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에 주재원으로 나가다.
2005년, 첫 직장을 그만두고 니카라과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한국에서는 여러 회사에서 일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결혼해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그렇게 한국 생활에 적응하며 지냈지만, 어느 순간부터 가족과 함께 해외에 나가 주재원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세먼지도 없고, 마당 있는 집에서 조금 더 여유로운 삶을 꿈꾸게 되었다. 아이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외국어를 쉽게 배우며 자랄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였다.
그러던 중, 2005년에 내가 그만두었던 회사에 다니던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코스타리카에 새로운 공장을 짓고 있으며, 관리부 담당자를 뽑는다는 소식이었다. 마침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코스타리카로 출장을 다니며 그곳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가지고 있던 터라,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 나는 선배에게 내 뜻을 전했고, 면접을 보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시에는 어린 두딸을 데리고 코스티라카로 간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특별히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해외에서의 삶이 아이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행복을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을 해외에서 교육시키는 것에 대해 동경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었기에, 아이들에게도 좋은 선택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아내도 물론 해외 생활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최종 한국을 떠나는 결정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다만, 당시에는 막연히 한 5년 후에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외국에서 교민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은 상상이 안되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 형제, 친구들 모두를 떠난다는 생각은 나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고민 없이 난 코스타리카 행 비행기에 올랐다.
2015년 12월이었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코스타리카에 도착하자 나와 같은 부서에서 일하게 될 주재원 한분이 공항에 나와 있었다. 나보다 연배가 많으신 차장님 이었다. 우리는 공항에서 식사를 간단히 하고, 곧장 골프장으로 향했다. 30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온 내가 골프장으로 가고 싶을리 만무했다. 난 사실 그때까지 골프를 한번도 쳐본 적이 없었다. 차장님은 시차를 적응하려면 숙소에서 잠을 자기 보다는 차라리 본인과 같이 골프장도 가고, 저녁 식사하면서 소주도 한잔 하자는 제안 이었으나, 마음속으로는 '이거 참 어이가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코스타리카에서의 주재원 생활. 회사는 실(Yarn)을 만드는 공장이었고, 코스타리카의 카르타고(Cartago)에 위치해 있었다. 현지인 직원이 약 250명, 한국인 직원이 약 50명 정도였다. 한국인들 대부분은 현지인 교육을 목적으로 파견된 분들이었으며, 50~60대 연배가 많은 분들이 많았다. 섬유 관련 업종, 특히 실을 만드는 공장들은 젊은 사람들이 잘 들어오지 않으며, 일을 배우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업종이라 평균 연령이 높은 편이다.
출근 첫날, 이 공장이 3교대 시스템으로 운영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오전 6시부터 8시간씩, 하루 3교대로 작업자가 교대하는 구조였다. 나는 관리부 소속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 근무했지만, 공장은 24시간 돌아갔다. 게다가 주 6일 근무였는데, 이미 주 5일 근무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내가 퇴근한 이후에도 공장이 계속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50명에 달하는 주재원들 중 통역이 가능한 사람이 2~3명에 불과했고, 나는 관리부 총괄로 채용된 터라 연락이 많이 왔다. 심지어 새벽에 전기가 나가도 내게 전화가 오곤 했는데, 혹시라도 긴급 상황이 생기면 대기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이러한 근무 환경에 익숙치 않은 나로서는 적응이 어려운 부분이었다.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호세는 사실 꽤 살기 좋은 도시다. 연중 기온은 15~20도 사이로 쾌적하고, 1년에 6~7개월은 비가 오기 때문에 더위를 느낄 새도 없다. 공기도 매우 깨끗하다. 중남미 국가들 중에서는 치안도 꽤 좋은 편이며, 사람들도 온화하고 외국인에 대한 혐오도 거의 없다. 다만 물가가 꽤 높다는 점은 단점으로 꼽을 수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한국인 가정이 지내기에는 꽤 추천할 만한 곳이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인사는 “뿌라 비다(PURA VIDA)”다. 일상에서 자주 쓰는 이 표현은 “순수하고 평온한 삶”을 뜻한다. 이 한마디에서도 그들의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한국에서 나는 영업, 마케팅, 수출입 등 다양한 업무에 특화되어 있었지만, 코스타리카에서는 관리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관여해야 했다. 자금, 수출입, 영업, 인사, 총무, 구매 등 회사의 전반적인 행정 업무가 모두 내 손을 거쳤다. 물론, 현지인 직원들의 업무를 관리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지만, 급한 일이라면 못 참는 한국인들과 느긋한 현지인들 사이에서 업무를 조율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회사 업무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곧 도착할 가족들과 함께 지낼 집을 구해야 했다. 현지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10채 가까운 집을 소개받았고, 다행히도 아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집에서 200미터 앞에는 스페인 국제학교도 있었고, 24시간 경비가 지키는 콘도미니오 단지였다. 집 주변도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었다. 그렇게 집 렌트 계약을 마무리하고, 이제 가족들이 코스타리카로 올 날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Fue un inicio duro pero, fue un inicio de mucho aprendizaje tambien.
어려운 시작이기도 했지만, 많은 배움의 시작이기도 했던 나의 코스타리카 생활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