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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Nov 29. 2021

조작된 현실에서도 진실된 감정은 피어나리라

블레이드러너 2049 리뷰

1. 개요


 내가 나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와 같은 질문은 자신의 실존에 관한 본능적인 탐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는 전편인 블레이드러너에서도 중심적으로 던졌던 주제이기도 하죠. 전작은 "기억이란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자 앞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 인간과의 차이점이 사라진 레플리칸트는 인간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 라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그리고 블레이드러너2049에서 드니 빌뇌브 감독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거짓이었을 때, 당신은 당신으로서 온전할 수 있는가?"라고 말이죠. 영화 <블레이드러너2049> 리뷰 시작합니다.


이 영화의 장점은 1. 블록버스터 답지 않은 세심한 묘사와 상징성, 2. 진실과 거짓, 실재하는 것과 허상의 모호한 경계 3. 블레이드러너 시리즈의 감성적 진보 꼽겠고 크게 지적하고 싶은 단점은 없습니다.


2-1. 블록버스터답지 않은 세심한 묘사와 상징성

 영화 블레이드러너 2049는 제작비로 1억 5천만 달러나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세심하고 깊은 영화입니다. 대신에 전작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듯 불친절하고 루즈한 영화이기도 하죠. 큰 금액을 투자한 기업의 입장에서 반기지 않을 영화이지만 어쨌든 개봉에 성공했고, 당연하게도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이처럼 이 영화는 굉장히 이례적이고도 색다른 영화입니다. 블록버스터이지만 대중성과의 타협을 줄인 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하는 기묘한 영화죠.



 비교적 간단 플롯을 바탕으로 난해한 질문들을 던지는 듯 하지만 영화는 의외로 여러 단서들을 곳곳에 꽤나 빽빽하게 뿌려놓았습니다. 스텔린 박사가 케이의 기억을 보고 실제 있었던 기억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케이 본인이 직접 겪은 기억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녀는 자신의 모든 작품에 자신의 기억이 투영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해당 기억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은근히 우리에게 알려주었죠. 또한 데커드의 동료 형사 게프가 케이에게 건내어주는 종이접기는 양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1996년, 세계 최초의 복제 동물인 양, 돌리가 세상에 드러난 이후부터 복제된 생명체를 나타내는 심볼로 자리잡은 양을 케이에게 보여준 것을 통해 케이는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복제된 존재라는 점 또한 알려줍니다. 이처럼 영화는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다양한 수단을 이용하여 관객에게 메타포와 상징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2-2. 복제와 오리지널의 대비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미워할 수 없고 상당히 고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보도록 하죠. 우선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는 구도는 케이와 스텔린 박사의 대비입니다. 케이는 복제된 존재인 레플리칸트이자, 이식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또한 프로그래밍된 홀로그램에 사랑에 빠지고, 홀로그램을 씌운 매춘부와 육체적 관계를 맺기도 하며 자신이 태어난 존재라고 잘못 알고 있던 가여운 존재이기도 하죠. 그리고 스텔린 박사는 레플리칸트로부터 태어난 존재이자, 진실된 기억, 복사되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태어난 존재죠. 둘은 간단히 보면 한 명은 진짜, 한 명은 가짜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 구분을 더욱 모호하게 만들며 영화를 더 재미있게 만들어줍니다.


 저는 영화 속에서 조이와 사랑에 빠진 케이를 보고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이 생각났습니다. 현기증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사랑을 다룬 영화로 주인공 퍼거슨이 주디가 연기한 매들린과 사랑에 빠지지만 후에 나타난 주디로부터 주디가 연기한 매들린을 찾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퍼거슨이 사랑한 대상은 누구일까요? 본인은 매들린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주디였고, 본인은 주디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주디가 연기한 매들린의 모습을 좇는 대상으로서만 필요할 뿐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퍼거슨이 사랑한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신에 그가 사랑을 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이와 같이 케이도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사랑을 나누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조이를 사랑했습니다. 육체적 관계를 맺기도 했고, 조이로부터 조라는 이름을 받기도 했으며, 그녀로부터 사랑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죠. 하지만 조이는 프로그래밍 된 존재일 뿐이고 조라는 이름조차 프로그램의 일부였으며, 육체적 관계를 맺은 대상도 엄밀히 따지면 조이의 탈을 쓴 매춘부였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가 사랑을 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습니다. 케이는 아마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거짓된 환상이었을 지라도 내가 느꼈던 감정만은 진실된 것이다."라는 일념하에 데커드를 돕고 그가 스텔린 박사와 만나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케이는 거짓된 존재로 만들어졌지만 세상을 누비며 진짜 꽃, 진짜 벌을 만나고 접촉하며 진실된 경험을 만들어 나간 존재입니다. 하지만 반면에 스텔린 박사는 진실된 존재로 태어났지만 방안에서 가짜 식물, 가짜 곤충을 만들어내며 거짓된 경험들을 제조하는 존재죠. 이처럼 이 두 캐릭터의 대비는 정말 멋집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케이가 가장 인간다운 최후를 맞게 함으로서 자신의 감정, 경험만은 언제나 진실된 것이며, 이것을 느낀 자들이 진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2-3. 블레이드러너 시리즈의 감성적 진보

  저와는 달리 전작의 헤비 팬층들은 로이와 비교하며 케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우선 전작의 로이가 세상에 나타나 조물주의 눈을 파 죽이며 레플리칸트와 인간 사이의 구분이 부질없음을 말하고 세계관의 전복을 이끌어낸 인물이었던 반면에 이 영화에서의 케이는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해 낸 것이 없습니다. 데커드는 익사한 것으로 되어있고, 자신과 데커드를 제외한 존재들이 스텔린의 정체에 대해서 모르며, 레플리칸트의 해방 혁명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철학적으로, 그리고 세계관에 끼친 영향적으로 케이는 로이에 못미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블레이드러너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작품이 나오고 그 주제마저도 클리셰가 된 상황에서 이 영화가 철학적으로 더 나아갈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 듭니다. 저는 그래서 조금 감정의 영역에 호소한 느낌이 들더라도 오히려 좋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다움이라는 주제를 살리는 감성적인 진보는 앞으로 블레이드러너 시리즈가, 더 나아가 SF장르의 발전의 장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점으로는 긴 러닝타임과 좀 늘어지는 전개, 영화내에서 별로 크게 활약하지 않은 존재들과 레플리칸트 단체와 같이 사족인 부분들이 있겠습니다. 하지만 크게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없네요. 색다른 블록버스터나 유려한 영상미, 사이버펑크의 신주소, SF의 신고전을 보고 싶으시다면 추천드릴만한 작품입니다.


제 기준 2010년대 최고의 SF영화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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