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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롱님 Jun 05. 2020

아빠의 식후땡이 사라졌다

커피 심부름이 고픈 딸



"아버지 커피 드릴까요?" "으응, 아니."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있던 마흔세 살의 딸은 당황해 멍청하게 서 있었다. 넋 나간 표정으로 내 머릿속 시계태엽을 되감기 시작했다. 꽁이랑 부산에 온 지 이틀째 아침, 어제 하루 동안 아빠가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아침에 수서역에서 SRT 타고 부산역으로 이동해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했다. 엄마가 준비한 과한 상차림을 점심으로 든든하게 먹었고, 기장의 명소인 아홉산숲에 놀러 갔다. 그리고 달맞이언덕을 돌아 청사포다릿돌전망대로 구경 갔다. 마지막으로 유명하다는 미역국을 사 먹고 스타벅스에 갔다. 예전 같았으면 집에서 점심 후 믹스커피 한잔, 스타벅스에서도 아메리카노 숏 사이즈 한잔은 드셨을 텐데.  


이제 아버지 연세도 일흔이 훌쩍 넘으셨다. 의사의 권유대로 잠깐만 드시지 않는 건지, 담배처럼 커피도 완전히 끊으신 건지 잘 모르겠다. 나는 묻지 못했다. 어떤 대답을 들어도 울컥할 것 같았으니까. 아빠가 커피를 마시지 않자 나는 할 일이 사라진 딸이 된 기분이다. 아빠의 식후땡 커피와 과일을 챙기는 게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잘 해온 일이었는데...  



어릴 적 아빠는 일요일 오후마다 나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내 기억의 첫 심부름이다. 토요일까지 근무하고 일요일엔 늘 늦잠을 자던 아빠는 나에게 오백 원 동전을 주면서 약국에 가서 박카스 한 병과 아로나민 한알을 사 오라고 했다. 어떤 날은 아로나민 대신 우루사였다. 초등학교 다니기 전이었으니 6~7살 정도였는데, 박카스와 아로나민이 뭔지도 모른 채 까먹지 않으려고 외우면서 약국에 갔던 기억이 난다. 아빠가 먹고 남긴 박카스 몇 방울을 마신 것도. 뭔가 아빠 혼자서만 맛있는 걸 먹는 것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월요일을 앞둔 일요일 오후에 먹는 박카스와 우루사가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밥벌이의 무게란, 그것도 4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의 무게란 그랬다.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빠가 시킨 두 번째 심부름은 커피 타기였다. 당시는 믹스커피가 나오기 전이다. 냉동건조 커피, 프림, 설탕이 담긴 예쁜 통에서 저마다의 황금비율로 덜어 잔에 담은 뒤 뜨거운 물을 부어서 잘 녹으라고 휘휘 저어 완성하는 커피 말이다.


엄마, 아빠는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 저녁 먹고 땡,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도 커피를 즐기셨다. 식사 후에 밥상을 치우면 나는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그리고 커피잔을 2개 꺼내 엄마, 아빠의 커피 취향대로 제조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프림과 설탕을 많이, 아빠는 적게 넣어 나는 커피 심부름이 제일 어려웠다. 커피:프림:설탕을 2:2:2로 넣어야 하나, 1:2:2로 넣어야 하나, 1:1:2로 넣어야 하나 갈팡질팡했다. 그래서 내 커피는 늘 애매한 맛으로 완성되었다. 부모님은 맛있다면서도 커피나 프림, 설탕통을 더 가져오라고 하셨다.


각자의 황금비율을 기억하는 것 외에도 난관은 많았다. 커피물은 수증기가 펄펄 나도록 팔팔 끓인 뒤에 잔에 따라야 한다는 것! 언젠가 난로 위의 주전자 속 따뜻한 물을 넣었더니 "귀찮더라도 가스불에 올려 팔팔 끓여야 맛있다."라고 아빠는 얘기했다. 정수기 온수와 주전자 끓인 물로 탄 믹스커피 맛이 다른 건 어른이 되어 알게 되었지만.


또 어려운 마지막 숙제는 물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다. 아빠의 잦은 커피 심부름에도 내 커피가 매일 이상한 맛을 냈던 건 물의 양이 달랐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적게, 어떤 날은 보통, 또 어떤 날은 가득이어서 늘 걷잡을 수 없는 맛이었을 거다. 지금도 난 물 조절이 어렵다. 컵에 믹스커피를 부은 뒤 물을 따를 때마다 멈출 때를 고민하다 후회한다.


그렇게 친척집에 놀러 갔을 때, 집에 손님이 오실 때 어김없이 나의 역할은 주전자에 물을 끓이는 것이다. 수학 1등급 성적보다 어려웠던 황금비율 맞추기는 네모난 모양의 믹스커피가 등장하고 설탕이 조절되는 스틱 형태로 발전하면서 해결되었다. 아빠는 노란 믹스커피 한봉 그대로, 엄마는 믹스커피에 설탕 한 스푼 더 넣어드리면 된다.



나는 커피에 호기심이 많았다. 부모님의 식후땡 커피에는 과연 무슨 매력이 있길래 저렇게 좋아하실까? 궁금했다. 내가 탄 커피를 기미 하면서 흠, 흠 거렸고, 부모님 커피잔 바닥의 남은 커피를 몰래 마시며 이런 맛이구나 즐거워했다.


나의 공식적인 첫 커피는 중학생 때였다. 집 근처 학원가에 있었던 자판기에 동전을 넣어 커피 버튼을 눌렀다. 코코아, 율무차가 아닌 밀크커피 버튼을 누를 때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아 무서웠던 경험, 어른들의 소유물로만 여겨졌던 커피를 중학생이 마신다는 건 뭔가 대단한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믹스커피의 전성기는 역시 대학 때가 아니었을까. 대학에 입학했을 때 가장 놀랐던 건 자판기 커피 가격이었다. 신입생 때 학교 기숙사로 처음 짐을 옮긴 날, 부모님은 자판기 커피값이 100원이라며 매우 신기해하셨다. 내가 짐을 정리하는 동안 기숙사 로비에서 커피를 마시고 또 마시던 엄마, 아빠의 행복한 표정이 떠오른다. 등록금 비싼 사립대학교에서 나름 자판기 커피 인심은 후했나 보다. 우린 대학 졸업 때까지 자판기 커피값 100원을 힘겹게 사수했다. 등록금 인상 이슈보다도 자판기 값 인상에 수업을 제치고 뛰쳐나가 다 함께 데모를 했었다. 그렇게 대동 단결한 탓에 4년 내내 100원의 커피를 즐겼다. 지금은 얼마가 되었을까?


가끔 퇴근길 지하철 자판기에서 400원을 넣어 밀크커피를 누른다. 밀크커피, 설탕커피, 프림커피 등 종류도 다양하고 가끔씩 ‘고급’ 단어가 붙어 100원 정도씩 더 비싼 커피도 있다. 이 달달함은 스타벅스 나오짱 고객이 즐겨 마시는 더블샷 보다도 훌륭하다.  



스타벅스 국내 1호점 오픈을 기억하고 스텀타운커피 마시러 포틀랜드 에이스호텔을 간 나는 여전히 믹스커피를 사랑한다. 이젠 엄마도 노란 봉지보다 디카페인 초록 봉지를 찾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식사 후에 주전자에 물을 팔팔 끓인 뒤 초록 봉지 하나에 각자의 취향을 뜨겁게 녹여 엄마, 아빠와 마주 앉아 호로록 마시고 싶다. 그건 나의, 아들 아닌 딸의, 유일한 심부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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