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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롱님 Jun 09. 2020

아픈 청춘이 사르르 녹아버렸다.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지 않아도 괜찮아



경쾌하고 밝은 아이스크림 매장 문을 다시 열고 들어간 게 십여 년 만인 것 같다. 마젠타 70에 가까웠던 핑크색은 마젠타 90의 선명함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출입문 손잡이는 대형 핑키 스푼으로 바뀌어 있었다. 꽤 오랫동안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이곳에 가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은 달콤했다.


나는 배스킨라빈스31의 컬러풀한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다. 중학교 때였는지, 고등학교 때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90년대 초반쯤 동네에 새로 아이스크림 가게가 오픈했다. 파리바게트가 우리 가족의 빵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놓은 것처럼, 배스킨라빈스31은 10대 소녀의 아이스크림 취향을 뒤 흔들었다. 디핑 케비넷 안의 화려한 아이스크림 중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처음으로 고른 플레이버를 대학 때까지 고집했다. 연한 핑크색 베이스에 쫀득하고 알록달록한 사탕이 알알이 박혀 있는 그 플레이버의 이름은 잊었지만, 아직도 치아에 쫀뜩이처럼 달라붙어있었던 사탕이 기억난다.


그 핑키핑키한 아이스크림은 대학생 때 사라졌다. 대신 슈팅스타라는 뉴 플레이버를 골랐다. 입안에서 펑펑 터지는 팝핑 캔디가 들어있다고 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돌이켜보면 그때 나의 아이스크림 취향은 그랬다. 사탕이 씹히거나 톡톡 터지거나...



더 이상 아이스크림이 달콤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나는 어느 음반회사에 입사했다. 내 이력서 상에 등장하지 않는 유령 경력이다. 몇 달 근무하다가 아이스크림 회사에서 올린 신입사원 채용에 지원했고, 서류전형, 채용 시험, 1, 2차 면접을 통과해 합격했다.


당시 2002 한일 월드컵 개최를 1년 정도 앞두고 있었다. 월드컵 마케팅 아이디어 관련 질문이 면접에서 나왔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답변인 축구공 모양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만들면 어떻겠냐고 대답했다. 물론 그 식상한 대답으로 채용된 건 아니고, 내가 함께 일할 부서원들의 신중한(?) 투표를 거친 뒤 결정되었다. 담당 부서장의 권한으로 생긴 그 팀만의 전통이었는데, 1차 임원진 면접에서 두배수를 뽑고, 2차 부서원들 면접에서 최종 채용자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면접에 통과한 사람 중 여자였고, 가장 어렸고, 여성스럽지 않은 직설적인 캐릭터였단다. 팀의 남자들은 모두 나를 뽑지 않았고, 반대로 여자들은 모두 나를 뽑았다고. 성별로 표가 갈리자 부서장이 나의 사수에게 직접 결정하라고 했단다. 즉, 사수 언니가 부려먹기 수월한 여자 후배로 내가 간택되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내가 입사한 뒤 그룹 내 공채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서 이 전통은 사라졌다. 참으로 어이없었던 채용 프로세스가 아팠던 내 청춘의 빗장을 열었다.


합격 연락을 받자마자 다니던 회사에 얘기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제출해야 할 서류가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신입사원인 나의 신원을 보증할 2명의 재산세 납부 증명서를 내는 것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동네 세무서에 가서 서류를 떼고 아이스크림 매장에 들렸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아빠는 가맹사업에 대해 궁금해하셨다. 아이스크림 말고 도넛, 빵 프랜차이즈도 계열사라니...


그렇게 5월의 어느 날, 나는 머리카락을 블랙으로 염색하고 불편한 H라인 스커트를 입고 새로운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그룹웨어 메일함에서 황당한 이메일을 받게 되었다. 여직원에게만 발송된 '사내 여직원 유니폼 착용에 대한 찬반투표' 메일이었고, 그제야 주변을 살펴보니 내가 근무하는 부서만 제외하고 모든 여직원은 유니폼은 입고 있었다. '아니, 왜 유니폼을 입고 있지?' 그들은 유니폼 착용에 찬성해왔고, 이번 투표에서도 찬성표를 던졌다. 이 부서만 외부인과의 미팅이 많아 부서장 권한으로 자율복을 허가해줬다지만, 내가 이동할 때마다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는 여직원들의 눈빛이 무서웠다.


유니폼 말고도 그 회사 내에선 남녀가 유별했다. 남자가 해야 하는 바깥일과 여자가 해야 하는 집안일이 보이지 않게 나눠져 있었다. 집에서, 학교에서 차별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가 하는 일을 돕는 포지션, 여자니까 해야 하는 업무 분장을 받자 몹시 당황스러웠다. 이런 회사에서 그토록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니...


어느 해 여름, 이상하게 주말마다 비가 왔다. 아이스크림은 여름에, 더울 때 매출이 상승하고, 겨울에, 비가 올 땐 하락한다. 매출이 올라야 하는 여름에, 7~8주 동안 주말마다 비가 오니 매출을 떨어졌고 분기 목표 달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어느 날 상품권이 지급되었다. 직원들에겐 직영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50% 할인쿠폰도 있다. 이 쿠폰을 사용해 직영 매장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야 하는 명령(?)이 떨어진 것. 당시 하프갤론이 만 원대였으니 이 하프갤론 이십여 개를 오늘 당장 친구들에게 나눠줘야 했다. 부리나케 전화와 문자를 돌려 가까운 직영매장에서 픽업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나 역시 몇 통의 하프갤론을 집으로 가져왔다. 혼자 사는 내가 두고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기에 집 근처 단골 세탁소와 가게 사장님들에게 나눠 드렸다. 선물로 드리는데 마냥 부끄러웠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남은 아이스크림은 어둡고 눅눅한 집 안 싱크대에 쏟아 부었다. 아이스크림이 녹으며 비릿한 우유 냄새가 올라왔다. 비오는 여름이면 그 때 우울감이 밀려온다.


31가지의 아이스크림만 있는 줄 알았는데 수백, 수천 가지 아이스크림 레시피가 있었다. 내가 픽했던 신제품 슈팅스타는 Top 10 플레이버로 성장했고, 나는 왜 다양한 아이스크림을 골라 먹지 않았나 후회했다. 내 평생 먹을 아이스크림을 거기서 다 먹었을 정도로 아이스크림을 사랑했다. 그랬으니까 그 3년 동안을 버텨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은 내가 명절마다 가져다 드리는 아이스크림 상품권을 무척 좋아하셨다. 주변에 지인분들을 만나면 딸이 다니는 회사라고 한번 사 먹어보라고 자랑하셨다. 하지만,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외로움이 지독했고, 결과는 어설퍼서 내 청춘이 아프기만 했던 그 시절을 돌이키면 다시는 화려하고 경쾌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지 않다.




배스킨라빈스 31 매장 문을 다시 열게 된 건 퇴사하고 십여년 뒤 엄마가 되어서였다. 왜 그때 미래 고객인 어린이 타깃 대상으로 열과 성을 올렸는지 내가 어린이를 둔 엄마가 돼서야 공감이 되었다. 어린이들은 본능적으로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특히 여러 가지 중에서 고를 수 있는 그 즐거움이 가득한데, 게다가 온통 핑크세상이니 딸아이는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는 말을 사랑했다. '나처럼 이 회사가 지긋지긋해 떠났던 선배들도 엄마, 아빠가 되어 다시 왔겠지?' 생각했다. 그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나는 아주 어색하지만, 꽤 익숙하게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타임리프 애니메이션처럼 4,300원이던 파인트가 8,200원이 된 만큼의 시간을 달려 온 듯한 기분이었다.


“꽁아, 엄마 여기 아이스크림 회사 다녔어~”

“엄마가 아이스크림 만들었어?”

“아니, 아이스크림 말고 이것저것 만들었어. 기억해줘!”


초콜릿 아이스크림만 골라 먹으니 내 해피포인트도 다시 적립되기 시작했다. 생일 쿠폰도 날아와서 한 겨울에 아이스크림 먹기 좋은 날을 골라 다녀왔다. 새로 나온 초코 플레이버를 먹으며 행복하단다. 어린이날엔 파인트에 꽁이가 좋아하는 3가지 맛을 담아 주문했다. 옛날엔 어린이날 행사가 많았는데 지금은 뭐가 없네 생각하며...


그렇게 미워했던 기억은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고, 내 아이의 웃음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이제 나도 내가 좋아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맘 편하게 고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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