싸울수록, 총격을 벌이고 심지어 죽어갈수록, 장미의 색은 뚜렷해지는 장면은 스파이크의 삶의 이유와 가치가 어느곳에 있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장면입니다. 스파이크는 싸우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살아가는 이유를 느끼는 캐릭터입니다. 일반적으로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현상금을 버는 행위는 그에게 꿈일 뿐, 현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스파이크의 삶의 방식이 일반적인 시각으로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개인마다 다른 현실을 직시하는 것, 그리고 그것에 맞서 싸우는 것이 이 애니메이션의 기본 메시지입니다.


 이 애니메이션에서의 총(혹은 무기)은 기본적으로 무력의 수단임에 더해서 자기고백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스파이크는 총을 통한 전투로 무력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것이 자신의 현실임을 고백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또다른 주인공인 페이 역시 스파이크가 비밥호를 떠나려는 순간 총을 쏘며 그를 떠나보내죠. 스파이크가 이 배를 떠나지 않았으면하는 마음과 자신과 함께했으면하는 연심을 고백하는 무력적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이 애니메이션은 각종 상징적 의미가 넘쳐나는 작품입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현재와 과거 사이의 갈등이자 현실의 분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 대부분이 과거의 무언가가 결핍된 상황이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현실을 목도하고 삶을 영위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그에 더해서 현재라는 꿈에서 일어나 과거의 숙원을 청산하는 삶과 과거라는 꿈에서 일어나 현재의 목표를 만드는 삶 중 그 어느 것이 맞다고 확언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본인이 처한 현실이 다를 것이고 과거와 현재의 경중이 다를 터이니 말이죠.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시간과 상관없이 꿈에서 일어나 현실의 투쟁을 이어가라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2-2. 에피소드의 리듬감

 작품의 이름에 들어있는 "비밥"이라는 용어는 재즈의 하위 분류 중 하나로 즉흥 연주가 강점인 분야입니다. 또한 연주 속도가 빠르고 자유분방한 점이 매력포인트이며 박자가 중요한 장르이지만, 멜로디 자체가 감미로운 편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카우보이 비밥>의 에피소드들은 이 비밥 장르의 특성과 상당히 닮아있습니다.


갑작스레 나오는 코믹 에피소드 (11화 중)

 냉정하게 말해서 <카우보이 비밥>의 에피소드들은 유기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고 매 에피소드들의 전개는 너무나 빠르며, 에피소드 구성 자체가 훌륭하다는 느낌은 다소 떨어집니다. 중간 중간의 코믹 에피소드들은 극의 메인 주제와 연결되는 것도 아니며 굉장히 강력한 능력을 지닌 빌런들도 대부분 한화만에 퇴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해당 요소들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장르의 변주가 다양하기에 <카우보이 비밥>은 자유분방한 종합 예술의 형태를 띌 수 있게 되었고, 강력한 빌런의 빠른 소모로 인해 에피소드간의 일관성 있는 리듬감 유지에 성공했습니다.


 즉 <카우보이 비밥>은 자신들의 단점조차 강점으로 승화시키는 엄청난 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모든 구성이 알차고 하나하나 완벽히 맞아들어가는 교향곡은 아닙니다. 하지만 비밥 재즈처럼 단점을 특색정도로 여길 수 있게 만드는 인간미 넘치고 부족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2-3. 좋은 캐릭터성

좌측부터 제트, 스파이크, 페이, 에드, 아인


 이 애니메이션에서는 크게 3명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스파이크, 제트, 페이인데요. 이들은 모두 과거에 결여된 무언가를 남겨놓은 사람들입니다. 허나 이들은 과거와 현재를 대하는 자세가 모두 다릅니다. 먼저 스파이크는 과거에 가장 속박당한 사람입니다. 줄리아와 비셔스를 포함한 과거의 미련에 사로잡힌 인물이자, 현실을 꿈으로 치부하고 과거를 현실로 인식하는 유일한 인물이죠.


 그에 반해 제트는 가장 규율에 맞는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지만, 과거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인물입니다. 옛 연인이라는 과거에 대한 약간의 미련은 남아 있었지만, 과거의 일도 현재의 일도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과거의 일을 현재까지 끌고 올 생각을 구태여 하지 않으며, 옛 연인의 애인에게도 진심어린 조언을 남기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과거라는 꿈에서 스스로 깨어나 묵묵히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이 바로 제트입니다.


 반면 페이 발렌타인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 결여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콜드슬립 이후 기억을 모두 잃었기에 본인의 과거와 기억에 얽매여있는 존재입니다. 자신이 살던 곳에 집착하고, 기억을 얻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우연치 않은 계기로 기억을 모두 되찾게 되고, 본인의 과거가 모두 허상이 되었다는 점을 직시하고 비밥호로 돌아오는 인물입니다. 즉, 페이 발렌타인은 과거라는 꿈에서 강제로 깨어나 현재라는 현실을 아직 방황하는 존재입니다.


 이처럼 이 작품의 세 인물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현실과 꿈을 바라보는 관점이 모두 다르며 처해있는 상황이 모두 다릅니다. 그렇기에 존재 의의를 찾아 투쟁하는 대신 목숨을 잃은 스파이크와 존재 의의를 찾아나서는 방랑길에 오른 제트와 페이 중 누가 옳은 삶을 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생존과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후자가, 존재 의의라는 측면에서는 전자가 옳은 삶일테니까요. 이처럼 이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정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캐릭터의 다양한 상황을 보여주며 단지 관객에게 본인의 현실을 자각할 기회를 주는 것일 뿐입니다.


3. 마무리

 이 작품은 오랜만에 감명깊게 본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신세기 에반게리온>과는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듯하면서도 조금은 유한, 인자하고 자상한 어른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작품이었습니다. 약간의 아쉬움은 존재하는 작품이지만, 그 아쉬움마저 특색으로 승화시키는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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