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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Feb 25. 2022

새로운 창조를 위한 선행적 파괴의 미학

영화 <에반게리온: 파> 리뷰

 명작의 리메이크는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기존 작품의 기틀에서 크게 벗어난다면 탄탄한 기반의 올드팬들의 비난을 사기 쉽고, 기존 작품의 리모델링 정도로만 이루어진다면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연출한 <사이코(1998)>와 마찬가지로 전자 이상의 혹평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에 기존의 틀을 어느정도 가져가되, 대다수의 관객이 만족할 수 있는 차이점을 포함해야한다는 최상급 난이도의 작업이 명작의 리메이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에반게리온: 파>는 올드팬들을 어느 정도 만족시킬 요소를 포함함과 동시에 새시대 개척을 위한 기존의 요소들을 갈아엎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장점은 TV판에 비해 상당히 발전한 연출, 급격한 분위기 변화이고 호불호 요소는 변경된 메시지 전달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시청각적 연출

 TV판 에반게리온의 경우, 상당한 저예산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TV판 에반게리온의 경우 9화와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액션의 합과 같은 시각적 연출이 특출난 편이라고 할수는 없습니다. 허나 에반게리온 시리즈가 엄청난 인기를 끈 이후 나온 이 작품의 경우 개봉 이후 약 13년이 지난 지금 보더라도 훌륭한 수준의 시각적 연출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훌륭한 장면은 제 8사도와의 전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당 장면에서 에반게리온 3기는 각자의 위치에서 추락하는 제 8사도를 잡기 위해서 달려갑니다. 이 장면에서 주목할 점은 기체들이 달릴 때의 화면 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당 장면들의 화면 구성은 화면의 좌측, 우측, 중앙에서 에반게리온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러한 장면은 세 기체가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는 묘사를 하는 연출입니다. 또한 해당 장면들에서 의도적으로 카메라 앵글이 떨리는 점과 소닉붐 연출은 그들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목표 지점을 향해 질주하는지 알려주는 흥미로운 점입니다.


 에반게리온 시리즈를 담당한 안노 히데야키 감독은 EOE 시절부터 기이할 정도의 선곡 센스를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도 그 센스는 가히 엄청났습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상황에 맞는 선곡을 통해 몰입감을 높이는 방식을 사용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를 반대로 이용하였습니다. 무척이나 잔혹한 장면에서 잔잔한 음과 순수한 가사를 지닌 곡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이런 경우에는 몰입감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지만 반대로 이질감과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이는 관객들과 등장인물들이 인간을 대신해 적을 찢어죽이는 더미 플러그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분위기 변화

 장르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 제가 예전에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리뷰할 당시에 설명한 부분과 일맥상통하는 분야가 바로 이 분위기 변화 파트입니다. 범죄 영화에서 주인공의 처절한 후반부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서 해당 인물이 가장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삶을 영위하는 모습을 앞서 보여줍니다. 같은 장면이라도 빌드업의 차이로 그 파괴력이 상당히 달라지기 때문인데요. 이 영화역시 비슷한 점을 이용합니다.


 에반게리온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둡고 우울하며, 상처받은 인물들의 이야기라는 점일것입니다. 무언가 결여된 인물들이 서로 상처받으며 지내는 이야기로 축약되는 에반게리온 시리즈에서 이 영화는 중반부가 상당히 독특한 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에반게리온에 탑승하는 것만이 삶의 이유가 되어버렸던 세 주인공이 모두 에바에 타지 않더라도 삶은 아름답고 가치있는 것이라는 점을 서서히 배워가고, 모든 인물들을 둘러싼 갈등이 서서히 풀려가는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인물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긍정적 변화를 맞이할 차례인 레이의 식사 초대 당일 앞선 평화와 이해 발전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어 사라집니다. 아스카는 죽음에 가까운 중상을 입고, 레이가 만든 자리는 무산되었으며, 겐도와 신지 사이의 감정의 골은 더더욱 깊어집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주인공이 괴로움을 겪는 이 상황의 묘사는 상당히 위력적이었고, 모든 관계의 종말이 다가온 순간의 허탈감과 배신감은 주인공인 신지에게 감정을 이입하기에 충분했습니다.


3. 메시지 전달

 에반게리온의 메시지는 대부분의 시리즈가 동일합니다. 해당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상처받더라도 현실을 살아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20세기에 나온 에반게리온을 완결짓는 <EOE>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완전한 하나의 생명체로 거듭날 것인지, 다시 상처받고 타인을 이해할 수 없는 기존의 현실로 돌아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순간 신지는 결국 후자를 선택합니다. 허나 직후의 장면에서 신지는 다시 아스카의 목을 조릅니다. 이전에 누구든지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신지의 절규에 자신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기에 사랑해주지 않겠다고 아스카가 대답했기 때문입니다. 선택 이후에도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상처주지만 이해의 노력을 통해 상황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것이 <EOE>의 방식이었습니다.


 허나 <에반게리온: 파>에서는 이 점이 다소 변화하였습니다. 신지가 현실적 문제로 인해 다시 상처받고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접었던 상황에서, 그는 레이라는 단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게 됩니다. 이러한 연출의 변화로 인해 이 영화는 일장일단의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난해하지만 굉장히 현실적이었던 기존의 방식을 굉장히 명료하지만 비현실적인 방식으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구작에 비해 현학적인 요소가 줄고, 인물들의 정서적 성숙도가 높아졌다는 점과 이로 인해 극의 흐름이 스피디해지고 후반부의 카타르시스가 강해졌다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드린 <에반게리온: 파>는 대중적으로 가장 고평가받는 에반게리온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EOE>의 화법에 상당히 큰 감명을 받은 입장에서 약간은 아쉬웠지만, 구시대의 유산을 어느정도 받아들이면서도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여 완성도를 끌어올린 대중적으로 가장 추천할만한 흥미로운 에바 시리즈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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