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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Feb 18. 2022

한 청춘의 성장기를 통해 그려낸 80년대 미국의 정수

영화 <록키> 리뷰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한 래퍼를 꼽는 자리에 아마 에미넴의 이름이 빠지지는 않을 것 입니다. 에미넴은 수많은 곡을 만들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올렸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Lose Yourself>라는 노래를 가장 좋아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바꿀 단 한번의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전력을 다해서 잡으라고 하는 이 노래는 좋은 비트, 랩 스킬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 노래가 추구하는 바가 미국식 사고의 전형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상당히 인상깊은 노래입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록키> 역시 이 노래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영화 <록키>는 미국식 사고와 아메리칸 드림의 정수를 담은 영화를 넘은 시대의 문화이자 훌륭한 화면 구성과 승패는 신경쓰지 않는 아름다운 결말이 특징인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미국식 사고와 아메리칸 드림

 "미국은 기회의 땅이다, 미국에서는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회가 적어도 한번 찾아온다." 이런 말들은 미국식 사고의 전형을 담고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당 문구들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아메리칸 드림을 포함한 미국에서 성공에 대한 기본적인 사고 방식은 개인의 능력과 공평한 기회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의 록키는 아메리칸 드림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의 삼류 복서입니다. 충분한 재능을 갖췄으나 주변 환경의 문제와 생활고로 인해 불법 도박 경기를 전전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이죠. 그리고 헤비급 복싱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와 타이틀전을 가질 기회가 오자 온 힘을 다해 그 기회를 부여잡고 결국 원하던 것을 이루어내는 드라마틱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록키와 싸우는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는 가장 미국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경기 시작에 앞서 조지 워싱턴과 엉클 샘 흉내를 내면서 입장하기도 하며,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며 록키에게 도전권을 준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 역시 제대로 다룬 인물이기도 합니다. 아폴로 크리드는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 행사에서 반드시 복싱을 하고 싶기에 도전자를 물색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광고와 계약들이 이미 체결되어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상대를 물색한 것이고, 이에 보기 좋은 명분을 대입한 것에 불과합니다. 또한 그가 록키를 선택한 이유도 록키의 링네임이 단순히 매체에서 다루기 좋아보였기 때문이었죠.


 이처럼 영화 <록키>에서는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 역시 보여주지만 그렇다고해서 아메리칸 드림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는 명분이 어떻든, 그 배경이 어떻든 관계없이, 록키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에 록키가 그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2. 화면 구성

 이 영화는 OST와 스테디 캠의 사용으로 유명한 영화이지만 화면의 구성과 디테일 역시 훌륭합니다. 이 영화는 몇몇 의미를 가진 장면들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이 자주 사용됩니다. 어두운 필라델피아의 거리를 통해 록키가 현재 놓여있는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음을 잘 알려주는 장치죠. 허나 록키가 복싱관련 활동을 하거나, 에이드리안을 만나는 장면들은 대부분 화면이 밝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어려운 록키의 상황속에서도 그가 진실되게 좋아하는 것들을 잘 묘사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또 흥미롭게 볼 수 있는 파트가 프로모터와 록키의 구도입니다. 이 영화에서 록키는 경기가 시작하기 전까지 기자회견을 제외한 모든 장소에서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를 만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록키에게 있어서는 아폴로 크리드를 대변하는 프로모터에게서 챔피언과 같은 위압감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영화에서 화면의 구도를 통해 잘 묘사됩니다. 록키와 프로모터가 함께 강조되는 장면은 장면인데요. 이는 프로모터가 록키에게 경기를 제안하는 장면과 록키가 프로모터에게 포스터 관련 항의를 하는 장면입니다. 앞서 설명한 두 장면 모두 프로모터를 비추는 카메라는 아래에서 위를 향해 찍는 구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록키보다 해당 인물이 우위에 있는 인물임을 알려주는 장면이기도 하며,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에 대한 록키의 압박감을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3. 승패와 무관한 결말

 보통의 스포츠 영화들은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공식을 따르지만 대부분의 경우에서 인물들은 승패에 관해 굉장히 신경을 쓰는 듯 묘사하고, 그와 관련된 여러 추가적인 대사들을 가져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저번에 다룬 <크리드>나 <리얼 스틸> 역시 "졌지만 이 밤을 얻었다, 대중의 챔피언이다"와 같은 대사들을 사용하며 실질적인 승리에 관해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허나 <록키>는 조금 다릅니다. 록키의 지인들은 아폴로 크리드를 이기라고 말하지만 세간의 평가는 록키가 챔피언을 상대로 3라운드도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록키 역시 자신과 챔피언간의 차이를 잘 인지하고 있기에, 그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종이 울릴 때까지 버티는 것을 목표로 싸우게 됩니다. 그렇기에 모든 경기가 끝난 이후 영화는 록키의 입장에서 심판들의 판정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아폴로 크리드가 판정에 환호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록키는 그 와중에도 에이드리안의 이름만 울부짖을 뿐입니다. 그리고 경기의 결과를 말하고 있는 심판은 신경쓰지 않은 채로 에이드리안을 껴안고 사랑을 고백하며 이 영화는 끝납니다.


 실질적인 결과만 놓고 봤을 때 록키는 패배했습니다. 프로 전적은 0승 1패인 상황이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 종이 울릴 때 두발로 서있었습니다. 이 점이 이 영화가 아름다운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실질적 결과를 지나치게 신경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영화 <록키>는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인생의 고난에 맞서서 끝까지 버티며 기회를 잡는 것의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영화 <록키>는 현재의 시점으로 보았을 때 완전무결한 작품이라고 보기는 애매합니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용어 자체가 2000년대 중후반 이후 거의 사장되어가는 개념에 가깝기도 하고, 너무나도 전형적이고 수동적인 인물들도 많습니다. 록키에게 마음을 여는 에이드리안의 심경 변화는 급작스러우며, 록키의 각본 자체가 너무나도 많이 오마주되었기에 신선함도 다소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허나 이 영화가 말해주는 삶의 가치관에 관한 이야기나 아메리칸 드림을 비롯한 1980년대 문화의 상징이 록키였다는 점은 이 영화를 보기에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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