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고 비로소 보이는 것들
중미의 스위스 코스타리카,
코스타리카는 ‘중미의 스위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스위스가 가진 긍정적인 이미지, 국제적 중립성, 경제적 안정성, 아름다운 자연환경,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리면, 코스타리카에 대한 기대치가 자연스레 높아진다. 실제로 두 나라 사이에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 독재가 없는 민주주의를 지켜오고 있으며, 군대가 존재하지 않는 평화국가라는 점,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었다는 점, 그리고 중남미 국가 중에서는 비교적 안전하다는 점 등이 스위스를 연상하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코스타리카는 관광지로도 참 유명하다. 특히 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활화산이 만든 온천을 즐길 수 있고, 올 인클루시브(All Inclusive) 호텔들이 즐비한 해변에서는 여유로운 휴가를 보낼 수 있다. 또 국토 곳곳에 자리한 국립공원과 자연보호구역에는 다채로운 동식물을 만날수도 있다. 덕분에 전 세계에서 수많은 여행객이 코스타리카를 찾고 있고, 실제로 [2025년 기준] 관광 수입이 전체 GDP 의 8.2%에 이를 정도로 이 나라에서 관광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긍정적인 이미지 덕분에 미국 은퇴자들이 코스타리카로 이민을 오는 경우도 많다. 글로벌 행복지수를 이야기할 때마다 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나라가 바로 코스타리카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 분위기에 끌려 2015년 말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둘째 아이가 막 태어났을 무렵, 갑작스럽게 현지 한국회사의 주재원 채용에 지원하면서 아내와 나는 큰 결정을 내려야 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삶에 대한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컸기에, 오히려 그 선택을 조금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정착 초기 2~3년은 큰 고민 없이 그저 현지 문화에 적응해 나가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가족들이 언어를 배우고 문화에 스며드는 게 가장 중요했고, 다행히 현지 친구들도 하나둘 사귀며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당시만 해도 코스타리카에 사는 한인은 300명도 채 되지 않아 한국을 잘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서 가끔 한국 드라마나 K-pop 이야기를 꺼내는 현지인을 만나면 괜히 신기하고 반가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걸 느꼈고, 특히 2019년 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이곳에서도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진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2019년 말, 나와 아내는 한식당을 열기로 결심했다. 마침 집에서 불과 100미터 떨어진 곳에 눈여겨보던 자리가 있었고, 우리는 망설임 없이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때는 2020년 1월. 두 달간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며 4월 초 오픈을 목표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점에 예상치 못한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공사는 마무리 단계였지만 영업 허가 절차가 지연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당분간 신규 허가는 발급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상가의 월세는 계속 나가는데 정식으로 문을 열 수 없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았다.
그때는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코스타리카 정부 역시 ‘코로나’ 같은 전례 없는 상황에 제대로 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고, 발표되는 정책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었다. 오늘 나온 지침이 내일이면 수정되기 일쑤였고, 우리로서는 그저 지켜보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최종적으로는 정식 영업 허가가 나오기 전이라도, 술 판매만 제외하고 임시 영업을 허용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우리는 그 결정에 맞춰 4월 20일 첫 오픈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식당 내 취식은 금지되고 배달과 픽업 주문만 가능했기에 매출에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요리사 한 명만 고용하고 시작하기로 했다.
우리 부부의 첫 한식당 1호점이 문을 연 날을 떠올리면, 솔직히 준비가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까지 식당을 직접 운영해본 경험이 없었기에 곳곳에서 아이디어도 부족했고, 코로나로 외출을 꺼리는 분위기까지 겹쳐 첫날은 손님이 거의 오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손님들이 찾아와 우리 부부는 하루 종일 식사 한 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정신없이 첫날을 보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우리는 예상보다 훨씬 큰 관심 속에서 한식당을 시작해야 한다는 걸 실감하며 직원을 더 채용하게 되었다.
1호점의 성공적인 시작 이후 우리는 이듬해 2호점을 열었고, 그 뒤로도 매년 지점을 늘려 2024년부터는 총 4개의 매장을 운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작게만 느껴졌던 K-컬처의 영향이 사실은 우리 사업에도 큰 힘이 되었음을 점점 실감했다. 현지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제는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하면 “오~~~” 하고 반가워하며, “나 한국 드라마 정말 좋아해요”, “우리 딸이 BTS 열렬한 팬이에요” 같은 말을 흔히 듣는다. 그들의 눈빛 속에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느낄 수 있고, 오히려 한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2015년 우리가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한국인은 정말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음을 확실히 느낀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도 더 자신 있게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대학 교육 역시 한국에서 받는 것이 좋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많은 교민들은 아이들을 한국이 아닌 미국이나 캐나다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현지에서 오래 살다 보면 문화와 정서적으로 이곳 생활에 더 익숙해지기도 하고, 앞으로 코스타리카에서 계속 살아간다면 미국 대학 졸업장이 직장이나 사업 면에서 더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가족은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한국적인 정서를 심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코스타리카에 온 것을 ‘이민’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다만 아이들이 외국에서 교육을 받고, 다른 문화 속에서 삶을 경험하며 더 열린 시각을 갖기를 바랐을 뿐이다. 나 역시 전공이 스페인어였던 만큼, 이곳에서 사업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것이라 기대하기도 했다.
그렇게 지난 10년을 이곳에서 보내고 나니, 이제는 더욱 분명해진 것들이 있다. 한때 ‘헬조선’이라 불리던 한국은 사실 선진국으로 가는 성장통을 끝내고, 이제는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자리에 올라섰다는 생각이다. 아니, 어쩌면 한국은 단순히 유럽식의 선진국과는 다른, 더 높은 차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민족의 정신, 도덕성, 그리고 역사의 아픔을 딛고 이뤄낸 발전은 다른 나라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유일한 가치다. 예전에는 유럽의 경제와 문화를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세계인이 한국의 K-컬처를 갈망한다. 그것은 단순히 드라마나 음악 같은 문화 콘텐츠에 대한 수요를 넘어, 한국인의 생활 방식과 음식, 질서, 예절 등 삶의 여러 모습에 공감하기 시작한 결과라고 느낀다.
2005년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한 한국인 학생이 수업 시간에 한국 음식의 우수성에 대해 발표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발표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준 사람들은 일본 학생들이 거의 전부였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는 크게 달랐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이 가진 고유한 가치는 변함이 없다. 다만 이제는 그 가치가 세계 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고, 나 역시 외국에서 살아가며 겪은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그 의미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