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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롱님 May 27. 2020

8살, 코로나 입학생 #29 인생 첫 등교날

D+87  2020년 5월 27일


#선생님께온전화

지난주에 실시한 등교 횟수 관련 설문조사 결과가 월요일 오후에 나온다고 해서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매일 등교하는 건 아니겠지. 주 2회 정도 가려나...' 싶었다. 오전 EBS 수업을 끝내고 약속한 대로 율동공원으로 출동했다. 날씨는 너무나 화창했고 몇몇 아이들이 모래놀이터와 계곡에서 놀고 있었다. 오랜만에 모래놀이 장난감을 모두 꺼내 성을 쌓고 있는데 같이 놀고 싶다며 6살 쌍둥이들이 다가왔다. 골목대장처럼 놀이터를, 계곡을 오고 가며 신나게 놀던 오후였다. 담임선생님께서 홀짝 번호로 나눠 주 1회 등교하는 걸로 결정 났다고 문자를 보내주셨다. 그러곤 전화로 꽁이는 홀수번호라 수요일에 등교하며 그날 8시 50분까지 1층 중앙현관으로 오라고 하신다. 급식을 신청했으니 1시 10~20분쯤 하교할 예정이라고 자세한 사항은 알림장을 봐달라고 당부하셨다.


"꽁아! 수요일에 학교 간대!" 나는 킥보드 타는 아이를 향해 크게 외쳤다. 아이는 같은 어린이집 친구들은 번호가 홀수인지, 짝수인지 물어봐 달라고 했다. 아쉽게도 둘 다 짝수였다. 꽁이 먼저 수요일에 간다.



#학교가기D-1

2월부터 준비해놓은 책가방, 실내화 그리고 학교 준비물들이었는데 나는 왜인지 무척 예민해져 있었다. 마스크 케이스가 있다고 해서 다이소로 달려가 찾았으나 없다고 해 항균/제균 티슈만 잔뜩 구입해왔다. 마스크 겉면도 막 만지고, 떨어트리고, 잃어버리고 그러는데... 마스크 벗을 땐 그냥 책가방 안에 넣어두라고 괜히 잔소리했다. 그동안 해온 학습지들을 파일 안에 담으면서 우리 애만 부족한가 싶어 진다. 모든 책과 공책, 학용품, 준비물들에 이름 제대로 적혀 있는지 체크하라고 또 잔소리한다.


책가방엔 국어/수학 교과서와 읽을 동화책 2권, 필통, 물병만 넣었는데도 꽤 무겁다. 신발주머니 속 실내화는 사이즈가 잘 맞는지 다시 신어 본다. 학교에서 교과서와 학습꾸러미 담아 나눠준 빨간 가방에 교실에 놔두고 사용하는 각종 준비물을 담았다. 등교 첫날 아침 꽤 짐이 많다.


가방 정리를 끝내자 마자 꽁이는 소파 위를 점프 점프하며 신난다고 설렌다고 소리쳤다. 인형 친구들에게도 자랑하고 아빠에게도 전화해서 내일 학교 간다고 흥분된 목소리로 얘기한다.



#아빠손편지

지방 출장 갔던 신랑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 첫 등교하는 딸에게 사랑을 담은 손편지를 선물로 주었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항상 고마워. 초등학교 입학을 축하한다. 지금처럼 항상 밝고 건강한 아빠, 엄마 딸이 되어줘. 사랑해요. 우리 딸♡'이라고 쓰인 카드에 전날 밤 모두 뭉클해진다. 코로나19로 인생 첫 학교 입학식은 없어졌지만 내일 드디어 학교 문턱을 넘어보게 된다. 엄마의 마음과 달리 아빠의 마음은 어떨까? 딸의 등교 전날 밤이 왠지 결혼식 전날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품 속 꼬마가 훌쩍 커서 학교로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빠의 서운함엔 사랑이 담겨 있다.




#학교가는날

엄마인 나도 오랜만에 알람을 7시에 맞춰놓고 잤다. 점심시간까지 배고플 텐데 아침밥을 먹여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간단한 주먹밥과 과일들을 챙겨놓고 깨우려고 했는데, 꽁이가 방문을 열고 나온다. 출근하는 아빠와 인사하고 씨앗들과 올챙이들이 하룻밤 새 얼마나 컸는지 살펴보고 학교 가는 날이라며 자랑한다.


마냥 좋은 줄 알았는데 밥을 먹다가 갑자기 무섭다고 말했다. 같은 반에 아는 친구가 한 명도 없어서 아직은 낯설어서 그런 거라고 했지만, 어제 불안한 내 마음에서 나온 잔소리들이 아이 마음에 담겨 있었는지 미안해졌다. 아침에 가면 키 순으로 자리를 정하지 않을까? 지그재그로 앉는다는데 옆엔 누가 올까? 밥은 제육덮밥이 나온대! 라며 나는 계속 얘기를 이어갔다. 아침밥 안 먹으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엄청 크게 나서 주변 친구들이 알 수도 있다며 주먹밥을 억지로 하나 더 먹이면서 긴장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무섭겠지...


Zara에서 사둔 핑크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새 운동화를 신고, 미국에서 사 온 책가방을 메고, 실내화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책가방이 너무 무겁다며 힘들어했다. 매일 이 정도 무게의 책가방을 메야하니 오늘부터 적응해보자고 얘기하니 혼자 메고 가겠단다. 그러면서 "엄마, 나랑 똑같은 가방은 없겠지?" 묻는다. "응, 아마도. 혹시 있으면 어디서 샀나 물어봐~"라고 답했다. 아파트에 활짝 핀 장미덩굴을 지나 학교로 걸어간다.



학교 앞엔 많은 선생님들이 나오셔서 오늘 첫 등교하는 어린이들을 환하게 맞이해주신다. 박수를 쳐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1층 중앙현관에서 우린 헤어졌고, 엄마가 들고 온 준비물 가방까지 무겁게 들고 가서 열 체크하고 선생님과 인사하는 뒷모습을 보니 나도 긴장감이 몰려온다. 그리고 흰 티셔츠 입히면서 점심밥 제육덮밥이라 흘리면 안된다고 한말도 하지 말걸 후회도 밀려온다.



#꽁이만나고싶어요

친구 엄마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한다. "꽁이가 홀수라 오늘 먼저 등교하네요." "이따가 하교하면 꼭 연락 주세요. 꽁이에게 오늘 얘기 듣고 싶어요!"라고. 홀수라 외롭게 학교를 갔지만 덕분에 먼저 학교 가본 선배가 되었다. 1시간 반쯤 후에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다시 간다. 아이는 날 보자마자 뛰어와 안기며 쉴 틈 없이 쫑알쫑알거리며 오늘 일을 얘기할 거다. 혼자 감당한 낯설음과 무서움 보다 엄마가 궁금해는 것들을. 가령 키 순으로 몇 번째인지, 자리는 어디인지, 친구는 누가 있는지, 선생님은 어떠신지... 말하며 놀이터에서 애들이랑 놀고 싶다고 하겠지? 벌써 기다려진다. 꼭 안아줘야지. 나처럼, 신랑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전화를 손꼽아 기다릴 거다.



8살, 장미 입학생 꽁아~ 우리는 믿고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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