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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Jan 21. 2022

블랙 내셔널리즘을 바라보는 상반된 두 시선

영화 <블랙 팬서> 리뷰

1. 개요

 201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의 시간동안 전세계적으로 가장 이슈가 되었던 사회적 문제는 아마도 흑인 인권 관련 문제일것입니다. BLM 운동으로 대표되는 흑인 인권 운동은 꾸준히 그 세력을 키워왔고, 결국 조지 플로이드와 제이컵 블레이크 사건으로 인해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그 파급력이 매우 커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BLM 운동이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로 흑인민족주의(이하 블랙 내셔널리즘)를 꼽을 수 있는데요. 이 흑인민족주의에 관해 꽤나 깊이 있는 고찰을 한 히어로 영화가 바로 <블랙 팬서>입니다.


 <블랙 팬서>의 장점은 흑인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릭 킬몽거라는 캐릭터이고, 아쉬웠던 점은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부족한 시각효과입니다.


2-1.흑인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아시아 문화권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흑인 사회는 다소 신기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같은 아시아계 황인이라고 해도 국적이 다르다면 큰 소속감을 느끼지 않는 우리와는 달리 흑인 사회는 같은 인종의 사람을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경우가 꽤나 흔합니다. 이는 미국 문화권에만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며, 백인과 차별된 흑인만의 국가를 세우자는 운동은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와 같은 사상은 같은 인종간의 결속력을 다지는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과도하게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띄고 있어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BLM운동의 축을 담당하는 급진적 흑인 민족주의자들의 키워드는 복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흑인 국가를 식민지화 시키고 흑인을 노예로 부린 자들에 대한 복수, 흑인에게 과잉 진압을 한 경찰에 대한 복수와 같이 말이죠. 하지만 이런 복수의 굴레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회의적 시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이 영화는 잘 캐치했습니다.


 래퍼 XXXTENTACION은 과거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여러 학대의 정황을 띄는 폭력적인 인물이었으나, 삶의 끝자락에서는 폭력과 복수의 굴레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평화를 주장했던 입체적 인물입니다. 그의 노래 RIOT처럼 몇몇 흑인들은 평화를 위한 시위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폭력을 휘두르며 가게를 텁니다. 그로 인해 가게를 운영하던 이들은 피해를 받게 되고, 이는 곧 그들을 넘어선 인종과 운동 전체에 대한 반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영화 <블랙 팬서>는 현재 흑인 사회의 문제에서 기존과 같은 급진적인 방법(에릭 킬몽거)이 옳은 것인지, 온건하고 평화적 방법(트찰라)이 옳은 것인지 물으면서도 전자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에 관한 이유도 설명하여 흑인 사회에 관한 고찰을 꽤나 훌륭하게 이루어냈음을 보여줍니다.


2-2. 에릭 킬몽거

 에릭 킬몽거는 앞서 말했듯이 급진적인 흑인 민족주의자입니다. 전세계에 고통받는 흑인 동포들을 구원하기 위해 과거 백인들이 사용했던 제국주의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겠다고 하는 인물이죠. 해당 인물은 다른 사회에서 바라보는 BLM운동의 전반적인 모습이자 기존 흑인 사회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릭 킬몽거의 슈트 이름은 골든 재규어 슈트입니다. 해당 슈트는 디자인적으로 트차카의 슈트와 유사한 형태의 목걸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이름에 나오는 재규어는 팬서(표범)와 생물학적 분류에서 표범속까지 동일하지만 종만 다른 존재들입니다. 즉 에릭 킬몽거는 블랙 팬서와 비슷하지만 자라온 환경이 너무나 다른,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아프리카인의 차이를 상징하는 좋은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릭 킬몽거의 메인 OST역시 훌륭합니다. 해당 곡은 블랙팬서 사운드트랙답게 타악기 베이스의 아프리카 풍 음악으로 전개되던 와중 힙합 비트가 자연스레 섞이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앞서 말했듯이, 비슷한 조건을 지니고 있지만, 자라온 환경이 너무나 다른 존재를 묘사한 좋은 방법입니다.


3-1. 시각효과

 영화 <블랙 팬서>에는 멋진 장면들이 많습니다. 트찰라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에릭 킬몽거가 왕좌를 향해 걷는 장면은 상하 반전된 상태에서 킬몽거가 다가갈수록 원 상태로 회전하는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폭포에서 떨어져버린 트찰라를 상징하는 뒤집혀진 왕좌와 해당 자리를 손에 넣은 킬몽거의 구성은 굉장히 훌륭했습니다. 


 허나 이 영화의 시각 효과가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 영화는 2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투자했음에도 CG의 측면에서 깔끔하지 못한 장면이 많았고, 슈트를 활용한 액션의 경우 MCU 영화들 중 하위권을 달리는 정도였습니다.


 블랙팬서라는 캐릭터가 <캡틴아메리카: 시빌워>에서 보여줬던 윈터솔저나 캡틴을 상회하는 육탄전 능력이 이번 영화에서는 전혀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액션이 에너지 방출의 형태로 변화해버렸고, 에릭 킬몽거와의 최종 결전은 인게임 시네마틱 영상보다 액션의 퀄리티가 떨어졌습니다.


 액션의 속도가 빠르지도 않으면서 하나하나의 무게감이 떨어지고, 동작은 너무나도 정직하다보니 액션의 장점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를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영화로 본다면 이 부분은 나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슈퍼히어로 액션 영화이기에 해당 부분은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충분한 영화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마무리

 영화 <블랙 팬서>는 MCU의 흥행 황금기를 열었던 작품이고 앞서 말했듯이 흑인 사회에 관한 다양한 고찰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좋은 영화임은 확실하지만 무결점의 걸작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시각효과를 비롯하여 플롯이 너무나도 평범하고 히어로물로서, 시리즈물로서 관객들이 기대했던 다양한 요소(액션과 소울스톤의 행방)를 만족시키지 못한 점은 분명한 단점입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이런 히어로 영화가 다시 나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미워할 순 없는 영화라고 여겨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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