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파라과이 그리고, 코스타리카

과라니의 나라 파라과이와 뿌라비다 코스타리카

by ANTONI HONG

파라과이와의 짧은 인연


남미에서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중 하나인 파라과이 (Paraguay),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중간에 위치한 내륙국가로 바다를 접하고 있지 않다. 역사적으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후 독재자의 등장으로 외부와 단절된 시기를 겪었다. 이후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인접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국토의 일부를 잃고, 남성 인구의 70%가 사망하는 등 큰 피해를 입는 불운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에도 파라과이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와 함께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 중 하나로 꼽힌다.


아르헨티나 방문 중, 현지인들과 이야기 나누며 주변국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 중 파라과이에 대한 인식도 들을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 말로는, 파라과이 사람들은 보통 허드렛일이나 육체노동을 하러 아르헨티나에 오는 사람들로 인식되며, 그 때문인지 사회적으로 약간의 편견도 존재하는 듯했다.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을 샀는데 금방 고장이 나거나 성능이 별로면 "이거 Made in Paraguay 아니야?" 라고 농담을 한다고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런 표현만 봐도 파라과이에 대한 그들의 시선을 느낄수 있었다.


수도 아순시온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면서, 택시 운전사의 옆에 특이한 모양의 빨대가 꽂힌 큰 물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파라과이 사람들이 항상 마시고 다닌다는 ‘마테차’였다. 마테차는 아르헨티나에서도 많이 마시지만, 파라과이에서는 ‘떼레레(Tereré)’라는 이름의 차가운 마테차를 주로 마시며, 특히, 택시 운전사들은 거의 모두 떼레레 텀블러를 휴대하고 있는 듯 보였다.


파라과이 바이어는 샘플 오더를 하고 제품을 테스트하는 단계였는데, 사실 파라과이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큰 기대를 갖기 어려운 시장이기도 했다. 바이어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러 ‘아사도’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파라과이 전통 식사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었는데, 바이어는 약간의 농담조로 파라과이의 전통 식사는 ‘소고기’라고 말하며, 아침, 점심, 저녁 세끼 다 고기를 먹는다고 했다. 그 말이 그냥 웃자고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농담이 아니었다. 실제로 파라과이의 1인당 소고기 소비량은 매우 높은 편이다.


파라과이는 스페인어 외에도 '과라니어' 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이는 매우 특이한 경우인데 과거 식민지 시대, 유럽의 정복자들과 함께 들어 온 예수회 선교사들이 파라과이 지역 토착민 '과라니' 의 문화를 보호하면서 그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킬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 현재도 대부분의 파라과이 사람들이 '과라니'를 사용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 한다. 이는 토착 언어가 실제로 국가 언어로 기능하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이다. 영화 '미션 (1986) ' 에서 보았던 그 예수회와 과라니 원주민의 역사가 실제 파라과이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파라과이의 출장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회사 법무팀으로부터 파라과이내 브랜드 등록에 대한 문의를 받았다. 누군가 허락없이 회사 브랜드를 파라과이에 무단 등록했다는 것이다. 등록자 이름을 확인한 순간, 당혹스러움은 더 커졌다. 놀랍게도 그 이름은 지금 막 비즈니스를 논의하던 바이어였다.


아직 제품을 본격 구매한것도 아닌데, 샘플 5대를 구매한게 전부인 업체가 이미 자신의 나라에 상표등록을 진행한 것이다. 난 바로 업체 대표에게 연락을 했고, 업체 대표는 파라과이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비지니스를 한다며, 본인이 상표등록을 해 놓지 않으면 누군가가 상표등록을 할 수 있고, 이 경우 사업을 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회사 법무팀에서는 회사 상표등록된 것을 회사쪽으로 넘기라는 요청을 했다. 하지만, 바이어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상표권을 넘기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참 어이가 없었다. 제품의 본사측 합의가 없이도 일개 현지 업체가 상표등록을 그렇게 진행할 수 있다는 것도 이상했지만, 바이어의 태도에도 문제가 많았다. 아직 비지니스를 제대로 시작도 하기전에 상호 신뢰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파라과이와의 인연은 이 한가지 사건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짧은 방문만으로 파라과이 라는 나라를 평가하는 것은 너무 개인적 경험을 확대 해석하는 것 같지만, 바이어가 보여준 비지니스 매너는 분명 아쉬운 것이었다. 아쉽게도 그러한 짧은 경험이 모여서,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보이는 파라과이 사람들에 대한 평가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만들어 진것은 아닌지 싶다.





남미 국가들 외에도, 중미 코스타리카, 과테말라에도 비지니스 발굴 노력을 했었다. 두 나라 모두 바이어 발굴에 성공하여 출장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특히 코스타리카는 예전에 니카라과에서 주재원 생활을 할때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나라였다. 코스타리카는 중미의 스위스라 불리우며, 중남미 나라들 중 치안이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고, 해변과 화산을 중심으로 관광지가 잘 발달되어 있어, 미국인들이 많이 찾는 나라이기도 했다.


코스타리카에 도착하여 가장 놀란 것은 그곳의 물가였다. 생각보다 물가가 상당히 비쌌고, 다른 중남미 국가와 비교한다면 특히나 차이가 컸다. 2014년 기준 맥도날드 햄버거 빅맥 셋트 가격이 $6~7.0 수준으로, 당시 한국에서 약 $4~5.0 내외와 비교해 보면 상당히 비싼것임을 알수 있다. 출장 후 택시비가 너무 많이 나와서 출장비 정산시 현지 물가등을 부연 설명해야 했던 기억이다.


거리의 풍경은 중남미 치고는 꽤나 조용하고 정돈된 모습이었고, 듣던대로 꽤나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출장을 다니다가 예쁜 풍경이나, 좋은 식당에 가면 가족들과 함께 와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코스타리카의 이러한 모습들은 가족들과 함께 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당시 첫째 아이는 4살 둘째 아이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아내와 난 가끔씩 해외에 나가서 산다면 어떤 나라가 좋을지 이야기하곤 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중남미에서 해외 생활을 하게 된다면 멕시코가 가장 가능성 있는 나라로 생각하곤 했는데, 대학 선배들이 많이 정착한 곳이고, 대학 시절 스페인어 어학 연수를 하면서 꽤나 긍정적 이미지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멕시코와는 묘하게도 사업적 인연이 닿지 않아, 그런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당시 난 코스타리카 출장을 2박 일정으로 두차례 갔었다. 그리고, 두번 출장의 경험을 통해 이 나라가 확실히 멕시코 시티나 과테말라 시티와 같은 지역보다는 안전하고 평화롭다는 생각을 갖게되었다. 그래, 이 정도면 아내와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살아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을 더욱 하게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옛 직장 선배와 채팅으로 인사를 하던 중 선배가 근무하는 회사가 코스타리카에 공장을 짖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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