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리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는 슈퍼히어로 장르의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 어떤 영화사보다 장르간의 결합에 도전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캡틴아메리카 시리즈>는 <본 시리즈> 같은 정치스릴러물과의 결합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는 <스타워즈 시리즈>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와의 결합을 보여주었죠. 이외에도 햄릿의 스토리 라인을 가져온 <블랙팬서>, 동양 무협 영화의 연출을 옮긴 <샹치: 텐 링즈의 전설>을 만드는 등 MCU는 항상 장르간 결합에 엄청난 공을 들여왔습니다. 그리고 2022년 MCU는 가장 마이너한 장르 중 하나인 공포 장르와의 융합을 이번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 <닥터 스트레인지 2>)에서 시도했습니다.
이 영화의 특징은 공포영화적 문체, 간결한 주제와 아쉬운 디테일, 전편에 비해 아쉬워진 시각적 연출입니다.
이 영화는 스토리라인과 등장인물과 같은 캐릭터를 제외하고 연출적인 측면만 보았을 때, 슈퍼히어로를 다루는 블록버스터 영화라기보다 공포영화에 가까운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샘 레이미 감독의 색채가 굉장히 많이 포함되어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말입니다. 이 영화는 여러가지 카메라 연출 방식이나, 사운드 표현 방법, 공포영화적 클리셰와 같이 상당히 공포영화적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포영화의 연출은 기본적으로 결여와 극대화에서 비롯됩니다. 내가 마주친 대상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려주지 않는 정보적 결여, 마주하는 존재의 정체는 알고 있으나 정확한 위치와 상태를 모르게 하는 감각적 결여, 그리고 관객을 집중 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감각적 극대화가 그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중반부에서 일루미나티의 프로페서 X가 스칼렛위치의 머리 속에 들어가 갇혀있는 완다와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해당 장면에서는 지하로 보이는 낮은 위치에 구멍이 있었고, 그 곳을 클로즈업하다가 안에 갇혀있는 완다의 손이 나옵니다. 해당 연출은 <그것(2017)>의 초반부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 적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출들은 앞서 말한 정보적 결여를 이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루미나티의 패배 이후, 비샨티의 책을 찾으려는 닥터 스트레인지 일행과 차베즈를 손에 넣으려는 스칼렛 위치 사이의 추격전도 공포영화적 연출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리를 절며 쫓아오는 스칼렛 위치의 모습이 <샤이닝>에 나오는 잭 토렌스의 모습과도 유사하지만, 이후 밀실에서 완다의 추격을 받는 상황에서의 연출이 더 흥미롭습니다. 완다가 추격해오고 있음은 일행 모두 인지하고 있으나, 정확한 상태를 모르는 상황에서 영화는 주변의 소리를 크게 부각시킵니다. 이는 작은 소리 하나하나에도 관객을 집중하게 만드는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격벽 너머에 있을 완다를 의식하듯 격벽을 점차 클로즈업하여 관객들에게 시각적 제한을 두고 완다를 등장시키는 등 이 영화는 상당히 많은 공포영화적 연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단순히 촬영 기법만 공포영화의 것을 가져온 것은 아닙니다. 공포영화적 클리셰 혹은 메타포 역시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죠. 시니스터 스트레인지를 만나기 직전, 등장인물들의 발이 계속해서 물에 잠기는 장면들을 영화는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는 공포영화의 클리셰 중 하나입니다. 주인공이 안좋은 일을 겪기 이전에 발을 물 웅덩이에 빠뜨린다는 것 말이죠. 영화 <곡성>에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힘을 가진 자가 부정한 수단을 이용하여 목적을 달성할 때 선과 악을 결정짓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디파티드>에서 잭 니콜슨이 말한 대사처럼 경찰과 범죄자 모두 총을 사용하는데 그 둘이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죠. 그리고 이 영화는 대부분의 관객이 이해하기 쉽게 이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사사로운 것인지, 대의를 위한 것인지에 달려있다."라고 말이죠. 극 중 닥터스트레인지와 전면으로 대립하는 인물은 시니스터 스트레인지와 스칼렛 위치 둘 뿐입니다. 전자는 자신이 크리스틴과 이어진 세계를 찾기 위해서 다크홀드를 사용하였고, 후자는 자신의 쌍둥이 아이를 만나고 싶다는 명분하에 다크홀드를 사용하였습니다.
사적인 목적으로 부정한 방법을 사용한 이들을 명백한 적으로 설정하고, 대의를 위해 다크홀드의 사용과 살인같은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는 이들을 활용하여 시련을 주는 방식은 꽤나 좋았습니다. 이후 다크홀드는 사용하되 살인은 하지 않고, 그로 인한 대가를 스스로 감내하는 엔딩까지, 이 영화의 메시지는 직관적이고 좋은 편이었습니다.
허나 스토리면에서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새롭게 등장한 멀티버스 상의 인물들 중 차베즈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너무나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멀티버스 소속으로 생존한 인물들이 크리스틴과 칼 모르도 정도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접이 바로 일루미나티입니다. 일루미나티 소속의 인물들은 캡틴 마블을 제외하고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리타이어합니다. 해당 세계관의 어벤져스 정도 포지션의 집단으로 소개된 일루미나티가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은 허무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샘 레이미 감독 특유의 B급 연출이라고는 해도, 이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B급 감성의 공포영화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MCU의 팬으로서 닥터 스트레인지의 이야기를 보러 온 것이기에 이는 명백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당 영화의 CG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합니다. 극 초반부에 나오는 크리쳐의 생김새나, 마법의 쓰임새와 같이 다양한 부문에서 사용된 CG 연출들은 상당히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전작의 시각적 충격과 비교했을 때, 이 영화가 그 정도의 충격을 주었는가 생각해보면 그것은 아닙니다.
전작의 시각적 요소에 관한 호평은 마법의 활용에서 기인하지 않았습니다. 미러 디멘션과 다크 디멘션을 표현하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연출들이 계속해서 등장했기 때문이었죠. 허나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전작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도 물론 이런 요소를 활용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미러 디멘션에 갇힌 완다의 장면은 좋았고, 완다가 반사를 이용하여 공격을 가하는 장면은 공포적 연출과 어우러지며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그게 거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비샨티의 책이 있는 곳이나, 멀티버스를 여행하는 장면도 멋지기는 하지만 그 분량이 너무 적거나 제대로 된 공간적 활용을 이루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2>는 여타 마블 영화들이 그러하듯 준수한 완성도의 블록버스터 무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나 완성도와 별개로 히어로 무비와 공포라는 다소 마이너한 장르와의 결합이 맞는 것인지, 앞으로의 MCU의 미래를 성공적으로 구상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다소 의문점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MCU를 보지 않는 이들이 말하는 가장 큰 이유는 너무 높아진 진입장벽이었습니다. 그런데 해당 문제를 직면한 이후 제작된 이 영화는 MCU 사상 최고 수준으로 높은 진입장벽을 지니고 있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스토리를 알기 위해서 페이즈 3까지를 시청해야하고, 이야기의 시작은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완다비전>에서 시작됩니다. 게다가 감독인 샘 레이미의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다면 100% 즐기기 어려운 영화가 이 영화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