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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롱님 May 21. 2020

8살, 코로나 입학생 #27 열심히 하는 엄마라고?

D+81 2020년 5월 21일


#열심히하는엄마

"열심히 하는 엄마시네."라는 말을 들었다.


지난주 금요일 이번 주 주간학습계획이 E-알리미로 올라왔다. '흠, 다음 주 화요일에 2차 학습 꾸러미를 나눠주신다고 하더니, 체험활동이 많네.'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바쁜 월요일 아침, 일일학습내용이 탑재되었는데 첨부파일이 누락되었다. '엇, 어쩌지?' 나는 고민했다. 선생님께 연락을 드릴까 말까. 지난번에도 첨부파일이 좀 늦게 올라온 적이 있어 좀 기다려보기로 했다. 1교시 EBS 수업은 한참 진행 중이었는데 아무래도 월요일이라 깜빡하신 듯하여 용기 내어 문자를 보냈다. 내 인생 첫 담임선생님께 보내는 문자 메시지다. 인사를 하고 소속을 밝히고 문의 드릴 내용을 조심히 작성했다. 잠시 뒤 E-알리미 알람이 울렸고 회신 메시지가 왔다. 다음 주 개학 때 뵙겠다는 내용과 함께 감사 인사를 드렸다. 하하하, 개학 전에 제대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다음날 오후, 학교로 2차 학습 꾸러미를 받으러 갔다. 마침 꽁이는 피아노 수업 시간이라 나 혼자 학교로 가는 길, 왠지 걱정이 된다. 어제 문자로 인사드렸던 일도 생각나고 혹시 나를 알아보실까 해서 조마조마했다. 아이의 이름을 말하니 아니나 다를까 "열심히 하는 엄마시네."라고 웃으며 말하셨다. 그리고 이웃반 선생님들께 어제의 일을 얘기하셨다. 다행히 마스크를 쓰고 있어 부끄러운 내 얼굴이 가려졌다. "아니에요."라고 인사드린 뒤 꾸러미를 담아 그 자리를 후다닥 떠났다. 나를 지켜보시는 듯하여 뒤통수가 뜨겁다. 오는 내내 '괜한 짓을 했나. 내가 반대표 엄마도 아닌데...'라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아이의 수업을 챙기는 게 오지랖은 아닌데.


뭔가 낙인이 찍힌 거 같았지만, 긍정적인 책임감이 생겼다. 학습과제가 제대로 올라오는지 관심을 갖는 엄마가 있다는 건 담임 선생님께도 분명 좋은 리액션을 드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수업을 엄마가 대신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행복하게 즐겁게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엄마가 도와주는 게 초등학교 학부모의 역할이라고 다독여 본다.


집으로 가져온 학습 꾸러미엔 6종의 씨앗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6종의 씨앗을 관찰하고, 심어서 싹이 돋아나는 걸 지켜봐야 하는데 봉숭아 씨앗이 없었다. 흠... 오후에 꽃집과 문방구를 돌아 겨우 봉숭아 씨앗을 찾았는데, 유효기간이 오래된 것 같다며 싹이 안 틜 수 있으니 무료로 주신단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봉숭아 씨앗을 가져와 꽁이 친구네 집에도 전해주고 6종의 화분을 만들었다. 별일 아닌데 화분에 물을 주고 나니 설렌다. 도키도키!





#직업병이만든성격

열심히 하는 엄마라... 나는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어렸을 땐 하루 종일 잠자는 것도 좋아했고, 방이나 책상 정리가 깔끔하지도 않았다. 밥 챙겨 먹는 것도 귀찮아했던 나를 엄마는 늘 걱정하셨다. '저거 독립해서 지 밥을 챙겨 먹고 다니려나, 빨래는 하고 살려나.' 부모님을 떠나 대학과 직장을 다닌 서울살이 때에도 그랬고, 결혼하고도 귀차니즘이었다. 그런데도 고양이를 10년 넘게 키웠고, 지금은 요츠바 같은 어린이와 살고 있다.


내가 빠릿빠릿하게, 깔끔하게 살 땐 바로 직장 안에서였다. 몇 번의 퇴사와 이직을 통해 내 책상은 오늘 당장 사표 써도 될 정도로 (가져갈 짐은 출근길에 든 내 백 하나) 개인적인 물건들은 놓지 않아 주변은 늘 썰렁했다. 야근이 많은 직종의 특성상 야근을 최대한 하지 않기 위해 업무 속도를 매우 빠르게 높이기를 훈련했다. 가능한 미리 준비하고, 의문점은 바로 확인하고, 피드백은 빨리하고 그렇다 보니 여러 클라이언트의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이 직업병이 만들어낸 성격이 요즘 집에서 드러난다. 주간학습계획을 보고 일주일을 미리 예측하고 필요한 사항들을 체크한 뒤에 일일학습내용을 보며 오늘의 일과를 준비한다. 내 계획 안에서 꽁이가 수업 듣고 과제를 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만들어 놓는다고 할까. 그렇기에 미흡하거나 궁금한 사항이 있을 때 바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내 회사가 아닌, 처음 소속된 초등학교라는 사회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엄마의 일처리나, OOO의 일처리는 다르지 않을 거다.


이 일은 왜 해야 하는지(Objective), 어떻게 하면 좋은지(Strategy) 기획한 뒤 실행(Execution)과 그 후의 결과(Result)를 중간중간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의 어려운(또는 하기 싫은) 일은 적당히 내일로 미루고, 내일의 쉬운(또는 하고 싶은) 일은 미리 오늘로 가져오는 경우도 많을꺼다. 학생은 수익창출의 목적이 없으니 시행착오를 통한 '일하는 즐거움'과 평가를 바탕으로 한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면 된다. 공부도 그렇게...




#나의기질 VS #아이기질

이렇듯 귀찮은 나와 빠릿빠릿한 나가 충돌하며 지금의 온라인 개학 생활을 보내고 있다. 집콕 중에 경기도평생학습관에서 부모 수업을 종종 듣고 있는데, 나의 기질과 아이의 기질을 배운 게 인상적이었다. 내 뱃속에서 낳은 사랑하는 딸이지만 어쩔 땐 내 자식 같다가, 어쩔 땐 너네 아빠 자식 같기도 하다.


내 기질과 아이의 기질이 다르면 물론 갈등이 많이 생긴다. 그런데 닮으면 좋을까? YES 일 것 같지만, 강의 내용은 의외였다. 엄마의 아이의 기질 비슷할 때 물론 궁합이 잘 맞을 때도 있지만, 엄마의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아이를 비난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해 갈등이 심해진다고 한다. 엄마처럼 아이도 빠릿빠릿한 편이라고 하자. 엄마가 문제 해결할 때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진행과정을 미리 생각해놓고, 일을 처리한다고 할 때 엄마가 기대하는 일의 속도나 완성도는 매우 높은 편일 거다. 이에 비해 아이는 아직 속도나 완성도가 낮을 것이다. 이 경우 엄마는 아이에게 칭찬을 할까? 아니면 넌 왜 그것밖에 못하니? 또는 왜 그걸 몰라?라고 말할 수 있다. '과외쌤 구할 때 서울대생은 별로다.'라는 말(공부 잘한 애들은 공부 못한 애들의 마음을 몰라서 못 가르친다는 의미)처럼 나의 직업적인 성격이 오히려 아이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숙제 안 하고 노는 딸
구름 작성하기 연습


우리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구름 박스를 작성하는 강의도 들었는데 5개의 구름 속에 해당하는 문구를 채우는 것이다. 1) 가족 구성원의 주장을 먼저 작성하고, 2) 왜 필요한지 이유를 작성하고, 3) 마지막으로 우리가 각자 주장하는 공통된 목표를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난감은 치우지 않는 아이와 바로 치우길 원하는 엄마, 숙제를 하지 않는 아이와 바로 하길 원하는 엄마, 학원 안 가고 친구와 놀겠다는 아이와 학원 가길 원하는 엄마 등의 여러 갈등이 있을 때 타협, 꾸중, 회피하며 해결하지 않고 서로가 행복한 win-win 해결점은 소통하며 찾을 수 있도록 연습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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