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롱님 Jun 02. 2020

짜장면이 울렸다. 엄마도, 나도

탯줄로 이어진 딸을 향한 내리사랑



이 얘기를 들은 이후 언젠가부터 짜장면을 먹을 때마다 불편해졌다. 그리고 속으로 짜장면이 내려가는데 반대로 속에서 슬픔이 타고 올라왔다.


내가 엄마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 이야기를 가장 자세하게, 아니 집중해서 들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꽁이를 임신 중일 때였다. 남자들이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로 투합한다면, 여자들은 출산한 얘기로 동지가 된다. 그렇게 엄마와 내가 처음으로 동질감을 느낀 묘한 순간이었다.



1978년 한겨울, 24살의 엄마


24살이 되던 그 해, 집안에서 주선해준 남자를 만나 시집을 왔다. 선자리 전부터 결정된 결혼이었고 만남은 형식적인 것이었다. 결혼 후 임신을 했고 짜장면을 종종 먹었다. 왜냐하면, 거기 안에 돼지고기가 있었으니까. 가난한 신혼 살이 중 잘 챙겨 먹지 못했던 그 시절 뱃속의 아기에게 줄 단백질을 짜장면에서 얻었다. 부디,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기도와 함께.


입덧이 심했던 봄을 지나 초여름이 다가올 때 큰 시누가 농사짓는 과수원에 갔다. 아직 익지도 않은 앵두, 자두 등을 잔뜩 따다 툇마루에 앉아 배불리 먹었다. 그걸 본 형님은 "아이고 가시내가 틀림없네.'라고 하셨고, 나도 신게 당기는 걸로 보아 첫아기가 딸이라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기집애가 아빠 닮아 행여나 까맣게 나올까 콜라, 간장처럼 시커먼 음식은 먹지도 않고 흰 우유만 마셨다. '뽀얘져라. 뽀얘져라.' 그런데 고기반찬을 해주지 못한 미안함에 까만 짜장면을 일부러 찾아 먹는다. 그 후로 짜장면 속 돼지고기를 볼 때마다 그때가 떠올랐다.


197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그날 어찌나 추웠던지... 예정일이 일주일이 지나도 애가 안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급하게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애 아빠는 출근하고 혼자서 리어카에 짐을 싣고 인부 아저씨를 따라 이사할 집으로 간 뒤 세간살이들을 힘겹게 정리했다. 그리고 저녁에 겨우 짜장면을 사 먹었다. 다음날 진통이 왔고, 크리스마스를 넘긴 새벽 2시 10분에 아기가 태어났다. 나도, 딸도 마지막 식사였던 짜장면 속 돼지고기의 힘으로 이 세상 밖에서 만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잊히지 않을 추억의 음식이 짜장면이라니..."


엄마의 이야기에서 내 목구멍을 턱 하니 막은 건 바로 짜장면이었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은 적이나, 중국집에서 외식을 한 적이 있었던가. 왜 나에게는 졸업식과 입학식의 공식 외식 메뉴, 이사하는 날 시켜 먹는다는 그 메뉴, 엄마가 없을 때나 엄마가 밥하기 싫을 때 시켜줄 만한 짜장면을 먹은 기억이 없을까. 줄곧 나의 부모님은 중국 음식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와 내 동생 앞에서 짜장면을 드신 적이 없으니까. 언젠가 우리는 왜 중국집으로 외식하러 가지 않느냐 물었던 게 기억이 난다. 부모님은 그저 밀가루인 데다가 기름져서 소화가 안된다고 하셨다. 그 말에 숨은 뜻을 그땐 몰랐다.


어렸을 때 엄마는 대신 짜장라면을 끓여 주셨다. 초등학교 3~4학년 때였나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짜파게티를 얻어먹게 되었는데, 그때 나는 내 앞에 놓인 짜장라면의 비주얼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왜? 짜장면이 이 모습이지?’의 의문은 당시 엄마가 해준 짜장라면에 있다. 지금에서야 웃으면서 꽁이한테 그때 얘기를 하지만,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낮에 먹은 짜파게티 얘기를 했을 때 낯선 반응이 잊히질 않는다.


“엄마, 낮에 친구 엄마가 짜파게티 끓여줬는데 국물이 하나도 없더라.”

“무슨 말이고.”

“아니, 엄마는 짜파게티 끓이면 국물이 가득 있잖아. 근대 걔네 엄마가 해준 건 국물이 없었다니까.”

...


그랬다. 엄마는 어렸을 때 짜파게티를 라면처럼 끓여주셨다. 짜장라면의 면발은 허연 색이었고, 라면만큼의 국물이 그릇에 담겨 있었다. 나와 동생은 그게 진리인 듯 면을 먹고 짜장 국물을 후루룩 마시거나, 밥을 말아먹었다. 반면 친구네 짜파게티는 포장지 겉의 사진처럼 반짝반짝 윤이 나는 면발 자태로 매끈하게 그릇에 담겨 있었다. 엄마는 짜파게티의 포장지에 찍힌 사진을 왜 보지 않았을까? 뒤에 레시피는 왜 보지 않았을까? 그때부터 엄마는 짜파게티를 끓이지 않았던 거 같다. 대신 나와 남동생이 면을 끓인 국물을 버린 뒤 짜장스프와 유성스프를 비벼 온전한 짜파게티를 밥상 위에 올렸다.



2012년 겨울, 35살의 나


나는 엄마에게 임신했다고 전화했다. 엄마는 노산인 딸의 입덧을 걱정했다. '입덧이 어떠냐, 어떤 음식이 당기냐.’ 자주 물어봤고 집에 와서 딸이 먹고 싶은 음식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입덧이 심했던 나는 식빵과 찐 고구마, 귤, 우유와 탄산수로 끼니를 연명하던 차였다. 입덧이 좀 잦아들고 나니 신기하게도 짜장면이 가장 먹고 싶어 졌다. 엄마는 대뜸 "딸이네. 딸이야."라고 하시곤, 뱃속 애기 생각해서 먹는 거 조심하라고 거듭 잔소리하셨다.   


나는 임신 중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지 않을 음식을 결정했다. 디카페인 커피 한잔과 빵을 먹는 대신 인스턴트 푸드, 배달음식, 외식은 하지 않는 것이었다. 특히 짜장면은 MSG가 많고 기름져서 열 달만 참기로 했는데 먹고 싶은 음식을 참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딸이 딱했는지 엄마는 부산에서 올라오셔서 짜장면을 만들어주셨다. 춘장에 고기와 야채들을 볶아 직접 짜장 소스를 만들고 우동 면을 말아 만들어준 엄마표 짜장면. 그걸 곁에서 지켜본 신랑이 엄마가 가신 뒤 짜장면을 몇 번 해줬다. 그러다 수소문 끝에 인천 차이나타운에 無MSG 짜장면 집이 있다고 해서 만삭에 인천까지 맛집 탐험을 가기도 했다.


왜 나는 짜장면이 그토록 먹고 싶었을까? 어렸을 적 자식 앞에서 짜장면 드시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던 엄마가 나를 낳기 전에 먹은 음식이 짜장면이라고 해서 그런 걸까? 간절하게 짜장면이 먹고 싶었던 건 내가 엄마 뱃속에서 먹었던 짜장면에 대한 욕구가 모성애로 발전하여 다시 나의 딸에게 주고 싶었던 거였을까? 입덧 중에도 고기가 당기지 않았던 나는 짜장면 속 고기를 볼 때마다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소화가 안될 것 같은 이 짜장면을 후루룩 먹으면서 미끌미끌 내 식도와 위장으로 넘어가 탯줄로 이어진 자신의 딸에게 전해지길 기도했다.



2016년 여름, 4살의 꽁이


꽁이의 최애 푸드는 짜장면이다. 꽁이 엄마는 애기 때부터 한참 바빴던 워킹맘이었다. 이유식이 끝나고 난 뒤 엄마는 퇴근길에 초록마을이나 한살림에서 어린이용 카레, 짜장 가루를 사 와서 연하게 덮밥 소스를 만들어 놓았다. 엄마가 아침에 출근하고 꽁이를 봐주는 이모가 오시면 아이는 이모가 쓱쓱 비벼주는 짜장밥을 받아먹었다.


4살 생일이 지났다. 어느 주말 엄마 아빠가 어디에 전화를 했는데 웬 아저씨가 짜장면을 집으로 가져다주셨다. 중국집 짜장면을 처음 먹어본 날이다. 이건 마치 엄마가 3살 때 하리보 곰젤리를 처음 허락한 날, 엄마가 4살 어린이날 때 처음 초콜릿을 입 속에 넣어준 날과 비슷하다. 입안에서 행복과 기쁨이 시작된 날이다.


엄마 말을 빌리자면 꽁이는 온 얼굴로 짜장면을 먹었단다. 순간 깜율이가 되었다. 중국집 짜장면을 처음 먹은 후부터 '오늘 뭐 먹고 싶은 거 있어?'라고 엄빠가 물어오면 늘 짜장면이라고 대답했다. 엄마, 아빠는 나 때문에 몇 년간 주말마다 짜장면을 먹었다. 토요일마다 가는 현대백화점 문화센터가 끝나면 지하에 유명 중국집 앞에서 30분이 넘도록 대기했다. 엄마가 기다리는 동안 아빠와 빠르게 장을 보거나, 쇼핑했다. 일요일에 수영장에 갈 때에도 짜장면, 할머니 집 갈 때도 짜장면... "짜장면 먹을래?”라는 말이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주신대.”와 비슷한 말 같았다.


요즘은 집에서 짜장라면을 먹는다. 옛날 엄마가 어렸을 때 부산 할머니는 짜장라면을 국물 라면처럼 만들어줬단다. 언젠가 한번 먹어보고 싶다. 꽁이는 짜파게티보다는 팔도 짜장을 더 좋아한다. 아빠는 양파를 미리 볶다가 짜장 액상 소스를 넣어 조리한 뒤 면을 넣는단다. 그래서인지 스티커와 함께 배달해주는 짜장면보다 훨씬 맛있다. 어떤 날은 그 위에 계란 프라이나 메추리알이 올라온다. 마지막엔 밥을 비벼 먹는다. '짜장 짬뽕 탕수육' 책을 보니 짜장면엔 열무김치를 함께 먹어야 맛있단다. 꽁이는 깍두기를 좋아하는데... 뭔가 짜장라면은 아빠가 해줘야 더 맛있는 거 같다. 엄마 아빠는 늘 “두 봉지는 부족하고 세 봉지는 양이 많은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꽁이가 어서 커서 짜장라면 1인 1봉 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단다.



엄마도, 나도 딸에 대한 사랑을 담은 이 짜장면을 부모님과 함께 먹어 보고 싶었다. 친정 부모님, 남동생과 나 그리고 남편과 꽁이 이렇게 나의 원가족과 현가족 6명과 말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중국 레스토랑에 간 건 2019년 설날, 싱가포르 여행에서였다. 일본에서 요리를 전공하고 자기 이름을 건 소바집을 운영 중인 남동생은 정작 싱가포르에서 마파두부 명인이 있는 유명한 차이니즈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마파두부를 주인공 삼아 우린 다양한 중국요리를 한 테이블에서 먹게 되었다. 원형 테이블에 앉아 요리가 가득 올려진 플레이트를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돌리면서 각자 취향에 맞는 음식을 먹었다. 짜장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중국식 누들 요리를 맛있게 먹으면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중국집에서 다시 모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내 기억 속의 우리 가족 첫 중국집 외식은 엄마가 예순다섯 살, 내가 마흔둘, 꽁이가 일곱 살 되던 설날, 싱가포르 오차드 로드의 한 미슐랭 레스토랑에서였다.


이젠 부산에 가면 온천장 허심청에서 목욕을 하고 엄마, 꽁이와 함께 근처 중국집에 짜장면을 먹으러 간다. 짜장 곱빼기, 짬뽕 하나씩 시킨  뒤 나는 엄마 앞으로 얼큰한 짬뽕 그릇을 건넨다.  



작가의 이전글 8살, 코로나 입학생 #29 인생 첫 등교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