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학생

by 신현석

타 시·군으로 발령을 받아 3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3학년은 대개 서로 맡고 싶어 하는 학년이다. 그런데 부임해 온 나에게 그 반이 배정되었다.

이유가 있었다.

반에 할머니 학생이 한 분 계신다는 것이다.

괜히 부담스럽다며 다들 고개를 돌렸다고 했다.


어찌 되었든, 맡으라면 맡아야지.


할머니는 가난 때문에 배움을 놓쳤다가, 늦은 나이에 다시 학교 문을 두드리셨다고 했다.

1학년, 2학년을 재미있게 다니셨고, 이제 3학년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첫날 교실에 들어섰을 때, 할머니는 이미 자리에 단정히 앉아 계셨다.

돋보기 같은 안경 너머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맑았다.

배움 앞에 선 사람의 눈빛이라는 것이 금방 느껴졌다.

교과서 글씨는 할머니께 너무 작아 보였다.

그래서 큰 돋보기를 사다 책상 옆에 놓아 드렸지만,

“괜찮아요.” 하시며 손사래를 치신다.

잘 보이지 않는데도, 없는 것처럼 공부하신다.

나이가 있어 이해가 더디고, 종종 놓치신다.

그런데도 집에 가서는 그날 배운 것을 다시 펼쳐 본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쑥스러운 얼굴로 다가와 묻는다.

“선생님, 그게 잘 모르겠어요.”

그 모습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할머니는 공부 태도가 가장 바른 학생이었고,

청소 시간에는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방법을 알려 주며,

현장학습을 가면 먼저 급우들 주변을 살피며 다치지 않게 챙기신다.


아이들은 2학년 때까지 할머니를 특별하게 보지 않았다.

그냥 같은 반 친구였다.

나이도, 주름도, 느린 걸음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3학년이 되자 조금씩 달라졌다.

아이들의 시선이 선생님에게서 친구들에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한 아이가 불쑥 묻는다.

“근데 할머니는 누구세요?”

그 질문에 할머니 학생도 눈이 뚱그레지셨다.

아이들이 서로를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그 무렵부터 수업 중간에 이런 질문들이 튀어나왔다.

“선생님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선생님 아들은 있어요?”

“세상은 누가 만들었어요?”


아, 아이들이 변하고 있구나.


그래서 『닐스의 신기한 모험』을 들려주었다.

기러기를 타고 하늘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아름다운 땅의 세상을 내려다보는 이야기,

작은 쇳덩이가 대장간에서 호미가 되어 가는 과정,

털실이 직조를 거쳐 엮이며 리코더집으로 만들어지는 모습….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그런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할머니 학생도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으신다.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반짝이며 따라오신다.

수학은 어려워하셨지만, 시는 참 잘 쓰신다.

문화제 문예대회에서 상을 받으셨다.

그날 할머니 얼굴에, 오래 보지 못한 웃음이 걸렸다.


그 모습이 좋아, 나는 할머니께 개인 시를 하나 지어 드렸다.

방학 내내 도서관에 가서 찾아 만든 시였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각각 시를 만들어 주었다.

아침마다 낭송하게 했다.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워서 읽으신다.

허리가 아파 오래 앉지 못하시지만,

정신만큼은 누구보다 또렷하시다.

할머니 학생 덕분에 나도 배운다.

배움이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배움은 자세라는 것을.

그래서 할머니께 용기를 드리고 싶어, 한 편의 시를 찾아드린 것이다.


000할머니를 위한 시


불같은 빨간 저녁노을에

해는 산 너머로 점점 사라진다

강물은 굽이치며

막힘없이 큰 바다로 흘러가는데

아, 천리 밖을 보려고

나는 한층 더 높은 산에 오른다


할머니는 그 시를 천천히, 또박또박 읽으셨고 급우들 앞에서 또렷하게 암송하여 낭송했다. 다 외운 기념으로 물감으로 색을 공부한 수채화 종이에다 시를 색연필로 적어 액자에 넣어 드렸다.


한 줄, 한 줄, 꼭 붙잡듯이 기쁨으로 배움을 즐겨하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분은 지금도 오르고 계시는구나.

남들 다 내려갈 때, 혼자서 더 높은 산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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