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8 2020년 6월 17일
#아이엠그라운드친구이름대기
어느덧 EBS 호랑이 선생님이 꿀단지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아이는 새로운 남자 선생님도 무척 좋아했다. 그 이후 호랑이 선생님이 안 나오셔서 아쉽냐고 물었더니, 진짜 호랑이 선생님이 학교에 계신다며 괜찮다고 한다. 등교 첫날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의 자기소개 시간에 선생님이 EBS 호랑이 선생님은 가짜고 본인이 진짜 호랑이 선생님이라고 얘기하셨단다. '호랑이 선생님'의 숨겨진 '무섭다'는 뜻을 아직 모르는 아이는 너무너무 재밌고 좋은 분이라며 좋아했다. 남자애들은 떠들고 말 안 들어서 혼났단다. 여자애들 중엔 쌍둥이도 있고, 이름이 외자거나 세 글자인 친구도 있다며 참새처럼 쫑알거렸다.
학교에서 다 함께 배우는 국어, 수학도 즐겁지만, 봄과 창체 수업 활동을 매우 열심히 참여했다. 이름표도 척척, 예쁜 봄 모자도 뚝딱 완성했다. 줄넘기도 술술 했다며. 집에서 그동안 만든 과제들을 자기만 가져왔다며 교실 뒤편에 꽁이꺼만 붙어 있단다. 선생님이 주신 씨앗들도 잘 자라고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었다며 자랑했다니 아이는 즐거움이 꽉 찬 모습이다. 다소 걱정했지만 급식도 두 그릇씩 먹고 마스크를 떨어트리거나 물을 쏟거나 화장실을 못가거나 옷이 지저분해지는 일은 없었다.
키즈노트가 없으니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더 기울이게 되고, 엄마에게 학교 얘기해주는 고마운 딸을 두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 옛날 우리 엄마도 내 얘기에 힘이 났겠지 싶다.
아이는 학교를, 선생님과 친구들을 좋아한다.
#8살생일소원
7살 생일엔 자기 방을 갖고 싶다고 소원 빌었다. 우리는 부부에서 세 가족의 침실이 된 안방을 꽁이에게 주기로 결정을 내리고 (일방적인 나의 의견이었지만ㅠ) 본격적으로 아이방 꾸미기에 돌입했다. 회사에 딸아이 방 만들어줘야 한다며 일주일간 연차를 낸 뒤, 나는 집에 틀여 박혀 미친 듯이 버리기 시작했다. 하루는 정리 전문가가 오시고, 또 하루는 거주청소 전문 업체가 오셨다. 비워도 비워도 비워지지 않는 집이 바로 애가 노는 집이라지만, 안방은 이층 침대가 놓인 꽁이 방이 되었고, 베란다는 인형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캠핑장이 되었다.
8살이 되면서 학교에서도 어린이집처럼 매달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하냐고 물었다. 어린이집에선 생일 주인공들은 모두 한복을 입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다 함께 불러주는 생일 축하 노래를 듣고, 케이크의 촛불을 끈 뒤 맛있게 나눠 먹는다. 그리고 엄마가 아이 앞으로 보낸 카드와 책 한 권을 읽는다.
학교에서는 공식적인 생일파티가 없으니 생일날 한복을 입고 가지 않는다고 얘기하자 많이 아쉬워했다. 대신 학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파티를 할 수 있다고 하니 슬픔이 가득했던 눈망울에 반짝반짝 별 빛이 생긴다. 올해 자기 생일은 수요일이고 학교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미리 나눠주고 생일날 하교 후 집으로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코로나 19로 입학이 재차 미뤄지면서 꽁이는 생일날 전엔 학교를 갈 수 있느냐고 계속 물어왔고, 다행히도 5월 27일 수요일에 첫 등교하면서 아이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일파티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다.
여러 번의 투표로 꽁이는 매주 월요일에만 등교하게 되었고, 현재 4번 학교 수업을 다녀왔다. 홀수번호인 십여 명만 오는 교실 안에서 쉬는 시간 없이 수업만 듣다 보니 아직 친구의 얼굴과 이름이 낯설다. 그건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 1학년 3반 홀수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는 건 무리였다.
#외동딸이뭐가나빠?
우리는 2주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온다. 1학년 권장도서 목록과 통합교과과정 '봄' 주제에 맞는 책 위주로 보고 있는데 어느 날 '외동딸이 뭐가 나빠?'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에잇 포켓을 둔 외동딸이 느끼는 지나친 관심과 기대, 그리고 형제자매가 있는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 그 속에 담아둔 혼자라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외동딸인 꽁이의 속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남동생을 더 편애한다고 생각했던 어렸을 때 나와 달리 외동이어서 모든 게 부러웠던 꽁이가 느끼는 건 내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늘 친구가 고픈 아이여서 "엄마 놀자" "엄마 뭐하고 놀까?" "엄마 이제 또 뭐하지?" 등을 쉴 새 없이 말하며 내 꽁무니를 쫓아다녔던 거다.
나는 친구에게 연락했다. 내 오랜 친구이자 꽁이의 친구 A의 엄마이기도 하다. 우리 둘에겐 직업, 취향, 추억 등에 8살 외동딸을 키우는 엄마라는 공통점이 더해졌다. A를 집으로 초대해 파자마 파티를 해도 되겠냐고. 흔쾌히 허락해줘서 꽁이는 A와 집에서 그림도 그리고, 바비 인형 놀이도 하고, 생일밥도 먹고, 생크림 거품 목욕도 하고, 똑같은 파자마를 입고 2층 침대 한층씩 누워 꿈나라로 여행갔다.
친구와 놀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게 이 또래 아이들에겐 굉장히 중요하다. 엄마 없이 거품 목욕 후 샤워도 해보고, 드라이기 들고 스스로 머리도 말려보고, 밥 먹을 때 반찬도 골고루 먹어보는 것 말이다. 너의 학교 생활은 어떤지, 너의 선생님과 친구들은 누군지, 너는 학원에서 뭘 배우며 숙제는 얼마나 하는지... 너의 집과 나의 집 분위기가 다르고 그 집안에서 보내는 생활도 다르다. 그렇게 다름을 살펴보며 틀림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 맘으로 배우게 된다.
다음날 A를 집으로 데려다주면서 그 동네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았다. 더운 날 땀을 뻘뻘 흘리고 얼음물을 벌컥 들이키면서도 헤어지기 싫다고 더 놀겠다고 떼쓰기 시작했다. 그땐 내가 모른 더 큰 후유증이 있을 줄을 예상치 못했다.
꽁이에게 A가 없는 우리 집은 낯설었다. TV 만화영화도 밥도 목욕도 잠도 혼자인 날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이의 텅 빈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는 또 친구 카드를 꺼냈다. 어린이집 절친인 B를 초대하기로 한 것. 그렇게 월요일 하교 후 B를 데리고 온 뒤 둘은 실컷 놀았다. 친구가 약이다.
#파랑오리 #100인생그림책
4살부터 생일엔 책을 선물했다. 8살엔 어떤 책이 좋을까 찾아보다 '파랑오리'와 '100 인생그림책'이 눈에 띄어 짧은 메모를 남긴 뒤 꽁이에게 읽어줬다. 나는 '파랑오리'를 읽는 게 두려웠다. 나의 엄마와 함께 꽁이의 엄마가 된 내가 계속 연상되었다. 예상대로 나는 책을 읽으며 울기 시작했다. 꽁이는 아직 내가 왜 우는 지 잘 알진 못했지만 '엄마 울지 마'라고 내 눈물을 닦으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너는 언제나 나의 아기이고, 엄마는 언제나 너의 엄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