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대학을 졸업하고 2011년 회사를 퇴사하기 까지, 약 8년의 시간을 직장인으로 살았다. 사실 난 내가 평생 직장인으로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회사에서 줄을 잘 서거나, 윗사람들의 비위를 잘 맞추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성실함 하나로 승부한다면 자신있었다. 하지만, 성실함은 회사의 사업이 잘 되갈때는 꽤나 빛나는 장점이지만, 사업이 어려워지니 성실함 만으로는 부족했다, 오히려 끈기나 현상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버틸수 있는 마음같은 것이 '일잘하는 좋은 직장인' 이 되기위한 조건이었던 듯 하다.
과테말라,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3주간의 커피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언제나처럼 상냥한 얼굴로 나를 맞아 주었고, 이제막 걸음을 뗀 첫딸도 오랜만의 아빠의 등장에 신이 났다. 한국은 나에게 편안함 그 자체이다. 3주간의 출장 기간,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잘 다녀올수 있었지만, 낮선 환경에서 3주간 보낸 하루하루는 사실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동안 든든한 회사의 일원으로 회사돈으로 출장다니던 내가, 내돈으로 간 출장에서 어떤 결과든 만들기 위해 고분 분투한 시간이기도 했다.
코스타리카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웨이팅을 포함한 30시간 동안, 이번 출장 후 향후 사업 방향에 대해 많은 고민이 되었다. 의지로 가득했던 출장을 마무리하고 나니, 이제 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검토를 할 일만 남아있었다. 머리속은 복잡했고, 이번 출장에서 어떤 발견을 한 것인지 정리가 필요했다.
사실상 커피 수출입 이라는 것이 이미 셋업이 다 되어 있는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언가 신비로움이 있던 커피 트레이딩이 왠지 농산물 트레이딩의 일부이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미 오랜 세월 해온 사업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현재 트랜드라 할 수 있는 스패셜티 커피 마케팅의 경우도, 이미 누구나 산지에 직접 와서 구매를 하는 형태로 많이 옮겨가고 있었고, 머나먼 산지에 와서 커피 농장을 누비는 여행이야 말로, 커피 한잔을 표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마케팅 이기도 했다.
이제 막 배움을 시작한 커피 사업에서, 남들이 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점점 더 높은 벽에 부딛힌 것처럼 많이 부족함을 느끼고 가야할 길이 멀게 느껴졌다.
그동안은 막막하기는 했지만 참 좋았던 시간이다. 매번 회사에서 누군가의 지시와 보고를 위해 일해야 했던 내가, 처음으로 내 스스로 무언가를 계획해 보고, 그 안에서 나만의 방향성을 정하고 결정하고자 노력했던 경험. 누군가는 아마도, 평생 해보지 못할 일일것이다. 꿈을 찾아 무언가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이제 난 보다 현실적인 판단을 위해 고민해야 했다.
출장 후 여러 사람을 만났다. 손 대표님을 만나서 출장의 결과들을 공유하며, 그와 함께 협업할만한 부분은 없는지 의견도 나누었다. 커피 생두를 판매하는 한 회사의 대표님을 만나서도 내 경험들을 이야기 하며, 추후 꼭 사업 기회가 있기를 부탁드렸다. 대학교 은사이신 로스터리 카페를 운영하시는 교수님을 찾아 뵈었다. 교수님은 나의 도전에 칭찬과 좋은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지만, 궁극적으로 어떤 사업을 원하는 것인지 물으셨다... 그러나, 난 아직 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코스타리카 방문 중 대학 선배 한분이 내가 묵고 있던 호텔로 직접 찾아와 주셨다. 커피를 조사하러 왔다는 다소 생소한 컨셉으로 여행을 하고 있는 33살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 싶으셨던 듯 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중미에서 커피 관련 비지니스를 만들고 싶어서 온 후배의 이야기를 들어주신 후, 본인이 코스타리카에 정착하기 까지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는지 이야기해 주셨다.
혹시라도 코스타리카에 와서 살 생각이라면,
정말 준비 잘 하고 오길 바란다.
해외 이주는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단다.
나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와서,
이런 저런 고생 정말 많이 해야 했어.
그때까지 사실 해외 생활을 한다는 것은 막연히 생각만 가지고 있었고, 당장의 계획도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선배님의 진심어린 충고가 가슴 깊숙히 와 닿았다.
일잘하는 직장인이 되기위해 8년의 시간을 살아온 후, 지난 약 8개월의 시간동안 직장인과 사업가의 차이를 꽤나 명확히 느끼게 되었다. 도전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그 도전속에서 명확한 결론을 도출을 해내기 전까지는 사업가가 될수 없었다. 나에게 더 시간을 주기에는 사실 경제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쯤에서 다시 현실적인 판단을 해야 했다.
그렇게 나의 첫 도전은 약 8개월 남짓한 시간을 보낸뒤에 깊은 깨닭음을 얻고 멈추게 되었다. 누군가의 조언이나, 멘토 없이 시작했던 나만의 결정에 따른 도전... 무모하지만 배움을 얻었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새로운 사람들도 얻게된 감사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