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우리가족의 첫 해외생활

우리가족의 코스타리카 정착기

by ANTONI HONG

집 계약을 마무리하고, 가족들이 도착할 날짜는 다가왔지만 한국에서 보낸 이사짐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도착하는 날 난 LA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고, 처음 미국에 온 아내와 아이들은 무사히 공항에 도착해서 약속한 장소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돌을 막 지난 둘째도 한국에서 LA 까지의 12시간의 여행을 잘 견뎌주었다. LA 에서 코스타리카까지 다시 11 시간의 대기시간은 길수도 있었지만, 약 1달 반만에 재회한 가족과의 시간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보낸 이사짐은 아직 정확한 도착 날짜도 알수 없었던 터라, 우리 가족은 회사옆 기숙사 주택에서 임시로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원래는 짐이 도착한 후 정리를 마치고 가족을 맞이할 계획이었기에, 아내와 아이들은 가벼운 여행 가방 한개만 가지고 온 상태였고, 아이들 장난감도 하나 없이 코스타리카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그 후로 약 2~3주 가량 우리 가족은 기숙사 주택에서 생활을 했는데, 우리집 물건들이 하나도 없이 보내야 하는 그 시간은 너무나 지루했던 기억이다. 아이들에게 유일한 오락거리가 엄마의 핸드폰이었고, 식사도 회사 식당에서 보내주는 끼니거리로 해결해야 했다. 그나마, 내가 퇴근을 하면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쇼핑몰에 나가서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 하루의 즐거움이었다. 아내에게도 그 시절은 낯선 환경 속에서 무료하고 힘겨웠던 시기로 기억되고 있다.


우리는 당시 여섯 살이던 첫째 아이의 학교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다. 마침 집 바로 앞에 스페인 국제학교가 있었기에, 가장 우선순위로 두고 상담을 진행했다. 이후 다른 두 곳의 학교와도 상담을 해보았지만, 결국 집에서 가장 가까운 그 스페인 국제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해당 학교는 스페인어와 영어로 수업이 이루어지는 "Bilingual" 학교였지만, 기본적으로는 스페인어를 중심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

입학 첫날, 단 한마디의 스페인어도 모르는 아이를 교실에 남겨두고 돌아서던 그 순간, 아이의 불안한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쩌면 그 선택은 아이에게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을지 모르지만, 말조차 통하지 않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 홀로 남겨둔 것이 미안한 마음으로 오래 남았다.


다행히 아이는 서서히 잘 적응해 나갔다. 입학 후 2주쯤 지나자 학교에 대한 두려움도 거의 사라진 듯 보였다. 돌이켜보면, 아이가 낯선 환경에 익숙해져 가는 과정은 마치 하나의 큰 모험 같았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교실에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말조차 하지 못해 손짓과 몸짓으로 선생님과 소통하던 그 시절의 모습을, 아이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스페인어로 어느 정도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약 6개월이 걸렸던 것 같다. 이후 2년 동안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실력이 늘어갔다. 처음에는 막연히 ‘아이들이면 금방 배울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아마도, 집에서는 늘 가족끼리 한국어로만 대화했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이 한국어를 서툴게 하게 될까 봐 걱정이 많았고, 그래서 오히려 집에서는 의도적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키기도 했다. 다행히도 그 덕분에, 어린 시절을 해외에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아이는 여러 친구들과 두루 잘 어울렸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입학한 중국인 친구와 가장 가까이 지냈다. 아시아권 문화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동질감 때문이었을까, 아이는 그 친구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편안해 보였다. 덕분에 아내도 그 중국 친구의 부모님과 자연스레 교류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중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영사 부부로, 매우 예의 바르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가족을 알게된지 3년이 채 되지 않아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아이는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내야 했다.


처음 코스타리카에 정착하고, 아이들이 현지 생활에 익숙해지기까지 아내는 참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코스타리카는 비교적 인종차별이 적은 나라지만, 외모나 언어로 쉽게 구별되는 우리가 이곳에 잘 녹아들기 위해서는 현지인들과의 관계 형성이 꼭 필요했다.

아내는 스페인어를 거의 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주변 이웃들과 어울리며 친구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천천히 관계를 넓혀가며 좋은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도 많았다.

처음엔 ‘몇 년 후 한국으로 돌아가겠지’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우리의 해외 생활은, 어느새 10년이라는 시간을 넘어섰다.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찾아 떠났던 그 발걸음이, 이제는 인생의 한 챕터로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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