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랑 Feb 11. 2022

망각과 기록의 층위를 지나 한 점에 다다르다

영화 <메멘토> 리뷰

 우리는 종종 방 혹은 짐을 정리하다가 어린 시절 과거에 쓴 일기를 발견하곤 합니다. 우리는 그 일기를 보고 이 때는 이런 생각을 했구나하는 잡념에 빠지기도 하고, 현재의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지금의 자신을 발견하고 오묘한 감정에 빠지곤 합니다. 그리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자신이 쓴 말들이 사실이 아니었을 때도 있고, 과장이 심한 말인 경우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적은 기록을 온전히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정보가 해당 기록밖에 없다면 우리는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요? 선행성 기억 상실증에 대해 다루는 영화 <메멘토> 리뷰입니다.


 영화 <메멘토>의 특징은 자아와 과거에 관한 이야기, 특수한 형태의 플롯, 정보 전달 방식에 있습니다.


1. 자아와 과거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 레너드는 과거 자신이 남겨놓은 기록에 의지하여 사건을 진행시키는 인물입니다. 그의 유일한 삶의 목표는 존 G를 향한 복수이며 해당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문신과 메모, 사진을 통한 기록을 남깁니다.


 이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레너드에게 있어서 최선의 선택이었겠지만 최고의 선택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과거의 기록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습니다. 레너드가 사실만을 적지 않았을 경우의 수도 있고, 과거에 이미 해결이 된 정보에 집착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레너드는 자신의 자아를 찾기 위한 유일한 방법을 실행한 것이었겠지만, 무의미한 반복의 굴레에 갇혔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아집니다.


 레너드의 시점이 아닌 객관적인 시점으로 보았을 때 아내의 복수를 해야한다는 다짐을 하기 시작한 시점의 레너드와 최종적인 시점의 레너드는 서로 다른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레너드는 해당 시점 이후 여러 사건을 겪으며 사고의 전환과 목표의 변화를 체감한 후 변모했을 것입니다. 허나 레너드는 그런 사건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억겁의 굴레에 갇혀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합니다.


 레너드는 <메멘토>의 주인공이지만, 영화는 그를 다소 냉소적인 시점으로 바라봅니다. 그는 테디와 함께 작중에서 일어나는 살인극의 굴레에 서있는 인물입니다. 또한 진실을 목도하자 현실도피를 하며 또다른 살육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자아가 과거에 얽매여있는 자의 말로가 어떻게 문드러지고 몰락하는지 알려주는 캐릭터가 바로 레너드입니다.


2. 특수한 형태의 플롯

 영화 <메멘토>의 화법은 보통의 영화들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보통의 영화들이 관객들이 극의 흐름에 자연스레 편승하여 영화를 큰 걸림돌 없이 관람하게 유도하는 반면에, 메멘토는 이런 화법에 정면으로 맞섭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흑백 장면은 순행으로, 컬러 장면은 역행으로 진행되는 플롯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서로 다른 시간대의 장면들을 교차편집하여 관객들에게 혼란을 유도합니다.


 그렇다고해서 영화 <메멘토>가 단순하게 집중안되는 영화라고 할수는 없습니다. 이 영화는 현재 상황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주인공 레너드가 이에 대처하는 방식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즉, 영화를 보는 관객뿐 아니라 주인공인 레너드 역시 해당 장면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는데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혼란을 유도하는 플롯은 오히려 주인공인 레너드에게 더욱 이입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요소들이 레너드의 내레이션입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씬이 전환되는 시점마다 레너드의 내레이션이 삽입됩니다. 자신이 지금 어떤 곳에 있는지 파악하고,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상황을 유추하는 내용의 내레이션들인데요. 이는 관객들이 <메멘토>를 보면서 하는 생각을 나타냅니다. 저 인물이 있는 곳은 어디인지, 어떤 맥락에서 저런 일이 벌어졌는지와 같이 단편적인 장면으로는 파악하기 힘든 요소를 관객들은 머릿속으로 꾸준히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관객들을 위한 요소가 내레이션이며, 이는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3.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의 주인공 레너드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합니다. 본인의 기록이 왜곡되고 조작된 것이고, 이미 해결된 정보를 담고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인데요. 따라서 레너드라는 캐릭터만으로는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는 테디와 나탈리라는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좌측 안경쓴 인물 테디, 우측 여성 나탈리

 나탈리는 레너드가 어차피 10분이 지나면 지금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할것임을 알기에 그의 앞에서 폭언과 함께 사건의 전말을 설명합니다. 이는 레너드를 향한 분노의 표출이자, 그를 이용할 것을 밝히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장면이지만 관객들에게 정보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테디가 사실을 밝히는 장면 이와 같은 맥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테디가 죽음을 맞이하는 점은 영화 시작과 동시에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존 G가 테디였음을 상정해두고 영화를 관람하는데 결말에 다다르면서 테디는 레너드를 이용하고 사실을 알려줬을 뿐 존 G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죠.


해당 장면들에서 나탈리와 테디가 레너드에게 사건을 설명하는 것은 그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과 그를 이용했음을 알리는 자백 겸 도발의 의미를 가집니다. 하지만 이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영화 전반에 깔려있는 배경 정보들과 사실을 추려서 설명해주는 역할을 맡기도 합니다. 플롯과 마찬가지로 이는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해주는 요소이자 이 영화가 복잡하되, 불친절하다는 평은 듣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이자 선행성 기억 상실증을 가장 잘 다룬 영화라는 평을 듣는 영화 <메멘토> 리뷰는 여기까지입니다. 놀란 감독이 <미행>부터 <테넷>까지 걸출한 영화들을 배출해냈지만 저는 그의 모든 영화들 중 이 영화의 플롯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대다수의 분들이 보셨으면 좋을 것 같은 이 영화는 시간 구조와 플롯 덕분에 복잡하지만 다양한 요소를 가미하여 불친절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 훌륭한 영화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 이외의 다른 이름으로 기억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