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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Dec 06. 2021

코스믹호러로 인한 광기에 사로잡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지옥> 리뷰

1. 개요

 코스믹 호러(혹은 코즈믹 호러) 장르는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에서 기원된 공포 장르의 하위 분류로, 불가역적인 존재를 목도한 인간이 느끼는 형용할 수 없는 미지의 공포를 다루는 장르입니다. 크툴루 신화 자체가 컬트적 팬덤을 가지고 있으며 코스믹 호러 자체도 나름의 팬덤을 확고히 가진 장르입니다.


 저 역시 그 매력을 느껴 러브크래프트 전집을 구매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서 파생된 코스믹 호러 장르를 전반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형용할 수 없는 미지의 공포라는 자체가 말 그대로 말, 글, 몸짓 따위로 표현하기 힘든 것을 말하기 때문에 굉장히 섬세하게 분위기를 조성하고 연출에 공들이지 않는다면 장르 특유의 매력을 느끼기 힘들다는 요인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리뷰는 주관적이고 편향적인 요소가 상당수 가미되어있는 점 유의해주세요.


 <지옥>역시 인간이 어떻게 손쓸수 없는 절대적 존재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로 일종의 코스믹 호러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전반적으로 일장일단이 뚜렷했던 드라마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지옥>의 장점은 1. 시각효과, 2. 선신의 존재 여부와 광신도 표현, 3. 정진수와 진경훈의 대립이고, 단점은 1. 전형적인 캐릭터의 아쉬움, 2. 템포문제 정도로 말하겠습니다.


2-1. 시각효과

 지옥은 시각효과가 꽤나 훌륭했고, 그와 관한 연출 역시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1화에서의 사자들의 첫 등장은 상당히 강렬했습니다. 카페 창문을 깨부수며 등장하고 도심을 질주하며 시연자를 처단하는 장면은 코스믹 호러 장르에 어울리는 연출이었습니다. 사자는 도망치려해도, 날뛰어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각인을 확실히 시켰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평가하고 싶습니다.


 또한 민혜진의 도주씬 역시 그 퀄리티가 좋았습니다. 전반적으로 롱테이크를 가져가면서도 빠른 카메라 무빙과, 셰이키캠 기법을 사용하여 긴박감과 긴장감을 주었고, 전통적인 롱테이크의 단점인 촬영 난이도 문제와 지루함 유발 가능성까지 제거하는데 성공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눈여겨본 장면이 비보호 좌회전 간판의 뒤에 십자가가 비치되어있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는데요. 선과 청렴으로 상징되는 성스러운 종교 관련 심볼과 비보호 간판을 같이 보여줌으로서 신을 믿는것, 믿는 종교의 종류와는 관계없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암시로 보였습니다.


2-2. 선신의 존재 여부와 광신도 표현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신, "선하고 전능한 유일신은 존재하는가?" 에 관한 의심을 자극합니다. 극중에는 악한 자들을 처벌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베이스로 깔려있지만 시연을 당한 이보다 악한 자가 살아있는 세상이 과연 옳은 것인가와 같은 질문 역시 던지기도 합니다. 이를 표현하는 것이 김창식과 박정자라는 캐릭터입니다. 사자에게 시연을 당한 박정자와 인간에 의해 죽음을 맞은 김창식의 대비는 "천사와 사자의 등장이 세상을 더 정의롭게 만든다고 할 수 있을까?" 에 관한 관객의 생각을 유도해냅니다.


 또한 광신도들의 묘사 역시 좋았습니다. 세상의 이성과 질서가 마비된 상황에서 정의를 부르짖지만 무질서와 혼돈을 신봉하는듯한 화살촉과 신도들은 코스믹 호러 세계관의 등장인물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도 "의도는 정의롭지만 그릇된 행위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 역시 관객에게 던집니다. 악인을 살해하는 것, 신을 위한 일이라며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데스노트나 아즈텍 제국의 인신공양을 생각나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정진수를 통해 "말하는 현상을 보면서 의도를 파악한다고 하는 행위가 과연 옳은가?"에 관한 질문 역시 흥미로웠고 그 질문에서 말하는 대상이 제가 된 느낌을 받아 글을 쓰는 것에 관해서도 생각해보곤 했습니다. 신이 벌이는 행위를 보고 그 의도가 정의를 찾기 위함이라 부르짖는 정진수와 영화를 보며 그 메시지와 장면을 생각하는 제가 무엇이 다른가에 관한 생각을 하는 시간이 되었고, 제 말이 진실이 아님을 끊임없이 되새겨야한다고 느꼈습니다.


2-3. 정진수와 진경훈의 대립

  1부의 메인 캐릭터인 정진수와 진경훈 서로 대립되는 가치와 신념을 가집니다. 인간의 자율성과 정의에 관한 상반된 의견을 지니고 있죠. 정진수는 신의 절대성을 믿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자율성의 아래에서 인간은 절대적 정의와 선을 이룩할 수 없다. 그렇기에 절대적 존재에 대한 공포를 통한 참회가 필요하다." 말합니다. 반면 진경훈은 인간의 가능성을 믿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더욱 발전할 여지가 있는 존재임을 믿는 것이죠. 저는 진경훈에 더 가까운 신념을 가집니다. 인간만이 절대적 이상향인 신을 섬기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불완전한 점을 보완하려 노력한다는 믿음을 가집니다.


 신이 모든 것을 정한다고 믿었던 중세 이전의 인간상인 정진수가 신이 죽었다 믿는 니체와 같이 근대 이후의 인간상인 진경훈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진경훈과 같은 사람이 고난을 겪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면서도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는 생각까지도 들게 하니 말이죠.


3-1. 전형적인 캐릭터의 아쉬움

 <지옥>과 같은 코스믹호러물에서 인물 군상은 크게 3가지로 나뉩니다. 크게 초월적 존재의 앞에서 공포에 떠는 인물, 혼란을 야기한 초월적 존재를 숭배하는 인물, 혼란에 맞서는 이성적 인물로 나뉘는데요. <지옥>은 그 전형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정진수가 매력적이었지만 아쉬움은 존재합니다.


 저는 이 드라마의 메인이 되는 정진수 캐릭터가 아쉽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정진수는 극 중 생각이 깊은 철학자 내지는 선지자같이 묘사되지만 그의 말은 궤변 투성이입니다. 진경훈을 보며 일식을 일으킨 큰 개를 쫓는 우둔한 사냥꾼이라고 하지만 본인은 일식이 신의 분노라고 울부짖는 제사장 그 이상의 존재가 아니며 자신은 인간이 자멸하지 않도록 의미를 부여했다는 말 역시 궤변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현재 일식이 신의 분노가 아닌 천체현상임을 알고 있지만 자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천체현상의 원인을 결국 인간이 밝혀냈기 때문입니다. 그는 거짓된 발언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며 두려움에 찬 이들을 선동하고 폭도를 방치하는 등 혼란을 야기했을 뿐 자멸을 막는데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신이 지옥에 갈 일을 하지 않았기에 시연은 재해에 가깝다는 정진수의 말도 어폐가 있습니다. 정진수는 저 말을 하기 전에 극중에서만 2가지 큰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진희정과 함께 김창식을 죽였고, 김정칠에게 새진리회 의장 자리를 주는 조건으로 민혜진을 죽이라고 지시하는 살인교사를 저질렀습니다. 1부에서 "지옥에 가는 이유가 정말 악행때문인가?"라고 던진 질문에 대한 반례로 남길 원한 듯한 그의 대사는 그의 행동과 상충하여 박정자가 남긴 사례보다 충격이 적었습니다. 이는 코스믹 호러 세계관의 전형인 이성이 붕괴된 인물을 묘사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저는 이런 묘사가 취향에 맞지 않습니다. 편하게 모순덩어리 인물 만들고 이성이 붕괴되어서 그렇다고 하는 느낌이 들어서인데요. 나쁘게 말하자면 한동안 사건의 당위성을 부여하지 못해 양산되었던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정진수는 여러모로 <다크나이트>를 연상시키는 인물이지만 그에 비하면 매력도가 현저히 낮습니다. <다크나이트>에서의 브루스 웨인은 자신이 하는 행동이 옳지 않음을 알지만 정의를 위해 무력을 사용하고, 자신을 동경하며 무력을 사용하는 자경단의 출현을 두려워합니다. 그렇기에 고담을 올바른 방법으로 지킬 백기사, 하비 덴트를 고평가하죠. 정진수 역시 정의를 부르짖지만 자신이 옳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살촉을 방치하고, 탐욕스러운 인물 김정칠을 후계자로 지정하죠. 혼돈속에서 등장한 올바르지 못한 방식으로 정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가졌지만 한 쪽은 질서를 다시 세웠고, 다른 한 쪽은 더 큰 혼돈을 야기했습니다. 그렇기에 제게 있어서 정진수는 브루스 웨인보다 매력도가 현저히 낮게 다가왔습니다.


 정진수는 여러 말을 하며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지만 본인부터가 허점이 많은 인물인지라 본질적으로 <미스트>에 나오는 광신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성적 차원에서 말과 행동이 상충하지 않았다면 더욱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큰 문제는 배영재 캐릭터인데요. 분명 극의 주연이고 이성적 캐릭터라는 점에서 진경훈과 유사하지만 그저 장기판 위의 말 이상의 존재가 되지 못한채 수동적인 캐릭터로 마무리짓게 됩니다. 극중 동료의 시연을 본 이후 그가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민혜진 변호사와 소도측의 계획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박정민 배우의 열연이 빛이 바랜 느낌이 강합니다.


3-2. 템포문제 

 2부의 템포 역시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제 앞선 리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루즈한 영화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루즈하면 안되는 상황에서 루즈한 것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옥의 2부(4~6화)에서는 시연이 예고된 신생아를 둘러싼 소도와 새진리회의 수싸움이 메인이 됩니다. 정해진 시간안에 새진리회를 피해 시연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소도와 신생아를 탈취해 시연이 퍼지는 것을 막아야하는 새진리회의 긴박한 상황이 배경이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세계관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될 수 있는 상황인 2부이지만 중간중간 송소현이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장면이 꽤나 비중있고 길게 묘사됩니다.이 장면으로 인해 긴박해야할 순간에서 힘이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개인적으로 아쉬웠습니다.


4-1. 마무리

 <지옥>은 제 기준에서는 그저 평범한 드라마였습니다. 하지만 취향적 요소를 베재하고 말하면 꽤나 괜찮은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코스믹호러적 요소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크게 만족하실 드라마인것 같고 종교와 신에 관한 질문이 흥미롭다고 여기시는 분들에게도 추천드릴 수 있겠지만, 잔혹한 묘사에 민감하신 분이나 저처럼 코스믹호러 장르에 반감이 있으신 분에게는 그렇게 추천드리고 싶은 드라마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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