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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月 31日

by 조롱

한 해가 끝이 났다.

견딜 수 없어 몸서리가 쳐지던 일 년이 또 끝났다.

마지막이 되면 나도 모르게 기쁘지도 않았던 예전 기억들을 마치 필터 낀 추억거리처럼 되돌아본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어쩐지 그때의 일들이 마치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라는 듯, 지금의 나는 더 큰 사람이라는 듯 스스로에게 고생했다는 무책임한 위안을 건넨다.

그때는 정말 익사할 것 같았는데.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는 사실 침대에 누워있기보다는 밖으로 나와 커피라도 한잔 마셔줘야 한다.

커피가 중요한 게 아니다.

커피를 먹으러 나오는 발걸음과 가서 커피를 얻어내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어쩌면 지난 1년을 그렇게 보냈을지도 모른다.

대단한 과정과 목적을 가지고 견딜 수 없었던 것들을 견뎌낸 것이 아닌 툭치면 무너질 것 같은 모래성 같은 마음을 가지고 밀려오는 바닷물을 피해 도망치려는 발걸음으로 1년을 살아낸 것이다.

견뎌냈다는 말도 과분하다.

견뎌낸 것이 아닌 온몸으로 바닷물을 맞아 내어 줄 모래는 내어주고 취할 물은 취해 모래가 아닌 진흙이 되었다 정도일지도.


'마지막!'이라고 말하기엔 진짜 끝이 아니기에 비슷한 일들을 몇 번이나 더 반복해야 할 테지만, 나를 살아 내는 일에 그리 거창한 발걸음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 만으로 이번 한 해는 합격점을 주고 싶다.


앞으로 계속 비슷한 일을 마주하고 더 큰 견딜 수 없는 일들을 겪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또 나는 작은 발걸음으로 살아가겠지.

얼마나 크고 작은 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움직일 수 있으면 된다. 그저 꿈틀 하는 수준이라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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