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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Dec 10. 2021

변하지 않는 정체성과 그것을 나타내는 단어, 이름

영화 <문라이트> 리뷰

1. 개요

테세우스의 배에 관련된 역설이 있습니다. 테세우스의 배의 부품을 하나씩 하나씩 고쳐나간 후 테세우스의 배에 원래 있던 부품이 더 이상 남지 않게 되었을 때 그 배는 정말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는가에 관한 유명한 역설인데요. 이는 사람에게도 빗대어 묘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에 있는 세포는 언젠가 죽고 새로운 세포로 대체됩니다.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10년 후의 내가 동일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가? 동일인물이라면 어떤 이유에서 동일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가? 와 같이 말이죠. 이러한 질문의 답이 될 수 있는 영화가 바로 문라이트입니다.


영화 <문라이트>의 특징은 1. 뛰어난 화면 구성, 2. 작중 이름의 상징성, 3.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정체성 묘사를 꼽겠습니다.


2-1. 뛰어난 화면 구성

우선 문라이트는 왕가위 영화가 연상되는 각종 장면들이 존재하고 수준급의 색채 대비를 사용합니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푸른 색채와 붉은 색채의 사용을 통해 굉장히 아름다운 영상미를 뽐내는데요. 푸른색은 치유의 의미를 띱니다. 상처를 입은 후 푸른빛이 감도는 물에 자신의 얼굴을 담그고, 악몽에서 깨어나기 위해 푸른 물에 자신의 얼굴을 감싸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죠. 반대로 붉은색은 상처를 의미합니다. 자신에게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어머니의 고함을 볼 때 뒤에 붉은빛이 감도는 배경이 보이는 것이 대표적인 예죠. 시종일관 우리를 황홀하게 만드는 이 영화는 색채의 면에서는 정말 도가 텄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빛에 관한 묘사도 상당히 재밌는데요, 2부에서 샤이론과 케빈이 해변에서 유사 성행위를 할 때 그들을 감싸는 것은 분위기 좋으면서도 따스한 아름다운 불빛이었습니다. 하지만 샤이론이 집에 들어가 어두운 현실을 다시 마주할 때 우리가 보는 것은 더러운 형광등이었죠. 이처럼 우리는 그의 상황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2-2. 작중 이름의 상징성

문라이트는 샤이론의 성장기를 3부에 나눠서 진행합니다. 유소년기, 청소년기, 성인의 시점에서 벌어지는 샤이론의 인생을 보게 됩니다. 저에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라고 하면 작품의 소제목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 영화의 핵심을 관철하는 것이 이 제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우선 소제목의 이름들은 리틀, 샤이론, 블랙입니다.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샤이론이라는 같은 인물을 지칭하는 말이죠.


 리틀은 샤이론이 작고 약하기에 붙여진, 멸칭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샤이론의 내적 특성에 대해 집중하지 않고 외적인 면만을 본 채 지어진 이름이죠. 샤이론은 그를 가장 잘 나타낸 이름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사실은 그 정반대의 위치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특성이나 성격과 관계없이 타인이 정해준 이름대로 살아갑니다. 샤이론에게 있어서 이 이름은 가족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선택과 관계없이 주어진 것이자 자신은 잊고 싶고 떨쳐내고 싶은 존재인 것이지요. 마지막은 블랙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정한 자신의 이름이자 자신의 인종을 나타내는 이름, 샤이론의 내면 속 가장 되고 싶었던 후안과 비슷한 존재로 거듭난 자신을 일컫는 이름이죠.



2-3.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정체성 묘사

이처럼 각 부에서 샤이론은 서로 다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외적 모습은 계속해서 변해가며 자신이 실망했던 후안이 마약을 파는 모습을 자신조차 하고 있는 것처럼 현실과 타협하기도 하며 어두운 길로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케빈을 사랑하는 마음이죠. 케빈은 괴롭힘 받던 어린 시절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사람이자, 언제까지나 마음 한편에 남아있던 존재였습니다. 이러한 증거로 케빈에 관련된 꿈이 나오는데 2부, 3부에서는 케빈이 꿈에서 나옵니다. 2부에서는 성관계를 맺는 케빈을 지켜보는 모습으로 나오고, 3부에서는 케빈이 꿈에서 나온 이후 몽정을 한 샤이론의 모습이 나옵니다. 케빈을 성적으로 사랑하고 있지만 자신과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의 모습과 이후 그를 아직도 잊지 못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영화 후반부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넌 누구야 샤이론?", "난 나야", "날 만져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었어. 그 후로 난 누군가에게 만져진 적이 없었어." 이는 변해버린 샤이론의 외모가 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케빈을 향한 마음은 변한 적이 없었으며 그것이 나의 본질임을 깨닫는 장면이지요. 이후 샤이론과 케빈은 예전에 해변에서 그랬던 것처럼 서로에게 기대어 앉습니다. 그리고 어린 샤이론이 푸른 달빛을 받은 채 뒤를 돌아보며 영화가 끝이 나죠.

이 영화는 내가 누구인가? 내가 나라는 것을 어떤 것이 증명해주는가? 에 관한 질문을 던져줍니다. 어릴 적 자신이 어른이 되면 세상을 뒤흔들 위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린아이가 자라서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근근이 살아가더라도 우리는 이 둘을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나라는 존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치 않기 때문이죠. 그것이 남들과 다르다고, 무시받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부정하고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 문라이트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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