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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Feb 14. 2022

구원과 희생의 반복으로 이뤄진 최악의 전쟁

영화 <1917> 리뷰

 전쟁을 다루는 영화는 보통 2가지 분류로 나뉩니다. 누구나 알법한 지도자 격 인물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거시적 전쟁의 측면을 다루는 영화(명량, 다키스트 아워 등)와 전쟁의 일부분에 속해있는 참여자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미시적 측면을 다루는 영화(덩케르크, 1917 등)로 말입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전쟁의 대의명분에 관해 말하거나 해당 인물의 업적을 기리는 방식을 채택하는 반면에 후자의 경우에는 전쟁이라는 사태를 목도한 개인의 입장이나, 해당 인물의 변화를 보여주는 방식을 채택하곤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전자보다 후자의 경우를 조금 더 좋아합니다. 전쟁이라는 것이 대의나 국가적 차원의 의의로부터 비롯되기는 하나 전쟁을 몸으로 겪는 것은 병사와 개인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저에게 있어서 후자의 영화들은 사실감에서 비롯되는 몰입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고, 이를 잘 충족시킨 영화가 바로 오늘 리뷰할 <1917>입니다.


 영화 <1917>의 특별한 점은 화면 연출, 왼손과 오른손의 의미입니다.


1. 화면 연출

 이 영화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수도 없이 많이 나옵니다. 거의 대부분의 장면이 훌륭하기에 몇몇 장면들을 꼽아서 설명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지만, 그 중에서 몇 장면을 뽑아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장면은 독일군 초소가 폭파된 이후의 장면입니다. 해당 장면은 독일군 초소가 폭파된 이후 블레이크가 스코필드에게 물을 건내준 이후로 신호탄을 발사하고 떠나는 장면인데요. 해당 장면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점은 발사한 신호탄이 능선을 지나 화면에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는 시점에서 캐릭터들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타이밍과 화면을 통해 보여준 훌륭한 연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야간 마을 장면입니다. 독일군들이 조명탄을 터뜨리고 마을에 불을 지른 해당 장면은 일렁이는 불빛들과 총탄의 향연, 그리고 신비로운 선율의 조화가 어우러져 굉장히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내는데요. 해당 장면에서 중요한 점은 화면에서 캐릭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다른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1917>은 기본적으로 모든 장면이 캐릭터들에게 중심되어 있습니다. 이는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개인이 겪는 이야기와 감정에 집중하기 위함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장면에서 캐릭터가 아닌, 장소와 전체적인 분위기를 더욱 중시 여긴 이유는 전쟁이라는 재앙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공포감과 압도감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장면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로우면서 공포스럽고 압도당하는 재앙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낸 명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장을 가로질러 달리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생각났습니다. 두 작품 모두 달리는 인물과 인물의 속도와 무관하게 움직이는 카메라가 등장하는 장면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저는 두 장면의 의미가 같다고 생각합니다. 해당 장면에서 앵글은 시간을 의미합니다. 주인공을 기다려주지 않는 존재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주인공이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존재이죠. 해당 장면에서 스코필드는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최대한 빠르게 맥킨지 중령에게 가서 명령을 전달해야합니다. 스코필드가 어떤 장애물을 만나더라도 시간을 동일한 속도로 움직이며 그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장면을 보고 절박함을 느끼고 아찔한 긴장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2. 왼손과 오른손

 이 영화에서 왼손과 오른손은 서로 대비되는 상징이자 상반되는 개념을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왼손은 고통과 상처 그리고 희생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주인공 스코필드는 노맨즈 랜드를 건너기 시작할 때 왼손을 철조망에 의해 다치게 됩니다. 상처를 입은 이후에도 그는 전진하며 여러 고통을 겪게 됩니다. 손을 시체 속에 파묻게 된다던가, 차를 밀던 와중에 진흙탕에 담그게 된다던가하는 고통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도달하게 된 마지막 장면에 블레이크의 형의 왼손에 블레이크의 유품을 쥐어주며 그의 희생을 기억되게 합니다.


 전장에서의 고통과 희생을 나타내는 것이 왼손이라면 오른손은 도움과 구원을 나타냅니다. 영화에서 나무 아래에서 자고 있던 스코필드를 일으켜 세워주는 블레이크의 오른손이었습니다. 또한 참호 폭파 이후 주저앉아있던 그를 일으켜 세워준 것도 오른손이었죠. 결정적으로 맥킨지 중령에게 장군의 명령을 전달하는 스코필드의 손 역시 오른손이었습니다. 구원과 희생의 굴레가 반복되는 곳이 전장임을 알려주는 좋은 메타포가 이 손들과 관련된 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작중에서 스코필드는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고도 꺼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허나 한 사람의 유품을 전달해준 것으로 고맙다는 말을 들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장면이 전쟁을 바라보는 미시적 관점의 묘사를 가장 잘 다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을 빠르게 끝내지 못하게 한 인물이자 누군가를 구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누군가에겐 얄미운, 누군가에겐 고마운 인물이 되곤하는 곳이 전장이죠. 전쟁의 미시적 관점을 잘 다룬 영화 <1917>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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