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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Nov 26. 2021

찢어지며 이해하고 아물며 성장하라

<장르만 로맨스> 리뷰

1. 개요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과 함께 대화하고 생각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느끼며 한탄하는 이도 적지 않죠. 하지만 우리는 씁쓸하지만 인정해야할 부분을 우리 스스로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해야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대로 행동할 뿐이죠.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인간관계에서의 이해의 필요성, 차이를 인정하고 성장할 이유를 말합니다.


 이 영화의 장점은 1. 캐릭터와 이해, 2. 메타포를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단점의 경우에는 1. 애매한 장르적 구분, 2.매끄러움의 부족을 꼽겠습니다.


2-1. 캐릭터와 이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개성넘치는 캐릭터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부담감으로 인해 7년째 글을 쓰지 못하는 천재 작가와, 그런 작가를 사랑하는 젊은 작가 지망생, 작가의 전 아내와 현 아내, 방황하는 아들, 그리고 철없는 옆집 아주머니까지 캐릭터들이 전반적으로 매력이 있습니다.


 류승룡 배우님, 무진성 배우님의 연기는 캐릭터들의 깊이를 더해줬고, 몰입감을 유도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특히 류승룡 배우님이 연기하신 김현의 경우 "작가"라는 이름의 무게를 중시하는 인물이기에 유진에게 작품 대신 습작이라는 말을 사용하라고 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런 김현이 더 이상 작가로 불리지 않고 교수님이라는 칭호로만 불리는 상황에서의 김현이 느끼는 중압감과 절망감, 좌절감을 드러내는 류승룡 배우님의 연기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또한 이 영화에서 재밌는 점은 대부분의 캐릭터가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술김이라고 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듣지도 않은 채 고백을 한다거나, 자신이 관계를 오해하고는 그 관계에 집착을 한다던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멸칭을 섞어가며 분노한다던가, 상대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는 인물들처럼 말이죠. 서로가 이해하지 않는 관계에서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우습다고 생각하게 연출한 것이지만, 실상 우리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의식하게 되면 씁쓸하게 웃음이 지어지는 재밌는 부분이었습니다.


2-2. 메타포

 이 영화는 메타포 역시 준수한 편입니다. 인물들 간의 메타포와 그에서 비롯되는 구도적 메타포까지 정말 좋았습니다. 먼저 이 영화에 등장하는 김현, 유진, 성경은 서로가 서로를 닮았으며 과거와 미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진은 김현의 과거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재성을 가진 작가이자 아직 열정을 잃지 않은 청춘인 유진의 모습에는 소설의 연이은 성공 전 김현의 모습이 투영되어있습니다. 그렇기에 둘은 문체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죠. 또한 그들은 가족 관계의 붕괴 여부 역시 닮아있습니다. 붕괴의 원인은 다르지만 김현은 가정이 이미 붕괴된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수차례의 이혼을 경험했고, 현재 혼자 기러기 아빠 신세에 놓여있는 인물입니다. 반대로 유진의 경우 극 중 아버지와 단절된 상태에 놓여있죠. 그런 상황에서 김현이 유진에게 아버지를 찾아가보라는 말은 자신이 겪은 실수를 유진이 겪게 하고 싶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자신을 보며 조언해주는 느낌이죠.


 또한 성경은 유진의 과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성경과 유진의 극 중 공통점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해주지 않는 상황에 놓인 인물이라는 점인데요. 하지만 이 문제를 헤쳐나가는 두 인물의 대처는 상당히 상반되었습니다. 성경의 경우에는 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분개하며 상처받고 슬퍼하죠. 하지만 찢어지고 극복한 일이 많다는 유진의 경우 그 사실을 인정하며,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정도로만 접근하는 인물입니다. 비슷한 사건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성숙해져가는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죠. 극 중 성경이 말하는 것 처럼 아픈 상처가 어떻게 괜찮아지는지, 미숙한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상처는 아프고 흉터는 볼품없으니까요. 하지만 흉터를 보며 그 상처를 피해가고 살아가는 것이 결국 인생이라는 말을 전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앞선 성경과 유진의 관계에서 비롯된 구도의 측면도 인상깊었습니다. 김현은 상처받은 성경을 향해 많이 아팠겠다고 말하는 와중에도 울고 있는 성경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의 시선은 사선으로 빛이 내려쬐는 위쪽 창문을 향해있죠. 그렇게 상승의 이미지를 띈 채 해당 장면은 막을 내리는데요. 극중에는 시종일관 상승의 이미지를 띄는 장소이자 인물이 있습니다. 언덕 위 옥탑방에 살고 있는 유진이죠. 그렇기에 이 장면은 김현이 성경과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그리고 놓여있는 인물인 유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물간의 관계와 구도를 통해 잘 연출해낸 사례이죠.


3-1. 애매한 장르적 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명작이다, 걸작이다와 같은 호칭이 붙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단적인 예시가 애매한 장르적 구분입니다. 이 영화는 영화 포스터에서부터 코미디, 로맨스, 느와르, 스릴러라는 말이 존재하고, 장르의 분류는 코미디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드라마 장르로 보기에는 동성애와 관한 진중한 주제를 다루면서 그 태도가 가볍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코미디라고 하기에는 장르적 쾌감이 큰 편도 아니었고, 주제가 무거운 만큼 이를 유쾌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관객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느와르나 스릴러라는 말은 애시당초 성립도 되기 힘들 정도로 해당 요소의 결핍이 심했습니다.


 코미디 드라마라는 장르는 충분히 재미있고 좋은 장르이긴 하지만, 이 영화처럼 주제가 민감한 이야기를 다루기에는 적합한 장르가 아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코미디적 요소를 온전히 배제한 상태에서 진중한 드라마 형식으로 만들었다면, 제 기준에서 더 마음에 드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3-2. 매끄러움의 부족

  이 영화가 조은지 감독님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어찌보면 당연스러운 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약간은 작위적인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대표적인 예시가 유진을 보고 게이라고 말하는 학생과, 이유영 배우님이 연기하신 정원의 배우 설정입니다.


 우선 유진은 김현의 수업을 듣기위해 작년에 입학하고도 휴학을 계속해서 하고 있던 상황입니다. 거의 신입생이라고 할 수 있죠. 극중 묘사로 보면 동기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학생도 아니기에, 자신의 개인적인 사정을 다수에게 말했을 확률도 낮아보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입는 상처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안 온 학생을 부르는 김현의 말에 게이요 라고 답하는 학생이 존재한다는 것은 약간 작위적이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또한 정원의 배우 설정 역시 극 중 성경을 혼란시키는 그 대사 한 줄을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그 특색을 제대로 살렸다는 느낌도 덜하며, 마지막에 성경에게 자신이 좋아한 적 없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설정이라는 느낌 역시 강합니다. 정원은 꽤나 매력적인 캐릭터였기에 해당 설정이 잘 녹아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강하더군요.


4. 마무리

 전반적으로 <장르만 로맨스>는 조은지 감독님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수준의 좋은 영화였습니다. 상업적 요소는 뒷전으로 놓고 생각했을 때 장르만 살짝 바꿨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영화였습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에 보기 좋은 웰메이드 국산 영화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퀴어 관련 거부감이 없으시다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리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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