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도로위의 양보 문화

예절인가? 악습관인가?

by ANTONI HONG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운전을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이 기억난다. 도로의 상태가 안 좋은 것은 물론, 야간에는 가로등이 거의 없어 운전하기 참 어려웠다. 집에서 회사까지 약 20키로의 거리를 주 6일 운전해야 했고, 거의 매주 한 번꼴로 교통사고로 인한 정체를 겪어야 했다. 특히, 회사가 있던 카르타고(Cartago) 지역은 오초모고(Ochomogo)라는 언덕을 넘어가야 하는데, 언덕 끝에 화물차들의 무게를 측정하는 시설이 있었고, 모여드는 화물차들로 인해 정체가 발생하기 일쑤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카르타고가 한국의 일산과 같은 도시였기 때문에, 반대 방향인 수도 산호세로 가는 차량 수에 비한다면 훨씬 적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르타고로 가는 출근길에는 항상 교통사고로 인한 정체라는 변수가 있었고, 대략 2주에 한 번꼴로 큰 정체가 발생하곤 했다. 문제는 해당 도로가 두 도시를 이어주는 메인 도로였음에도 불구하고 차선이 두 개뿐이었고, 화물차량의 이동도 많아 사고가 나면 도로 전체가 막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게다가 가벼운 사고라도, 현지 교통법상 교통경찰이 와서 사고 현장을 있는 그대로 확인하고 Report를 작성해야 했기 때문에, 운전자들은 사고가 난 상태 그대로 차를 옮기지 않는다. 더욱이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여유가 그런 상황에서도 나타나는데, 대부분 서로 농담을 하고 낄낄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 본인들이 만든 사고로 엄청난 정체가 일어나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Pura Vida!


사실 나의 출퇴근 길이 아니더라도, 코스타리카는 도로 정체가 일상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도로 인프라가 안 좋기 때문인데, 대부분 도로가 두 개 차선 내외이고 교통 시스템이 매우 낙후되었다. 사실 대부분의 스페인 식민지 시대를 거친 중남미 국가들은 스페인의 바둑판식(격자형) 도로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도로 상태가 양호한 경우가 많은데, 산호세는 그런 시스템이 발달하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코스타리카의 원래 수도는 카르타고였으나, 카르타고 대지진으로 수도를 산호세로 옮겼고, 이미 소도시로 성장해 있던 산호세의 기존 도로를 최대한 활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산호세 도로들은 구불구불하고, 좁거나 정리되지 않은 곳이 많다.


신호등과 횡단보도의 부족도 매우 눈에 띄는 문제다. 교차로에 신호등이 없는 곳이 많아 오직 운전자의 눈치에 따라 이동해야 하는 구간이 많고, 이는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도 운전을 하다 보면 “신호등만 있어도 많이 개선될 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구간이 많다. 현지인들조차 도로 인프라에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굳이 대규모 하드웨어 투자가 아니더라도 신호등 하나가 아쉬울 때가 더 많다. 최근에는 도로 곳곳에서 확장 공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사 기간이 상당히 오래 걸릴 뿐 아니라 한 개 차선을 막는 경우가 많아 도로가 오히려 더 좁아지고 정체가 심해진다. 또한 그 좁은 곳을 컨테이너 트럭들이 계속 지나가니 정체는 더 악화되기 쉽다. 게다가 트럭이 길 한복판에서 고장 나 멈춰 있는 풍경도 흔히 볼 수 있다. 왜 꼭 도로 한복판에서 고장이 나는 건지...


코스타리카는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이 참 많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날씨를 제외하면 도로 인프라가 악조건인 이곳에서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역설적이지만, 실제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탄다. 게다가 법적으로 차량이 자전거를 추월하려면 측면 1.5미터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일·이차선 도로가 많은 이곳에서는 사실상 지키기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유난히 간격을 지키려는 운전자들이 있는데, 오히려 반대쪽 차량과 접촉사고가 날까 봐 불안해 보일 때도 있다. 게다가 보행자 인도가 없는 구간도 상당히 많아, 버스 정류장이 있음에도 인도가 전혀 없어 보행자들이 그냥 차도 옆으로 걸어다니는 경우가 많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것과 별개로,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양보를 잘한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끼어드는 차량이나 횡단보도가 없는 곳에서 길을 건너는 사람들에게도 양보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사람들이 도로를 횡단할 때는(횡단보도가 없는 곳에서도) 차량이 멈추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차를 보지도 않고 건너는 사람들이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최근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차량이 우선으로 지나가는 풍경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차량이 도로에서 갑자기 멈춰 반대 방향으로 무단 회전이나 유턴을 감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불법임에도 습관화되어 있어 많은 이들이 멈춰서 양보해 준다. 현실적으로 도로 사정이나 신호 체계가 너무 부실하다 보니 운전자 간 양보 문화가 발달한 것이다.


코스타리카에서는 교통경찰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어쩌다 암행 단속(차량 등록증, 자동차세 납부 여부 등 검사)을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 통계적으로도 주변국과 경찰 수를 비교하면 과테말라는 6~7배, 온두라스는 4~5배 정도 더 많다. 이는 코스타리카의 치안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이유도 있지만, 최근에는 경찰 수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 도로 위 정체 상황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개선이 필요하다. 도로 인프라도 열악한 나라에서 교통경찰조차 없는 상황인데도 도시 교통이 그럭저럭 작동한다는 사실은 오히려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름 그들만의 운전 문화가 있기에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곳의 도로 인프라 상태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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