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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중남미 신시장 개척, 브라질

by ANTONI HONG

2002년 첫 직장을 구한 후 2013년 약 11년의 시간동안 섬유, 핸드폰, IT, 농기계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일을 해보았다. 수출입, 영업, 마케팅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일을 했고, 회사의 규모도 중견 기업, 대기업, 대기업 계열사 등 여러 곳을 거쳤다.


돌이켜 보면 대기업을 다닐때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것 같다. 복지도 복지이지만, 무엇보다 탄탄한 회사의 시스템이 주는 안정감이 있고, 업무를 배울 기회도 가장 많았다. 누군가는 대기업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너무 일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어서, 다양한 일을 배우기 어렵다고 하지만, 오히려 회사내 고급정보는 물론, 교육의 기회도 많아서 더 많은 일을 배울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담당해 본 제품 중 가장 흥미로운 아이템은 핸드폰이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새로운 디자인과 기능들이 탑재되는 핸드폰을 분석하고, 새로운 IT 기술에 대해 배우고, 마케팅하는 일은 꽤나 재미가 있는 일이었다. 다만, 당시 나는 주임급 사원이었고, 1년 내외로 근무기간이 짧았던 만큼 나에게 주어진 업무의 무게가 그리 높지 않았기에 일을 더 즐길수 있었던 것 같다.


농기계인 트랙터는 겉보기엔 꽤 흥미로운 제품이었지만, 실제로 회사에 입사한 후 그 제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사실 2년간 근무한 뒤에도 트랙터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기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작업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한데, 농업에 대한 배경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는 그 성능과 구조를 파악하는 데 큰 한계가 있었다. 자동차처럼 단순히 운전만 하면 되는 제품도 아니기에, 직접 체감하며 배우기에도 제약이 많았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당시만 해도, 내가 다루게 될 제품이나 서비스가 과연 나에게 흥미롭고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이야말로 커리어 선택에서 매우 중요한 기준 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회에 첫발을 디디고 처음 배운 일은 수출입 업무였다. 이 일은 각종 서류 작업, 세관 절차, 물류 조율 등을 포함한 전형적인 백오피스 업무였고, 대부분의 시간은 사무실에서 PC와 전화로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당시에는 이러한 일의 특성과 나의 성향이 잘 맞는다고 느꼈고, 자연스럽게 수출입 분야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이직을 준비하면서 수출입보다는 채용 기회가 더 많고, 급여 수준도 상대적으로 높은 해외영업 분야로 자연스럽게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해외영업은 기업의 매출을 담당하는 중요한 역활을 하고, 다양한 부서와 협력하며 일하는 매력이 있었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한동안 해외영업은 내 커리어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개인 사업에 도전하면서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분야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재취업을 통해 마케팅 업무를 본격 시작하게 되었다. 다만, 해외영업을 하며 느꼈던 그 뚜렷한 성취감과 몰입감을 마케팅 업무에서는 쉽게 찾기 어려웠다.


결국 난 다시 해외영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헤드헌터가 제안한 슬로우 주서기 포지션에 지원해 보고자 하였다. 회사는 슬로우 주서기 카테고리에서 꽤나 성공한 브랜드였고, 한국, 중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유럽과 미주 지역까지 시장을 넓혀 나가는 과정에 있었다. 채용 포지션은 중남미 시장 개척을 위한 해외영업 과장급 스페인어 능력자 였다.


‘슬로우 주서기’는 당시 내가 커피와 함께 즐겨 마시던 생과일 주스를 착즙해 마실 수 있는 제품으로, 개인적으로도 흥미가 컸던 아이템이었다. 마침 해당 제품의 해외 영업 포지션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역할이었고, 제품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언어 역량까지 살릴 수 있는, 여러 면에서 나에게 꼭 맞는 조건을 갖춘 기회였다.


슬로우 주서는 당시 한국에서는 홈쇼핑을 통해 큰 인기를 얻은 제품이었지만, 해외 시장에서는 아직 뚜렷한 포지셔닝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내가 근무하던 신사동의 해외영업팀 사무실 역시 마찬가지로, 팀원들 대부분이 입사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신입들이었고, 회사는 급격한 성장 속에 새로운 인력들을 대거 충원하고 있었다. 그만큼 조직 전반에 ‘새롭게 시작하는’ 분위기가 감돌았고, 이는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딘가 덜 정비된 조직이라는 인상도 남겼다.






입사 후 내가 처음으로 담당하게 된 시장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 중남미 지역 국가들이었다. 모든 국가들이 막 사업을 시작하는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시장 개척과 바이어 개발 등 전반적인 세팅을 직접 진행해야 했다. 입사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첫 출장을 나가게 되었고, 지구 반대편으로의 장거리 출장인 만큼 한 번 나가면 중미와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한 번에 묶어 순차적으로 방문해야 했다.


브라질 바이어는 식당용 1회용품을 유통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매출 규모도 상당히 큰 꽤 성공한 사업가였다. 첫 만남에서부터 그와 친해지는 데는 단 몇 분도 걸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쾌한 유머와 스스럼없는 태도 덕분에 첫인상부터 매우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 샌드위치를 식당에 납품하는 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고, 하나둘씩 아이템을 추가하다 보니 지금의 사업 규모에 이르게 되었다고 했다. 스스로를 ‘자수성가형 사업가’라고 소개하며, 그 과정에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브라질 상파울루는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중남미 국가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도시였다. 거리의 풍경은 얼핏 보면 미국의 어느 도시를 연상시킬 만큼 현대적이고 세련된 곳도 있었고, 예상보다 높은 백인 비중 역시 그러한 인상을 더욱 강화시켰다. 음식 문화는 그야말로 다채로워, 어떤 음식을 ‘브라질 음식’이라고 단정짓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처럼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모습에서, 브라질이라는 나라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장 중 방문한 또 다른 도시는 리우데자네이루였다. 리우는 해변을 중심으로 한 아름다운 관광 명소가 많은 도시였지만, 동시에 치안이 좋지 않기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그 탓에 현지 바이어의 에스코트를 받아 일부 지역을 조심스럽게 걸어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파벨라(favela)’라고 불리는 우범 지역에 대해 들었는데, 이 지역들은 점점 확장되고 있어 브라질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고 했다. 파벨라는 흔히 범죄 집단이 활동하는 위험 지역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실상은 빈곤층이 밀집해 거주하는 구역으로, 전기나 상수도와 같은 기반 시설을 허가 없이 끌어다 쓰는 등 정부의 관리가 거의 미치지 않는 곳이다.


비즈니스적으로 우리는 제품 출시 초기 단계에서 샘플 진행과 각종 전시회 참가 등을 통해 마케팅 활동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샘플 테스트 단계부터 프로세스는 매우 복잡했다. 특히 전자제품의 경우, 수입 전에 필수적으로 제품 인증을 받아야 했는데, 그 절차가 까다롭고 소요 시간도 상당히 길었다.


여기에 더해 브라질은 높은 관세 및 복잡한 세금 체계로 인해, 최종 소비자 가격이 중남미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훨씬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의 큰 변수는 환율이었다. 브라질 헤알(Real)은 환율 변동폭이 큰 통화로 유명한데, 예를 들어 2012년에는 미 달러 대비 약 2.04 헤알 수준이었던 환율이, 2025년에는 약 5.75 헤알까지 하락했다. 당시에도 환율이 매월 크게 출렁이는 바람에 바이어가 가격 정책을 설정하는 데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브라질은 중남미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서 분명한 매력을 지닌 국가다. 그러나 시장에 진입하는 초기 단계부터 상당한 진입 장벽이 존재하며, 정치·경제적인 불안정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시장 진입에 성공하면, 그 규모에 걸맞은 큰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잠재력이 매우 높은 시장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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