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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Nov 22. 2021

필연과 우연의 연속으로 직조한 인간과 영적 존재의 세상

영화 <랑종> 리뷰

1. 개요

얼마전 넷플릭스에 공개된 <랑종>은 개봉 전 평단의 호평과 각종 SNS 홍보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지만, 개봉 이후 관람객들의 평가는 굉장히 좋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평론가 평점보다 네티즌 평점이 낮은 상황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랑종을 절대로 졸작 혹은 망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걸작, 명작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수작의 범주에 들어있는 공포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장점만큼 단점이 커다랗고 장르적인 특성 상 홍보가 많이 된 이런 부류의 영화들이 관람객 평가가 대체로 낮다는(현재 명작으로 취급받는 곡성, 유전, 미드소마 역시 관람객 평가가 현재보다 훨씬 낮은 편이었죠.) 이유가 겹치면서 이러한 반응을 낳은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장점으로는 1. 인간과 영적 존재의 관계 묘사, 2. 필연과 우연, 3. 색채대비를 꼽고, 단점으로는 1. 촬영방식과 마케팅, 2. 불편함 유발, 3. 빈약한 후반부를 꼽겠습니다.



2-1. 장점-인간과 영적 존재의 관계 묘사

 악의 문제불교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간략히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선하게 살아야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선하게 살 경우 복이 온다. 천국에 간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이죠.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씩 겪는 생각이 있습니다. "저렇게 악한 사람은 왜 행복하게 사는가?" 라는 생각 말이죠. 이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신이 전능하다면 선하지 않을 것이고 선하다면 전능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로 유명한 악의 문제입니다. 또한 내세에서의 업이 사후로도 연결된다는 의미로 초기엔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생겨난 지옥의 불교도 이와 같은 질문에서 시작된 믿음이죠.


 랑종도 이와 같은 질문에서 비롯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랑종의 배경이 되는 태국 이샨 지방에는 모든 것에 귀신이 깃들어있다는 샤머니즘이 남아있으며 그 중 선한 신으로 묘사되는 바얀과 악한 신으로 묘사되는 각종 원혼, 악령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선한 신인 바얀을 믿는 님의 주변에는 안좋은 일이 일어나며 악령들이 밍에게 빙의하여 주변에 고통을 주는 시기에 바얀은 극 중 님과 밍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나홍진 감독의 전작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선한 초월적 존재가 실재하지만 우리같은 존재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이 영화에서의 바얀은 그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영화 속 바얀의 묘사로만 보면 바얀의 실존 여부에 관한 의심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극 중 묘사로 본다면 이 영화에서는 바얀 즉 선한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바얀은 곧 위기에 처할 밍의 꿈에 지속적으로 나타나 목이 잘린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목을 자른 붉은 옷의 악귀의 존재를 보여주며 밍에게 무언가를 말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님에게도 최소한의 영향력을 끼치며 자신이 베풀 수 있는 최선의 자비를 베풀어줍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있는 님에게 자는 도중에 숨을 거두는 라이따이를 베풀면서 말이죠. 곡성의 경우를 생각했을 때 초월적 존재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극의 중심 소재 상 님이 퇴마에 참여했더라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히려 님은 더 비참한 최후를 맞이 했을 가능성이 높죠.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믿는 존재에게 가장 편안한 안식을 취하게 해준 존재가 바얀이라는 가정하에 극중에서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바얀은 실존하지만 극중에서 인간은 영적 존재의 선악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밍에게 일어나는 일을 보고 님과 노이는 바얀신이 깃들고자 하는 것으로 처음에 착각하기도 하고, 싼티의 죽음 이후 몸에 영적 존재를 받아들인 노이는 그것이 바얀신이라고 생각하지만 극의 전개와 시종일관 웃는 노이의 모습이 밍과 비슷하다는 점, 그리고 불에 타서 죽는 노이의 최후를 고려해보면 그 존재는 공장을 불태운 가족의 원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죠. 이는 곡성에서 신부의 앞에 손에 구멍이 뚫린 모습으로 등장한 악마와 비슷한 것으로 인간이 초월적 존재를 마주쳤을 때 그것의 선악을 구분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영화의 해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2. 필연과 우연

이 영화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필연우연일 것입니다. 밍과 님의 집안은 대대로 랑종이 될 운명을 배출하는 집안이죠. 이 부분은 필연입니다. 그렇기에 밍, 님, 노이는 모두 영매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이는 님보다 먼저 바얀의 신내림 증상을 겪었고, 밍은 바얀의 메시지를 볼 수 있었으며, 결국은 악령들의 영매가 되고 맙니다. 하지만 결국 랑종이 된 인물은 님이고 원래 운명은 노이가 랑종이 되는 것이었기에 이는 우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야싼티야 가문에게 저주가 내린 것은 그들의 과오로 인한 필연이지만, 그 악령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랑종의 후예인 밍이 악령들의 숙주가 된 것은 반대로 우연이죠. 밍이 반드시 악령들의 영매가 되어야 한다는 필연적 요소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한 노이가 바얀신이라고 여기며 받아들인 공장에 불을 지른 아싼티야 가문의 악령은 마침 조상신이 내리기 좋은 노이가 그 순간에 그 장소에서 신을 받아들이기로 결심을 하여서 받아들여진 것이지. 이또한 필연적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이처럼 삶은 필연과 우연의 연속이라고 이 영화는 말합니다.


2-3. 색채대비

 극 중 주목할만한 것이 색채대비입니다. 영화를 보게 되면 기본적으로 전반적인 분위기가 푸르스름하다는 점을 캐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작진은 본인들이 강조하고 싶어하는 것적색계열(붉은색이나 주황색)을 사용하면서 강조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적색이 대체로 악귀를 의미합니다. 바얀의 목을 자른 붉은 바지와 조끼를 입은 존재, 주황빛이 감도는 밍과 계속 눈을 마주치다 다음날 죽은 맹인, 밍의 몸에 악귀가 들어간 이후 진행된 하혈, 장례식에서 남들과 달리 붉은 우산을 쓴 밍과, 맥에게 제사를 올리는 님을 바라보는 노이가 쓰고 있는 붉은 우산과 같이 말이죠. 이와 같이 이 영화도 색채를 통한 인물들의 미래 암시와 현재 상황을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접어들며 이와 같은 점이 많이 희석되었죠.


3-1.촬영방식과 마케팅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페이크 다큐(혹은 모큐멘터리) 형식 중 불의의 사고로 제작진 전원이 세상을 떠나거나 혹은 실종되었거나, 촬영 테이프 자체가 유실된 것을 찾았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파운드 푸티지 장르입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당연하게도 핸드 헬드 방식의 촬영 방식이 사용되었죠. 이러한 촬영 기법은 꽤나 효과적입니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를 접한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에 한해서 말이죠. 이 영화들이 기본적으로 바라는 것은 이 사건이 실제로 있었는가에 대해서 시종일관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실제로 1999년 <블레어 위치> 개봉 당시 영화에 나오는 사건이 실제 있었던 일이었던 것으로 홍보하여 대박이 났던 사례가 있었고 이후 파운드 푸티지 장르는 공포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이미 2007년 <파라노말 액티비티>와 <REC>의 대 성공으로 전성기를 맞았고, 이후 침체기를 겪으며 앞서 설명한 영화시리즈 모두 최신작들은 비참한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이제 공포영화 매니아들에게는 지겨운 파운드 푸티지를 효과적으로 살리기 위해서는 매니아층 이외의 사람들에게 이 사건이 실제로 있던 일인가 헷갈리게 만드는 방법이 최선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종일관 나홍진 감독과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 네임밸류와 곡성과의 연계점을 바탕으로 홍보를 했습니다. 즉 관객들은 이미 이것이 모두 만들어진 영화이며 곡성의 프리퀄이라는 전제하에 관람을 하게 된 것이란 말이죠. 그럼 파운드 푸티지의 장점은 예산 절감밖에 없어집니다.


3-2.불편함 유발

그리고 또 다른 단점은 영화가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장면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페이크 다큐 형식이기에 더 문제가 되는 것인데요. 대표적인 장면이 밍이 직장에서 하혈을 하는 장면과 반려견 럭키의 죽음 그리고 아이의 납치입니다. 밍이 직장에서 하혈을 하는 장면을 보면 남자로 추정되는 카메라맨이 여자화장실까지 가서 문틈새로 밍의 모습을 몰래 촬영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셰이키 캠 기법의 특징은 흔들리는 카메라 앵글이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에선 촬영자가 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촬영자가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영화가 진행되는 페이크 다큐의 특성 상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줄 가능성이 너무 높은 장면입니다. 그리고 럭키의 죽음과 아이 납치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극 중 연출로 보면 집안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다큐 제작진들이 집 외부에서 내부를 관찰을 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전반적인 상황을 보고 있다는 것인데요. 아무리 다큐멘터리의 특성 상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고는 하지만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상황이 있는데도 방관만 하고 있다는 것은 관객들에게 충분히 이질감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파라노말 액티비티>, <REC>, <블레어 위치>와 같은 영화들이 이러한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해당 영화들에서 촬영자는 사건의 관찰자가 아닌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관찰자 입장에서 관음과 방관을 일삼는 행위는 관객들에게 부정적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전반적으로 페이크 다큐 형식을 포기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3-3. 빈약한 후반부

이 영화는 퇴마 전후가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전반부는 앞서 설명한 영적 존재의 선악의 모호함, 색채 대비, 각종 상징물들을 통한 빌드업이 꽤나 매력적이었던 한편 퇴마가 시작된 이후로는 평범한 공포영화들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보여줍니다. 이 부분이 <곡성>과의 큰 차이점이자, <곡성>을 기대하고 본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준 부분일텐데요. 


 <곡성>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모호함의 경계에서 누가 선이고 악인가 해당 인물은 원래 악이었나 변절한 것인가, 이 인물의 정체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을 던지며 관객들을 현혹시켰습니다. 하지만 <랑종>은 오히려 후반부에 몇몇 오마주로 보이는 장면들을 넣으며 <REC>와 비슷한 노선을 밟으며 전개를 이어갔기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곡성과는 다른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생각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것이 이러한 후반부가 아닐지 생각이 드네요. 그렇다고 공포 영화로서의 기본도 지키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핸드 헬드 기법 특유의 제한적 시야와 이에서 비롯된 불확실함에서 오는 공포, 정상적인 인간과 다른 행동을 보이는 밍의 태도에서 오는 이질감에서 오는 공포 등 공포영화로서의 기본은 해주었습니다. 다만 곡성에 버금갈만한 공포영화가 아니었던 것이 문제였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랑종>은 <곡성>과 <REC>의 합체판의 다운그레이드라고 생각합니다. 둘의 장점 모두 어느 정도 가져왔으나 결과물은 약간 애매한 느낌을 주더군요. 그렇다고 못만든 영화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장점이 뚜렷하기에 단점이 더욱 아쉬웠던 영화였습니다. 넷플릭스와 같은 곳에서 보기에 이 영화는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볼만한 영화의 축에 들어가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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