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0 2020년 4월 20일
초등학교 입학식을 생략하고 맞이하는 온라인 개학날이다. '온라인 개학'이라 쓰지만 'EBS 개학'이라 읽고 '엄마 개학'이라 말한다. 다시 말해 집에서 TV로 EBS를 보며 엄마 옆에서 학교생활을 한다는 것. 우리집 거실의 능력치가 +100 레벨업 되었다.
#개학일주일전
아, 개학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 볼까?
4/13, 월요일에 교과서와 학습 꾸러미를 받으러 학교에 갔다. 혹시나 담임선생님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아침부터 꽁이도 무척 설레어했다.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니 야외에 1-1부터 1-5 표시를 한 테이블마다 담임선생님이 서 계셨다. 마치 입학식 같이 부모와 아이들은 자기 반 선생님을 살피며 테이블 앞으로 뛰어갔다. 선생님께 처음으로 인사를 하고 제출할 서류를 드리고 교과서를 받았다. 마스크 착용한 모습이라 아이들도 선생님도 얼굴을 제대로 기억 못 할 거 같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인사를 드렸으니...
교과서 9권과 학습 꾸러미, 그리고 개학 1주 차 시간표가 들어 있었다. 교과서 구경을 하다 보니 학교에 빨리 가고 싶단다.
4/14, 화요일 아침 나는 이제부터 땡땡이를 치기고 결심했다. 뭐 개학 전이니 땡땡이도 아니고 그냥 노는 거다. 어차피 1학년 첫 봄소풍은 코로나 때문에 사라졌으니 우리끼리 봄소풍을 가기로 했다. 꽁이도 같이 도시락을 준비하겠다고 해서 꼬마김밥과 과일들로 각자 예쁜 도시락을 완성했다.
퇴촌의 식물원에서 가장 완벽한 피크닉 장소를 발견했다. 하트 모양의 나뭇잎이 돋아나고 있는 내 사랑 계수나무 아래, 황홀하게 아름다운 벚꽃나무 건너, 바로 옆으로 올챙이와 송사리들이 헤엄치고 있는 연못과 계곡이 있는 자리에 돗자리를 피고 소풍을 즐겼다. 올챙이를 데려가도 된다는 말에 꽁이는 올챙이를 엄청 잡았다. 딱 6마리만 키워보자고 하고 새 식구로 입양했다. 올해로 다섯 번째 도전인데 개구리가 될 때까지 잘 키워보자!
4/15, 수요일엔 선거하러 초등학교에 또 갔다. 부쩍 선거에 대한 질문이 많아졌다. 반장선거를 예를 들어 우리 동네의 반장을 뽑고 그 반장들이 모여서 동네와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라고 설명해줬다. 그래서 반장 후보들의 약속을 잘 읽어보고 맘에 드는 후보를 뽑는 거라 투표는 비밀로 해야 한다고도. 다양한 공약 중 아이는 집 가까이 공원에 사계절 스키장을 만들어준다는 약속을 맘에 들어했다. 꽁이가 바란 스키장 공약을 내건 후보가 당선이 된 다음날 감사하다는 내용의 스팸 문자가 왔다. 그걸 보더니 스키장 언제 만들어줄 건지 물어보란다. 선거문자라 바로 지웠는데 아, 진짜 물어볼 걸 그랬나 싶다. 아이가 지켜보고 있어요!
4/16, 목요일부터 도서관에서 사전예약 서비스를 실시한대서 읽고 싶은 책을 온라인으로 예약한 뒤 오후에 받으러 갔다. 공원길로 걸어가면서 귀한 분홍색 겹벚꽃나무를 발견했다. 예전 부모님 모시고 일본 갔을 때 보고 정말 예쁘다고 감탄했는데 도서관 가는 길에 2그루가 숨어 있었다. 도서관 앞에서 워크 스루로 책을 빌리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다시 걸어왔다. 이렇게 책을 빌릴 수 있으니 개학하는 기분이 난다.
4/17, 금요일은 개학 기념으로 친구와 놀았고, 4/18~4/19 주말은 연습할 피아노도 보러 다니는 등 여느 때처럼 보냈다. 월요일부터 TV 앞에 앉으면 그만이니 그저 TV가 잘 나오나 체크했다.
#엄마의원격수업
전환기 학부모를 위한 온라인 특강이 개설되었다길래 Zoom을 다운로드하여 수강해봤다. 첫날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 대상, 둘째 날 사춘기 자녀, 셋째 날 영유아 기질에 관한 강의 모두 너무 유익했다.
원격 수업이 시작된 후 사용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올라왔다. 나 역시 Zoom으로 수업을 들어보니 비디오, 오디오 설정을 잘 못할 경우 화면에 수강자 얼굴과 목소리가 노출되었다. 실수로 내 사생활이 모두에게 오픈될 수 있어 조심스러웠다. (Zoom의 보안 문제는 지금도 논란이 많다.) 저작권이나 초상권 개념이 부족한 아이들이 화면을 캡처하거나 녹취할 경우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채팅으로 강의 소감과 질문을 올리니 강의 중 채팅 알림이 올라오는 것도 집중에 방해되어 불편했다.
코로나 19 때문인지 덕분인지 우리 아이는 TV 속 EBS 선생님과 화면을 보고, 컴퓨터 너머 온라인 세상에서 자기주도학습을 해야 하고, 더 나아가 화상으로 선생님과 친구들과 채팅하며 수업 듣는 세상으로 단숨에 들어왔다.
#온라인개학 #오늘부터1일
아침 8시에 아이가 방문을 열고 나온다. 늦잠자는 아이에게 학교 가야지? 대신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고민했는데 스스로 일어나다니 기특하다. 세수나 옷 갈아입기도 필요 없다. 간단히 빵과 과일을 먹은 뒤 동시를 읽고 1교시 수업 준비를 했다. EBS가 나오는 TV 앞에 테이블을 놓고 1블록 수업에 필요한 교과서를 올렸다. 마침 E-알리미가 와서 출석했다고 회신했다.
편성표 상 1학년은 30분 티비보고 2학년 수업 시간 동안 논다. 또 30분 티비보고 2학년 수업 시간 동안 논다. 이번 주는 아이가 좋아하는 호랑이 선생님 강의라 수월하긴 하다. 두 번의 긴 쉬는 시간 동안 엄마는 학습지도 시키고, 리딩게이트도 로그인한다. 3~4교시는 과제활동 시간이나, 나는 여기에 5교시 창체(창의 체험활동)를 더했다. 학교 과제를 끝내고 EBS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유튜브로 동화 읽어주기를 보여 달란다. 이야기를 들으며 추억의 스킬 자수에 빠졌다. 이참에 나는 후다닥 점심을 준비한다.
12시에 점심을 먹을꺼다. 월수는 4교시라 점심 먹고 끝나고, 화목금은 5교시라 1시부터 또 수업이 있다.
오전 몇 시간인데도 엄마가 더 피곤한 첫날이었다. 오늘부터는 학교 일정 대로 생활할꺼라고 말했는데도 쉬는 시간엔 놀다가 수업 시작하자 마자 화장실 가겠다고 하고, 수업 중 배고프다고 간식 먹겠다 하고, 이래저래 딴짓하는 아이의 모습이 거슬린다. 온라인 개학이라고 갑자기 아이가 부모가 바라는 모범생으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 시간표, 이 마음가짐대로 지속할 수 있을까?
하트 모양 나뭇잎을 키워내는 큰 계수나무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