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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마케팅 그리고, 브라질

by ANTONI HONG

새로운 직장에서 시작한 마케팅 업무에는 명확한 예산이 정해져 있지 않았고 선임자의 업무를 인수인계받은 것도 아니기에 말 그대로 '제로'에서 시작해야 했다. 다만, 그때까지 각 관련부서에서 해오던 일은 그대로 진행해야 했기에 입사 첫날부터 다양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농기계 전시회 지원, 판촉물 제작, 홈페이지 제작, 카탈로그 제작 등등


해야 할 일들은 많았고, 다른 한편으로 비교 기준이 된 그때까지의 적은 예산으로 일을 진행해 나가야 했기에, 초반에는 너무 적극적으로 업무를 진행하기보다는 그들이 해온 업무를 따라가면서 업무 파악을 해 나갔다.


마케팅 업무의 대부분은 많은 외주 업체들과 일을 하게 된다. 카탈로그 제작, 홈페이지 제작, 판촉물 제작 등등 각 분야의 전문 업체와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각 분야의 마케팅 전문가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가 누리는 가장 큰 배움의 기회이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와 외주 업체의 관계는 통상 갑을 관계가 될 수 있지만, 사실상 외주 업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기에, 그들과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마케팅 업무를 하다 보면 내부 의사결정이 번복되어, 최종 마무리된 마케팅 업무를 수정하거나 교체해야 하는 일도 가끔 발생하기에, 마케팅 담당자는 난처한 부탁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외부업체 담당자와 인간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면 업체 측에서 추가 비용 없이 도와주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홈페이지 제작과 같이 온라인 작업을 하면서 잘못된 정보는 바로 수정이 필요하고, 워낙 많은 정보가 들어가다 보니, 내부적으로도 각 부서에서 여러 번 검토를 거쳐 수정하는 일이 많았다. 처음 한두 번은 업체 측에서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대응을 해주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업체 측도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반복되는 부탁은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마케터로서 일하는 동안 사람들과의 관계가 영업업무를 할 때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세상 모든 일은 결국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답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케팅 일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 중 하나는 터키와 중국 대륙을 트랙터로 일주하는 프로젝트였는데, 트랙터 탐험가 강 씨와 함께 진행했다. 강 씨는 이미 한국을 트랙터로 여행한 경험도 있었고 TV 방송에도 나온 바 있었다. 그의 도전은 무모해 보였지만, 그를 직접 만나 탐험을 함께 계획하는 과정에서 그의 순수한 열정에 응원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트랙터를 타고 터키와 중국 대륙을 횡단하면서 여러 농촌 마을을 여행하고, 트랙터도 홍보한다는 컨셉의 여행. 강씨는 트랙터와 연료비 정도를 회사로부터 보조 받았고, 숙식 비용은 최소로 지출하면서 여행을 했다. 한번은 숙박시설을 찾지 못해 트랙터 안에서 잠을 청한적도 있었다 한다. 언어도 안 통하고, 그 나라의 문화도 잘 모르던 그가 트랙터 한대에 의지해서 진행한 그 여행들은 젊음의 도전 정신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회사의 트랙터 홍보를 위해 만난 강씨였지만, 그가 가진 순수한 열정과 긍정적 에너지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던 것 같다. 회사라는 테두리안에 현실적 고민이 항상 먼저였던 나에게 조금은 다른 세계관을 가진 강씨와의 만남은 길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항상 좋은 에너지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트랙터 여행 이후 10년을 훌쩍 넘긴 지금, 그동안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의 수 많은 도전을 보았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그만의 또 다른 도전을 이어나가고 있을 강씨를 응원한다.





회사는 당시 중국, 미국, 브라질에 법인이 있었고, 가끔 업무상 출장을 가기도 했다. 브라질의 경우 법인이 있었던 남부의 Santa Catarina 지역과 전시회가 열린 Não me toque (넝미또끼) 를 방문했었는데, 넝미또끼 지역은 브라질의 주요 농업지대 중 한곳으로, 유럽계 백인 이민자들이 많이 정착한 곳이다.


처음 브라질을 갔을때, 중남미의 한 국가로 스페인어권 사람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길 것이라 생각했으나, 사실 꽤나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인종적으로도 백인이나, 흑인 혼혈이 주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며, 남부 농업 지역의 경우 80% 이상이 백인 인구라 할 수 있다. 기존에 내가 살았던 멕시코나, 중미 지역에 원주민과 스페인 백인의 혼혈인 메스띠소 (Mestizo) 가 주를 이루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그 답은 과거 식민지 시절의 상황을 보면 알수 있다. 멕시코에는 아즈텍, 마야 문명이 번영하면서 그들 원주민들의 인구도 상당했기에 스페인 정복자들은 그들의 사회를 어느정도 인정해야 했고, 그 사회를 이용하기 위해 자연스레 그들과 혼혈이 이뤄졌다.


브라질의 경우 소규모 부족 사회였고, 이들을 노동력 등으로 이용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한다. 영화 "미션" 의 브라질 과라니 족의 사회를 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노동력으로 부릴수 있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브라질로 대거 들어왔고, 자연스레 흑인 노예들과 백인 사이의 혼혈이 진행되었다.


이처럼, 중남미라 부르는 지역은 사실 스페인어권과 포르투갈어권이 서로 매우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지기에, 현재 우리가 볼수 있는 두 지역의 문화적 차이도 상당하다.


브라질을 방문하기 전, 스페인어에 자신이 있던 나는 브라질 포어가 어느정도 의사소통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너무 다른 발음과 단어의 차이 때문에 그냥 영어를 사용하는 편이 훨씬 의사소통이 수월했다. 현지인들끼리는 어느정도 의사소통이 된다는 의견도 있으나, 사실상 간단한 표현 정도만 서로 이해하는 정도라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스페인어로 MORIR (모리르) 는 '죽다' 라는 뜻인데, 포어로는 MORAR (모라-르) 라는 단어는 '살다' 라는 뜻이다. 이 두단어는 왠지 비슷한 뜻일 것으로 예측이 되는데, 사실 정 반대의 뜻이다.


개인적으로 브라질 포르투갈어 발음을 매우 좋아한다. 옆에서 브라질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왠지 불어와 스페인어를 합한듯한 그 소리가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한때는 그 소리에 반해 포어 공부를 시도한 적이 있는데, 발음과 악센트 부분이 상당히 어려웠다.


스페인어의 경우 알파벳대로 발음하면 되고, 악센트도 그리 어려운 편은 아니다. 하지만, 포어의 경우 예외 발음이 상당히 많고, 악센트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단어도 스페인어와는 다른 경우가 많아서,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기억이다. 결국 기초 단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중단하게 되었다.


브라질을 직접 가보게 되면서 중남미 지역에 대한 이해를 넓혀나가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동안 멕시코와 중미 지역에 머문 나의 경험은 브라질을 알게 되면서, 문화적으로 매우 다른 중남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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