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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Feb 28. 2022

전장이라는 지옥에서 살육보다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영화 <덩케르크> 리뷰

 전쟁과 관련된 매체를 떠올려보면 전쟁의 참상을 이야기하는 매체들조차 전쟁이라는 재앙속에서 살육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제와 상관없이 격한 액션을 집어넣는 등의 방식으로 말이죠. 허나 우리는 우리가 아는 누군가를 전장, 혹은 군대로 보낼 때 살육과 병기에 관하여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치지 말고 무사히 돌아와달라고 하죠. 우리가 전장으로 사람들을 보낼 때 갖는 원초적인 감정에 집중한 영화가 바로 <덩케르크>입니다.


 영화 <덩케르크>의 특징은 구출과 생존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과, 전쟁을 다루는 자세, 특이한 구조의 플롯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구출과 생존

 영화 <덩케르크>는 연합군이 독일군을 사살하는 장면을 거의 찍지 않았습니다. 이는 이 영화에서 살육이라는 키워드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병사들이 외치는 환호가 몇차례 나오는데요. 해당 장면들은 공통적으로 생존과 구원에 관련된 것입니다. 부상병을 이송하거나 다른 동료들을 구원할 배가 다가오는 상황처럼 말이죠.

 톰 하디가 독일군 전투기를 격침하였을 당시에도 환호가 터져나오긴 했지만, 이는 그가 독일군을 죽였기 때문이 아니라 아군을 위기로부터 구해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 영화는 적을 섬멸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구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기에 이러한 연출을 사용하였습니다.


2. 전쟁을 다루는 자세

 이 영화는 전쟁을 다룬 전쟁 영화이지만 다소 특이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모름지기 전쟁 영화란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어 서로의 교전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마련입니다만, <덩케르크>에서는 철저히 아군의 시점에서 적군의 존재를 거의 묘사하지 않습니다.


 적군의 행동으로 인해 벌어진 결과들을 중심으로 아군의 리액션이 곁들여지는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의 묘사는 적군을 인격체라기보단 현상으로 인지하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전이라기보단 천재지변에 가까운 존재처럼 말입니다.


 또한 이 영화는 인물들에게 큰 서사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살아서 돌아가야할 당위성을 전혀 부여하지 않으며 사망한 인물과 생존한 인물 사이의 서사적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누구든지 죽을 수 있다는 공포천재지변에서 오는 공포와 상당히 흡사합니다. 이러한 묘사는 극의 긴장감 유지와도 큰 관련이 있습니다. 해당 영화는 구출과 탈출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출을 위해 탑승한 배가 침몰당해서 탈출하는 형식으로 말이죠.


 이처럼 적군의 존재를 천재지변과 같이 묘사하고, 구출과 탈출을 반복하는 극의 구조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 어느 곳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듭니다. 영화 <덩케르크>는 극의 구조를 이용하여 이러한 템포를 시종일관 유지하기에 106분이라는 상당히 짧은 러닝타임으로 이루어진 재난 영화와 같다는 인상을 받게 합니다.




3. 플롯

 이 영화의 플롯은 상당히 독특합니다. 서로 다른 세 시간에서 출발하여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나는 독특한 플롯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감독의 전작 <메멘토>를 연상시키는 플롯을 자랑합니다. 이러한 플롯은 관객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시간대의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주게 하여 몰입감을 높이는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덩케르크>는 특이한 시간구조를 바탕으로 대조, 비교되는 장면들을 서로 이어붙여놓습니다. 민간 선박에서는 군인을 건져 올리는 상황과 군인들이 물에 잠기고 있는 상황을 연결하는 방식처럼 말입니다. 이런 구조는 그들의 시간대가 다르지만 같은 장소 같은 시간대에 존재한다는 인상을 남기며 몰입감을 유도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극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 중 하나는 킬리안 머피가 연기한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민간 선박을 다루는 장면에서는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한 채 자신은 절대 덩케르크 해안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허나 곧이어 나오는 군인을 다루는 장면에서 그는 물에 빠진 군인들에게 해안으로 돌아갈 것을 이성적으로 지시합니다. 이후 토미가 어뢰를 맞아보면 그런 말 못할거라고 외치는 장면은 관객 입장에선 상당히 의미심장하죠. 다른 시간대에 있는 같은 인물의 모습을 대조하여 전쟁 트라우마를 부각하는 해당 연출과 이를 가능케한 플롯은 정말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잘만든 영화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스터즈처럼 클리셰적 요소를 훌륭한 연출로 묘사한 작품과 덩케르크와 같이 남들이 다루지 않는 관점으로 만든 작품으로 말입니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고평가받아야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두 영화 모두 훌륭하다는 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는 장소에서 생명 자체의 가치를 말하는 영화 <덩케르크>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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