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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Jan 31. 2022

명분으로 이뤄진 전장에서 상실되는 인간성

영화 <기동전사 건담 썬더볼트: 디셈버 스카이> 리뷰

1. 개요

 우리는 전쟁에 관한 여러가지 대중매체들을 보아왔습니다.

전쟁은 그 누구도 겪고 싶지 않아하는 끔찍한 것이지만 대부분의 매체에서는 전쟁을 상당히 매력적인 소재로 그리고 부주의한 시선으로 다루어왔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대신에 전쟁 무기의 위력을 뽐내는 방식으로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은연중에 전쟁을 무서운 것으로 여기지 않는 시선을 가지게 되기도 하였고, 그에 관해 경각심이 떨어지곤 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영화는 전쟁의 참상을 꽤나 사실적으로 표현한 좋은 영화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당 영화 리뷰에 앞서 제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장단점을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장점은 1. 사실적인 전쟁 관련 묘사 2. 화려한 연출 3. 메시지를 꼽을 수 있겠고,

단점으로는 1. 과장된 느낌의 대사, 2. 아쉬운 몇몇 캐릭터를 꼽겠습니다.


 1. 사실적인 전쟁 관련 묘사

전쟁 혹은 격투와 같은 분쟁에 관한 묘사들은 대부분 공격을 가하는 인물 중심으로 묘사합니다.

최대한 화려하게, 멋지게 표현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전쟁이라는 거시적 사건에 휘말린 개인이라는 미시적 존재들의 참상과 상황을 현실적으로 묘사해냅니다.


후에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전쟁터에서 노래를 듣는 각자의 이유와, 주변인물의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태도, 직접적으로 죽음을 직면한 인간의 변화와 같은 것들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클로디아와 카라라는 인물이 돋보입니다.

전쟁영화는 보통 일선에서 사람을 죽이거나 죽을 위험이 가장 높은 군인을 대상으로 전개됩니다.

 

이 영화 역시 그렇지만 전쟁의 참상을 표현하기 위해 타의로 사령관이 된 클로디아와 상이군인들에게 의수를 달아주는 박사 카라라는 인물들을 표현하였습니다.


이들은 각각 국가적 차원의 명분에 의해 희생될 소년병들에게 죽어서 돌아오라는 수준의 명령을 내릴 수 밖에 없었기에 심적으로 붕괴 직전에 있는 사령관과 사랑하는 사람이 머리에 구멍이 뚫린 채 돌아온 것을 목도한 박사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버티기 위해 약에 의존하거나 버티지 못하고 실성하는 등 이들은 보통의 영화에서 잘 다루지 않는 인간군상을 보여주죠.


이처럼 이 영화는 이들의 시점에서 전쟁에 관여된 인물들이 겪는 정신적 충격들을 잘 묘사하였습니다.


2. 화려한 연출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는 상업적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연출적 요소를 활용하여 영화의 매력을 올려야하는 상황이었고 이 영화는 이를 훌륭히 해내었습니다.


보통의 메카물과 다른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작중 중반까지의 전투씬 양상이 움직이는 인물과 정지된 인물의 구도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양측 기체가 화려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 우주 공간에서의 밝은 점들이 격돌하는 방식의 연출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 영화는 이를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굉장히 먼 거리에서 상대방과 직면하고, 정지되어있는 측은 상대방만을 저격하기 위해서 판을 깔고 움직이는 측은 안전하게 상대방의 위치까지 도달하기 위해 주변 상황을 이용하죠.


액션씬의 난이도 자체는 일반적인 영화들보다 높다고 평하기 힘들지만, 참신한 소재로 인물들간의 수싸움을 연출해낸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약간은 아쉽게도 작중 후반부는 일반적인 메카물과 비슷하게 양측 인물들의 기체 성능으로 대결이 흘러가는 양상을 가지고 있지만,

메인 카메라에 달라붙은 옷감을 털어내기 위해 스팀을 발사하고,

지형지물을 활용하여 상대방에게 타격을 주는 듯한 묘사들은 꽤나 훌륭한 편이었습니다.


3. 메시지

이 영화는 프리재즈와 포크송을 중심으로 극이 전개됩니다.


프리재즈는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을 더욱 극한으로 몰아넣기 위해 듣는다는 점과 포크송은 그러한 상황속에서도 인간성을 유지하고자 듣는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극한의 상황속에서도 인간성을 유지해야한다는 내용으로 끝맺음 짓는 듯 하지만 그와는 결이 얼핏 다릅니다.


전장에서의 인간성을 대변하는 캐릭터 대릴 로렌츠는 포크송이 메인 테마였습니다.


그러나 최종 전투의 경우 프리재즈 중심으로 전투가 이어지다가 포크송으로 마무리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죠.


어느정도의 인간성 회복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으나 결론적으로 그 역시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극한의 영역으로 내몰았고, 그 곳에서 존재 의의를 찾았다고도 말할 수 있죠.


이는 카일 딩켈러 살인사건이 연상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해당 사건은 베트남전 참전 용사인 앤드류 브래넌이 경관 카일 딩켈러를 총으로 살해한 사건인데요, 전쟁으로 인한 PTSD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시사하는 사건입니다.


일부의 참전 용사들은 전쟁을 증오하면서도 전쟁의 기억과 트라우마에 사로잡혀있죠.


이는 주인공 대릴 로렌츠와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는 작중 결국 일반적인 사람과 달리 팔 다리를 모두 잃는 등 전쟁을 통해 많은 상흔을 입은 인물입니다.


그는 인간성을 잃고자 하지 않았지만 결국 전쟁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이미 그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인간성이 훼손된 상황이죠.


이처럼 이 영화는 국가적 차원의 명분으로 얼룩진 전장에서 상실되는 인간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단점 파트입니다.


1. 과장된 느낌의 대사

 이 영화에는 좋은 대사들이 꽤나 존재합니다.


전쟁터는 현대의 보편적 가치가 통하지 않는 미친 곳이라는 의미를 함축한 살인자가 영웅 취급 받는 곳이라는 대사나

생존 확률이 희박한 사지로 군인들을 몰아넣을 수 밖에 없는 사령관의 심정을 대변하는 대사들처럼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중에는 전반적으로 과장되고 오글거리는 대사들이 너무 많습니다.


과장된 감성의 대사들이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있기에 이는 호불호가 상당히 갈릴 요소이고, 적어도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불호였습니다.


2. 약간은 아쉬운 몇몇 캐릭터

이 영화는 장편영화라기엔 짧은 약 60분이라는 러닝타임으로 인해 인물 배경 서사면에서 아쉬운 요소가 상당수 존재합니다.


이는 앞서 칭찬한 클로디아와 카라 캐릭터의 문제입니다.


클로디아는 나름 입체적인 여성상을 구축한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두 인물은 모두 사랑이라는 감정을 베이스로 제작된 인물입니다.


사랑이란 가장 강력한 감정이고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감정이지만, 사랑에 의존하는 캐릭터는 조금 진부하죠.

특히 카라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대릴과 사랑에 빠지는 듯한 연출이 존재합니다.


이는 크게 와닿는 부분이 아닐뿐더러 앞서 말했듯이 잘 쌓아올린 감정선과 연출을 힘빠지게 만드는 전개이기도 합니다.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 이 인물들의 복합적인 감정을 묘사해줬더라면 더욱 괜찮았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4. 마무리


 전반적으로 이 영화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건담이라는 프랜차이즈가 오랜 역사를 지닌 프랜차이즈다보니 어느정도의 배경지식이 있어야 이해가 수월하다는 단점아닌 단점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런 점을 배제하고도 이해가 불가능한 수준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감성이나 해당 작품 특유의 그림체에 거부감이 없으시다면 한번쯤 보셔도 후회하지는 않으실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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