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미 커피 비지니스를 중단하고, 난 다시 이력서를 꺼냈다. 서른셋,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내릴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결정이었던 것 같다. 회사를 퇴사하고 진행한 지난 8개월동안의 커피 사업에 대한 도전을 이력서에 넣어도 될지...? 고민이 많았다. 커피 회사라면 몰라도, 아무래도 일반 다른 기업에는 별 도움이 되는 경력은 아닌 것 같았다. 그나마, 커피 비지니스를 준비하는 동안 온라인 마케팅에 관심을 갖고 블로그 운영과 홈페이지 제작 등을 할수 있게 된게 이력서 추가사항이 되었다.
커피 사업을 준비해 보면서 난 마케팅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11년 당시 스티브 잡스의 프래젠테이션과 애플의 마케팅 성공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듯,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커피 비지니스 업계에서도 마케팅 역량은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특히 스패셜티 커피 업계에서는 더욱 그러했고, 커피 산지를 방문하는 활동도 그러한 마케팅 활동의 주요 포인트 중 하나였다.
그렇게 내가 지향하는 비지니스 역량의 최고점은 해외영업에서 마케팅으로 옮겨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입사하게 될 회사에서는 마케팅 업무가 해보고 싶었다. 해외영업 분야에서 과장 2년차까지 근무한 내가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분야로 옮겨가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쉬운일은 아니었겠지만, 우선은 마음이 시키는대로 해보고자 했다.
재 취업을 준비하면서, 잡 사이트에 이력서를 보내는 노력도 많이 했지만, 한편으로 옛 회사 동료들과도 연락을 취했다. 혹시나 옛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기대였고, 감사하게도 동료들은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회사 동료로부터 마침 해외영업 과장급을 뽑고 있으니 면접을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난 하루라도 빨리 직장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대기업의 일원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다시 이어나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곧 면접 날짜가 잡혔고, 옛 동료들의 추천에 의해 진행이 된 만큼 무난히 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지인의 또 다른 소개로, 트랙터를 제조 판매하는 한 대기업 계열사의 면접도 볼 기회가 있었다. 커피 농장 방문시 많이 보았던 농기구 트랙터와 관련된 일이라는 점, 그리고 마케팅 포지션 채용이라는 점이 나를 끌여당겼다. 다만, 해당 회사는 사장 면접까지 약 2주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앞서 합격 통보를 받은 곳에서는 즉시 출근을 요청 받은 상태였기에, 난 바로 의사결정을 해야 했다.
분명 예전 직장이 가진 장점은 분명했다. 아직 많은 동료, 선배들이 근무하고 있었고, 익숙한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 특히 나의 업무스타일을 잘 아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내가 해보고자 했던 커피 비지니스 혹은, 마케팅 관련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안정' 과 '도전' 사이의 고민 이었던 것 같다.
이러한 선택의 상황에서 정답은 없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던 그 나름의 장점과 단점을 떠안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난 이러한 상황에서 보통 '도전'을 선택해 왔다. 당시에는 딱히 내가 도전적 삶을 지향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항상 그런 선택을 해왔고, 지금도 그 방향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결국, 새로운 회사에서의 근무를 선택했고, 다행히도 최종 면접까지 합격했다. 나는 드디어 직장인으로 재 출발을 시작했다. 정장을 입고, 새벽 6시에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집에서 나와 하루를 시작하는 생활, 어쩌면 지겹도록 반복했던 생활이지만, 새롭게 출발하는 나는 어느때보다도 긍정적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입사한 회사는 대기업 계열이었지만, 존디어, 뉴홀랜드 등 글로벌 트랙터 제조사들과 비교하면 아직은 규모가 작고, 마케팅 업무도 시작단계에 있었다. 그런 만큼, 마케팅 파트에는 한두명의 담당자가 배정된 상황이었고, 나는 거의 파트 셋업 단계에서 시작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파트 셋업, 새로운 업무 시작이라는 난제를 안고 시작했지만, 지난 커피 비니지스 도전 상황과 비교해 본다면, 명확한 목표와 조직내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었기에 뭐든 해쳐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처음 트랙터라는 제품을 접하면서, 뭔가 자동차와 비슷하고 향후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산업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실제 트랙터 관련 산업은 농업 기술과 더불어 IT 기술 및 유압, 동력 등 각종 기계 장치의 기술의 집합체이기에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산업이다. 따라서, 시작은 역시 쉽지 않았다. 기술적 이해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업무 진행에 효율이 나오지 않았기에, 현장이 있던 전주 공장까지 내려가서 현장 실습도 많이 거쳐야 했다.
제품에 대한 공부, 새로운 업무 프로세스, 회사의 분위기 등등 모든 것이 익숙해져야 하는 것들이었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익숙해 지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모든 조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가끔은 너무 특이한(?)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당시 우리 사업부의 수장이었던 부사장님이 그런 인물 중 하나였다.
부사장님은 사업부내 직원들 사이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쩌렁 쩌렁한 목소리로 직원들을 꾸짖는 사람이었다. 처음 입사했을때는 주변인들이 꾸짖음을 당하는 것만으로도 큰 스트레스였는데, 점차 나도 예외가 아니게 되었고, 이후로는 부사장 업무 보고를 할때마다 걱정이 앞섰다. 부사장님이 많은 영향을 준 회사 분위기는 매우 보수적이었고, 모든 업무의 끝에 부사장님 보고를 준비하면서 그의 의견이 어떨지 고민을 하다보면, 직원들 또한 보수적인 보고서를 준비할 수 밖에 없었다. 혼나지 않기 위해서.... (?)
그동안 IT 관련 제품을 다루던 회사의 젊고, 트랜디한 가치를 중요시 하는 분위기에 익숙하던 내가 접한 새로운 회사의 분위기는 적응이 어려웠다. 그동안 내가 만나온 리더들과는 너무 다른 스타일의 리더였던 부사장님은 입사 초반에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가끔은 부사장실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사무실 전체가 '고요' 해지는 경우도 많았고, 저렇게까지 소리를 지르는 그의 건강이 염려될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면, 그도 그럴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도 하게된다. 당시 회사는 아직은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을 하기에는 규모도 품질도 부족한 수준이었고, 이를 끌어올리기 위해 조그만 실수도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의지가 담겨있었을 것이다. 물론,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그러한 리더쉽을 응원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게 새로운 곳에서의 출발은 쉽지 않은 숙제들이 있기는 했으나, 서서히 익숙해 지면서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