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 리뷰
저는 에반게리온 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헤비한 매니아층은 아니지만, 매니아층이라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고, TV판, 사도신생, EOE, 신극장판 4편 전부를 본 사람입니다. 저는 대부분의 에반게리온 영화나 매체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에반게리온의 메시지가 방구석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들에게 현실을 마주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온 사람입니다. 에반게리온은 제가 봐온 매체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계몽의식이 강했던 매체이자, 그만큼 과격한 매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 제게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이하 다카포)은 상당히 놀라웠던 작품이었습니다. 가장 계몽의식이 강했던 시리즈가 최종 국면에서 처절하고도 감동적인 자기고백으로 마무리지었으니 말입니다.
이 영화의 장점은 자기 고백적 서사, 이해하기 쉬운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호불호가 갈릴 요소로 기존 팬층의 반발 야기 가능 요소가 있습니다.
구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완결작 <EOE>에서 해당 시리즈는 모두가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망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살아갈 것을 명령하는 투의 영화였습니다. 극중 해당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의 모습을 비추기도 하고, 등장인물의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묘사하는 등과 같이 말이죠.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는 해당 영화를 통해 오타쿠층이 에반게리온이라는 주박에서 벗어나 현실로 나가기를 바랐습니다.
허나 그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에반게리온은 오타쿠의 심볼이 되었고, 더욱 많은 오타쿠가 양산되는 계기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에반게리온을 멀리 떠나보내려했던 안노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결국 본인이 <EOE> 개봉으로부터 10년이 지난 2007년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시리즈>를 제작하게 되었죠. 에반게리온으로부터 많은 사람이 벗어나기를 가장 바랐던 인물이 가장 그 곳에 속박되어있던 것이었습니다.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수단이자 또 많은 이들의 미움을 받는 수단인 에반게리온 제작을 안노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요소는 작중에서 상당히 많이 묘사됩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는 안노 히데아키의 페르소나적 캐릭터입니다. 초반부 제3마을에 도착한 신지는 자신이 일으킨 재앙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해주는 자세에 더욱 슬퍼합니다. 에바에 타지 않아도 삶은 행복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신지는 점차 마음을 열고 에바에 관련된 모든 주박을 하나씩 풀어나갑니다. 이런 모습은 안노의 현실에도 대입할 수 있습니다. 그는 동일본 대지진과 <에반게리온:Q>의 제작을 경험하며 2010년대 초반 극도의 우울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에반게리온을 제작하지 않더라도 본인은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영화 <신고질라(2016)>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해당 영화를 계기로 자신에 대한 고찰을 마친 안노는 마지막 에반게리온을 자신의 회고록으로 완성하였습니다.
신지를 필두로 해당 영화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두려워했던것, 그리고 진정으로 원했던 것을 깨닫고 진심을 다해 말함을 통해서 에바의 주박으로부터 벗어납니다. 시종일관 극에서 등장한 어른이 되어라라는 말처럼, 에바의 주박에서 벗어난 이들은 성인의 모습으로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어른이 되라고 수없이 말하지만 정작 본인이 어른이 되지 못했음을 말해낸 안노는 25년전보다 분명히 성장했습니다. 이처럼 이 영화는 현실에 대한 공포와 상처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현실을 살아가라는 구작의 일갈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했다는 자아 성찰을 통해 고백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메시지를 그렇게 크게 복잡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약점과 현실 담담히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자세를 중시여긴다는 점을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해당 영화에서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본심을 말하고 있으며, 자신이 원했던 것, 갖지 못했던 것 그리고 두려워했던 것을 전부 고백합니다. 아스카가 신지에게 과거 신지를 좋아했음을 말하는 장면이나, 자신에게 필요했던 것은 누군가의 사랑이었음을 밝히는 장면, 카오루가 바랐던 신지의 행복이 사실은 신지의 행복을 통해 본인의 행복을 채우고자 했음을 밝히는 장면과 같이 각자가 본인의 심정을 밝히며 관객과 등장인물들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이런 요소는 이해를 굉장히 직관적으로 도와줍니다. 난해하고 복잡하며 현학적이라는 평을 많이 듣던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결말로는 다소 어색한 방식이죠. 이 부분 역시 많은 이들의 반발을 살 수 있는 측면이라는 점은
상당수 동의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에반게리온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이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수단으로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개봉 이후 현재까지도 팬층을 중심으로 굉장히 많은 호불호가 갈리고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예시들이 캐릭터들의 특색이 바뀌었다는 점과 시리즈의 결말이라 하기에는 서사가 엉성했다는 점인데요. 시키나미 아스카가 클론이었음을 밝히는 장면이나, 겐도가 너무나 정직하게 자기 고백을 하는 점, 아스카와 켄스케가 엮이는 점, 신지와 마리가 서로 엮이는 점과 같이 전작들로부터 충분한 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점들이 너무나도 빠르게 전개되었다는 점은 비판받아 마땅한 부분이자, 팬층의 반발이 심하게 일어날 수 있는 소재입니다.
또한 구작의 요소를 끌어와 서사를 완성시켰다는 점이나, 신지의 각성이 다소 급작스레 전개되었다는 점은
서사적 측면에서도 이 영화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을 말합니다. 애초에 루프물이 예상되었다고는 하나 그 점을 이용해 영화의 스토리를 메꾸는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고, 개연성과 같은 서사적 요소를 중시한다면 이 영화가 상당히 부정적으로 여겨질 요소임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영화를 좋게 봤던 이유는 이 영화가 중시여긴 부분이 서사적 측면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에반게리온의 메시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자전적인 요소를 넣어 자기 고백을 하는 일기나 수필의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몇몇 단점들이 존재하지만 누구보다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상태나 생각을 작품에 녹여넣은 점에 대해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로써 에반게리온 시리즈는 막을 내렸습니다. 이 영화가 불세출의 걸작이나 명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제게 있어서 가장 잘만든 에반게리온 시리즈는 종합적으로는 <EOE>이고, 오락적으로는 <파>이지만 왜인지 마음이 가는 영화가 바로 <다카포>였습니다.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캐릭터 팬이나 서사적 요소를 중시하는 분들께는 추천드리기 힘들겠지만, 안노 히데아키 감독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이나 회고적 요소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추천드릴만한 작품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