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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Jan 24. 2022

차분하게, 섬세하게, 서서히 숨통을 조여라

영화 <유전> 리뷰

1. 개요

 대부분의 영화 장르들은 고정적인 팬층이 확고합니다. 관객의 대다수가 장르 팬층인 영화들은 보통 마이너 장르로 치부하곤 하는데요. 공포영화도 여름을 제외한 시기에는 보는 사람만 보는 굉장히 마이너한 장르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보편적인 마이너 장르의 장점이자 단점은 영화가 장르의 특색에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장르적 쾌감만 충족한다면 대부분의 관객들이 충분히 만족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니까요.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좋은 영화들은 객관적 시각으로 보았을 때도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해 대다수의 관객들을 만족시키곤합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 <유전>이 이런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영화의 뛰어난 점은 타이밍과 카메라 연출입니다.


2-1. 타이밍

 이 영화는 공포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극후반부로 접어들기 이전에는 크게 공포스러운 장면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소 혐오스럽거나 놀랄만한 장면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공포라는 감정과는 거리가 다소 있는 편이죠. 대다수의 공포적 요소가 극후반부에 집중되어있지만 이 영화가 좋은 평을 받는 이유는 특유의 타이밍 조절 때문입니다.


 영화 <유전>은 극이 최종국면에 다다르기 이전까지 크게 가정의 불화영적 존재의 기척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가족의 막내인 찰리가 사고로 죽고 난 이후 오빠인 피터는 애니에게, 엄마인 애니는 피터에게 그 잘못을 뒤집어 씌우며 가족간의 갈등이 심화됩니다. 이와 동시에 피터와 애니는 찰리를 연상케하는 영적 존재의 기척을 느끼기 시작하고 애니는 그 존재에게 서서히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이 영화는 일촉즉발인 가정의 상황과 찰리를 연상케하는 어떤 존재의 기척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애니가 영적 존재로부터 약간의 위안을 얻는듯한 연출을 하면서 관객에게 무의식적으로라도 해당 존재가 가정사를 풀어줄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모든 빌드업이 끝난 순간 악마 페이몬은 애니의 몸에 강림합니다.


 스티브의 죽음과 함께 앞에서 말한 두 이야기(가정불화와 영적 존재)는 하나로 합쳐집니다. 가족구성원의 죽음으로 가정은 와해되었고, 피터의 몸에 들어가기 위한 파이몬의 몸부림은 관객과 피터를 모두 공포에 휩싸이게 만듭니다. 대다수의 공포영화가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뜬금없는 장면들을 배치하거나, 충분한 빌드업 없이 극의 클라이맥스에 돌입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반면 <유전>은 완벽한 타이밍에 모든것을 폭발시켜 최고의 장면들을 뽑아냈습니다.


2-2. 카메라 연출

 영화 <유전>의 카메라 연출은 다소 독특합니다. 모든 장면들이 디오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의도적으로 카메라 연출을 진행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요소들이 실제와 다소 다른 듯한 질감을 띄고 있고, 미묘하게 미니어처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죠.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 바로 오프닝과 엔딩입니다. 영화 <유전>은 작품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모두 미니어처 형식의 장면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는 미니어처를 제작하는 애니가 작중에서 어떻게 묘사되는지와 큰 관련이 있습니다.


 애니는 그녀의 어머니 엘렌으로부터 물려받은 영매의 기질을 통해 파이몬을 자신의 아들 피터에게 전달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또한 작중 가장 공포스러운 파이몬의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이기도 하죠. 그런 인물이 제작하는 것이 미니어처고, 관객들에게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 미니어처입니다. 즉, 절대적 존재인 파이몬이 인간 세상, 그리고 애니의 가족을 바라보는 시각을 카메라로 표현함으로서 파이몬의 존재가 항상 가족의 곁에 있음을 상기시키는 멋진 카메라 연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마무리

 이 영화는 21세기 최고의 오컬트 영화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것입니다. 그만큼 훌륭한 작품이고, 특히나 "공포영화가 타이밍과 빌드업을 어떻게 구상해야하는가?"에 관한 교과서적 예시가 될 작품이라고 확신합니다. 다만 다소 기괴한 장면을 보기 힘들어하시는 분과 특유의 템포를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들께는 그렇게 추천드리지 못할 것 같은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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