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TICO, 기다릴 줄 아는 자

by ANTONI HONG

TICO (띠꼬) = 코스타리카 사람을 줄여 부르는 말 (비속어 아님, 일반적인 표현)


천성적으로 성격이 좀 급한편인 나는 이곳 코스타리카에서 10년 넘게 살면서도 '기다리기' 와 친해지지 못했다. 벌써부터 친해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관공서나 은행에 가야 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런 이유에는 코스타리카 정착 초기 현지 운전면허증 발급을 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시작되었다. 수도 산호세 교통국에 아침 6시에 도착했을때, 이미 100미터가 넘는 줄을 발견했다. 교통국 업무는 7시 30분에 시작하는데 6시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기를 하는 것이다. 7시 30분 정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줄을 지어 들어갔고, 그렇게 10시 30분 서류를 접수하기까지 3시간 넘게 더 기다려야 했다.


서류접수를 받고 그 자리에서 서류를 검토하고, 부족한 서류를 보완해 오라고 돌려보내기도 하는데, 나와 함께 있던 한국인 동료도 서류를 보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동료는 '분명 웹사이트에 나온대로 모든 서류 구비해 왔는데?' 하고 의아해 하며 휴대폰으로 웹사이트를 다시 확인하니, 실제로 그들이 보완해 오라한 서류는 웹사이트에 나와있지 않은 것이었다. 해당 공무원에게 웹사이트 정보를 보여주며, '왜 웹사이트에 나와 있지 않은 서류를 보완해 오라 하느냐?' 하고 문의하자, 해당 공무원 '버럭' 화를 내며, 어떻게 모든 정보를 웹사이트에 올리냐? 며 오히려 역정을 낸다. 결국, 해당 동료는 더 이상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을 알고, 그 길로 바로 서류를 떼러 이민국으로 향했다.


옆에서 그 상황을 보고 있는 나에게도 충격적이었던 상황이었다. 3시간이라는 서류 접수 시간도 말이 안되지만, 웹사이트 정보를 업데이트 안한 본인들의 실수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당당한 태도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잠자코 다시 2시간 정도를 기다려 나는 다행히 현지 운전면허증을 받을 수 있었다. 서류를 보완하려 떠난 동료는 이민국을 방문해서 3시간 정도 기다린 후에 서류를 받았고, 이후 다시 교통국으로 돌아와 오후 늦게 퇴근 시간이 다 되어 운전면허증을 받을 수 있었다. 아침 6시부터 오후 늦게까지 하루를 거의 모두 소비하였다.


교통국의 업무 프로세스도 많은 문제가 있겠지만, 공무원들의 무책임한 태도가 더욱 실망스러웠던 경험이었다. 코스타리카에서는 공무원들이 친절하거나, 효율적으로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민원을 보는 직원들도 나이가 50대 중반 이상인 경우가 많은데, 공무원들의 처우가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고, 해고를 하는 경우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고, 업무 프로세스도 현장에서 종이 서류로 진행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일부 기관의 경우 온라인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이메일 서류접수를 받지 않는 곳이 많다.


코스타리카의 관공서 업무가 느린데에는 그들이 사용하는 시스템이 일원화 되지 않은 것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수도 산호세에는 약 20개 구청이 있는데, 각 구청별로 민원 시스템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각 구청에서 요구하는 방식대로 업무가 처리된다. 홈페이지도 제각각이며, 민원 서식지도 각 구청마다 다르게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각 구청의 업무 진행 방식을 파악하는데만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시간과 비용적 노력을 고려하면 (행정 업무)변호사를 통해 처리를 하는 것이 나을때가 많다.


은행과 같은 시설에서도 그 분위기는 꽤나 비슷하다. 친절함 기대하기 어렵고,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일을 한번에 끝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직원들이 업무 프로세스를 잘 몰라서 간단한 업무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고, 그 마저도 제대로 처리가 안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도, 누구하나 신경쓰는 사람이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불만사항을 제기하거나, 문제를 들어줄 창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나는 관공서나 은행에 갈때 항상 약간의 긴장을 갖고 간다. 방심하는 순간 일을 제대로 처리 안해주거나, 서류를 보완해야 해서 다시 방문해야 될수 있기 때문이다. 처리한 업무에 대해서 다시 한번 내용을 확인하고, 재차 확인하는 것은 필수다. 아내는 나에게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조언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귀중한 내 시간을 낭비하거나, (그들의 잘못에 불구 내 시간과 비용만 들어가는) 억울한 일이 꼭 생기곤 했다.


코스타리카의 인사말 "뿌라비다 (PURA VIDA)" 즉, 순수한 삶 이란 이렇듯 실수나, 문제에 직면해도 용서하고,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한 말이다. 10년을 넘게 이곳에서 살아가는 난 그 정신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앞으로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사실 코스타리카에 처음 왔을때는 한국인의 팍팍하고 경직된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철저한 사고방식이 가져다주는 일상의 효율성이 오히려 훨씬 값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입사해서, 상사로부터 지적을 당하고, 때론 혼나기도 하며 업무 트레이닝을 받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는 고되고, 모욕적인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바탕이 되어 우리 사회의 수준을 끌어올린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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