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업무 중 개인적으로 가장 해보고 싶던일을 꼽으라면, 홈페이지 제작과 회사 소개 동영상을 제작하는 일이었다. 특히, 홈페이지는 브랜드를 소개를 하는데 있어 가장 좋은 매체라는 생각이며, 과거 개인 사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역점을 두어 공부해 보았던 분야이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었다. 2025년 현재에는 SNS 의 발달로 홈페이지의 역활이 일부 축소되기도 했지만, 10년전까지만 해도 기업의 브랜딩에 홈페이지의 역활이 매우 중요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 Wordpress 와 같은 홈페이지 제작 툴이 유행하면서, 누구나 마음 먹으면 직접 전문가스러운 홈페이지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Wordpress 는 초보자들에게는 다소 복잡하게 느껴졌고, 나 또한 여러 Wordpress 커뮤니티 강의에 참석하여 사용 방법을 배워야 했다. 이후로 WIX 와 같은 보다 직관적이고 쉬운 프로그램들이 나오면서 누구나 손쉽게 홈페이지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마케팅 담당자로서 일하면서 회사의 홈페이지를 리뉴얼하는 작업을 진행할 기회가 있었다. 개인 사업자의 홈페이지 제작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는데, 기업의 홈페이지는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브랜드의 얼굴이자, 회사 전체를 대표하는 공식 채널이기 때문이다. 또한, 홈페이지 리뉴얼 과정에서 각 부서의 요구사항과 의견을 조율해야 했고, 최종 결과물은 각 부서 담당자의 리뷰도 거쳐야 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반영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홈페이지 리뉴얼 업무를 담당할 외주 업체를 선정하는 일이었고, 여러 업체의 제안서를 비교 검토해서 가장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프로젝트에 진심을 보인 한 업체를 최종 후보로 내부 추천하고자 했다. 해당 업체는 신생 업체였지만, 대표님 및 디자인 이사님이 업계에서는 꽤나 유명한 마케팅 회사에서 오래 근무를 하신 분들이었고, 무엇보다 프로젝트를 꼭 하고 싶어하는 절실한 마음이 느껴졌다.
결론적으로 사업부장께서도 해당 업체에 좋은 평을 해 주셔서, 해당 업체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기본적인 디자인 컨셉을 결정하고, 기능적 부분을 결정하는 등 홈페이지 제작과 관련된 최신 트랜드에 부합하는 멋진 홈페이지를 기획하는 일이었다. 이 단계에서 마케팅 담당자의 역활은 대략적으로 회사가 원하는 컨셉을 설명하는 일이었고, 업체 전문가들로부터 그에 걸맞는 제안을 받아 의사결정을 하는 정도였다.
물론, 프로젝트가 진행됨에 따라 흥미로운 기획단계보다 많은 양의 정보를 홈페이지에 올리는 반복적인 작업이 뒤따라야 했기에 지루한 순간들도 많았다. 또한, 가끔은 각 담당자가 보내준 정보에도 오류가 있는 경우도 있어 검토와 수정을 반복해야 했다. 보다 완성도 높은 홈페이지 리뉴얼은 디자인 개선 만큼이나, 얼마나 정확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포함하느냐도 중요했기에 사실상 그동안의 마케팅 활동의 가능한 모든 정보를 담고자 노력했다.
마케팅 에이전시의 경우 젊은 사람들이 시작하기 좋은 사업중 하나이다. 초기 투자비용이 비교적 크지않고, 과, 차장급 정도면 이미 여러 프로젝트를 리드한 경험을 가지기 때문이다. 회사의 홈페이지 작업을 해주신 대표님의 경우도 마찬가지 케이스였다. 기존에 다니던 마케팅 회사에서 꽤나 실력을 인정받아 차장급 팀장으로 일을 하다가, 마음이 맞는 디자이너, 엔지니어 등과 창업을 하신 대표님은 사실상 실력만큼은 중견 마케팅 회사의 수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다만, 아무래도 회사의 업력이 짧은 신생회사이다보니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견적을 내야 했고, 이에 따라 낮은 수익률은 운영의 한계로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나와 동갑이던 대표님은 프로젝트가 종료된 후에도 가끔 회사로 찾아와 점심을 함께 하며 회사 운영에 대한 고민을 나누곤했다. 특히, 영업부터 자금, 개발까지 직접 뛰어야 했던 현실은 늘 시간과 자원의 부족을 동반했고, 이후로 2~3년 정도 회사를 운영한 뒤 사업을 접게 되었다.
한때 개인 사업을 생각했던 나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일이었다. 경쟁이 치열한 마케팅 업계에서 살아남기에는 영업력, 자금 모두 충분하지 않았기에 그의 그 도전은 지속되지 못했다.
30대 중반 직장인들은 누구나 한번쯤 개인 사업의 꿈을 꾼다. 그러한 꿈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30대 중반이면 결혼해서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할 즈음이고, 이제 본격적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에 안정된 직장을 떠나, 사업을 한다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 용기와 실력을 겸비했던 사람중 하나로 난 원대표님을 기억한다.
그 후로 그는 식당을 창업해 운영을 하기도 했지만, 최근 소식은 그가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40대 중반이 훌쩍 넘은 나이, 여전히 지속될 그의 다음 행보가 난 아직 궁금하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마케팅 조직은 지원부서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제조업 중심의 회사들은 영업을 지원하는 역활이 마케팅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영업 조직에 비해 인력 등의 리소스가 적기 때문에 마케팅 부서는 조직 내에서 중심 역활보다는 보조적 위치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마케팅을 담당하면서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몸소 느꼈다. 기존 회사에서 영업 업무를 하면서 항상 조직의 중심에서 결과를 이끌어내는 역활을 해온 나로서는 그러한 점이 가장 아쉬웠다. 난 여전히 마케팅일에 관심을 잃지 않았지만 내 핵심 역량이 보다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싶었다.
그러한 고민이 지속되던 어느날, 헤드헌터로부터 슬로우 주서기 (slow juicer) 중남미 영업 포지션 제안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