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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롱님 Aug 24. 2020

8살, 코로나 입학생 #34 이 여름, 2월의 도돌이표

D+176  2020년 8월 24일


#2020여름의모습

2월 초였나, 코로나가 언제쯤 끝날까 전망할 때 더운 7~8월엔 안정권에 접어든다고 했었다. 습도가 높으면 바이러스 생존율이 떨어진다고. 그땐 여름이 오기 전까지의 몇 달을 어떻게 버틸까 공포스러웠다. 하지만 마스크를 쓴 채로, 마스크 안으로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숨 막히는 일상을 여름으로 보내고 있다.


6월 이른 초여름 더위 속 KF94, KF80 마스크에서 일회용 비말 마스크로 바꿨을 때 신세계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곧 바이러스가 진정될 테니 비말 마스크로도 여름을 버틸 수 있겠지? 했는데 다시 KF 마스크를 검색해 주문했다. 수요일 아침마다 인근 약국에 전화해서 언제 마스크가 입고되는지 물어보고 긴 줄을 서고 서서 마스크 할당량을 채우던 그때가 먼 옛날인 것 같은 기분... 아직도 서랍장엔 빼곡히 모아둔 KF 마스크가 있지만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 또 습관적으로 마스크를 주문한다. 뭔가 기운이 빠진다.


임시공휴일 지정하며 코로나 확산의 우려를 표했지만 예상외 이기적인 교회 발 코로나에 연휴 전 모두 무방비로 공격당했다. 2학기엔 서울 및 수도권도 주 3~4회 정도 등교할 수 있다는 희망에 여름방학이 내내 즐거웠다. 같은 반도 홀수냐, 짝수번호냐에 따라 편 나누기를 하던 아이도 이제 온전히 1학년 3반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확진자 그래프, 왜 이 동네에서 굳이 그 먼 성북구로 용인으로 교회를 다닐까? 여전히 비기독교인인 나는 이해할 수 없음을 표현하며 그들 역시 이기적이라고, 나는 비난할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EBS스트레스아웃

여름방학 동안 나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아이와 언쟁을 벌이거나, 아이에게 삐쳐 서운한 일이 거의 없었다. 매주 월요일이 되면 일주일 학습계획표를 만들어 체크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동화책 필사하기, 수학 연산 문제 풀기, 리딩게이트 하기, 탐구활동과 그림일기, 학습지는 주 2~3회 정도. 아침에 일어나 EBS를 보는 것이 일상이었던 지난 5개월과 달리 책상에 앉아 각자 할 일을 스스로 찾아 한 뒤 다양한 자유 시간을 가졌다. 문득 EBS를 봐야 한다는 것이, EBS를 통해 배움을 익힌다는 것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스트레스였다는 생각이 든다. EBS로 수업 듣는 아이를 계속 지적하고, EBS에서 배운 걸 온전히 흡수했다고 여기며, 아이 친구들과 비교하는 엄마의 문제가 컸다. EBS가 없으니 오히려 우리는 편해졌다. 1학기 동안 아이 기질, 육아 관련 인강을 들었던 걸 기억하며 이 아이의 기질에 맞게 학습법을 테스트해 볼 수 있었다.


학교 가기 전에 또박또박 큼직하게 쓰는 글씨가 멋있었는데 1학기 마지막이 되니 지렁이가 기어가는 힘 없는 얇고 작은 글씨체로 변해있었다. 급한 성격이기도 하지만 남들보다 빨리 쓰는 걸 잘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도서관에 가서 직접 읽을 책을 빌려오고, 좋아하는 동화책을 필사하는 건 책 읽기와 글쓰기에 좋은 방법이었다. 덕분에 나는 매우 오랜만에 원고지 작성법을 공부한다. 국어 10칸 노트에 띄어쓰기, 문장부호 익히기, 맞춤법 등을 한 번에 연습할 수 있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덕분에 그림일기를 쓸 때 단어 띄어쓰기와 문장부호 적기에 대한 이해가 늘었다. 글씨도 꽤 또박또박해진다.




수많은 연산 책 중에 아이가 좋아할 만한 큼직한 레이아웃, 그리고 아이의 승부욕을 자극할 수 있는 책을 골라왔다. 매일 A/B타입의 유형을 푸는 시간을 재어 속도와 정확성을 기록하는 교재인데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재고 그래프로 그리기 시작하니 아이는 흥미로워했다. 좀 더 쉬워하는 유형과 낯설고 어려워하는 유형을 파악할 수 있으니 고맙다. 그래도 빨리 숫자를 쓰려고 0,6,9를 비슷하게 쓰는 실수가 많다.


그동안 리딩게이트를 오래된 맥북으로 공부해왔다. 어느 날부터 방에서 혼자 하겠다고 했는데 앱에 들어가 리포트를 열어보니 아이는 나와 약속한 하루 영어책 3권 읽기를 지키지 않고 있었다. 아이는 진짜 3권을 읽었다고 말했지만 리포트에 기록된 수치는 거리감이 있었다. 맥북에 마침 문제가 생겨 며칠 스마트폰으로 리딩게이트를 했다. 스마트폰으로 하는 영어 공부라... 꽁이는 의외로 즐거운 마음으로, 능동적으로 리딩게이트를 하더라.


엄마는 엄마의 학습법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내가 30여 년 전에 공부했던 방법들이 여전히 통한다. 학습지, 학원, 교육방송은 그때도 유용했던 툴이다. 지금의 미디어와 디바이스를 활용한 방법을 잘 활용한다면 실보다 득이 많을 수도 있을 꺼란 생각이 든다. 큰 그림형, 행동형, 호기심 탐구형인 이 아이에겐.




#여름방학은새드엔딩

여름방학을 맞아 친정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휴가를 계획했다. 작년 여름에 2박 3일 휴가를 보낸 우리는 올해도 꽁이 여름방학을 기념해 시골 고택에 모여 놀기로 했다. 아버지의 본가이자, 어머니의 시가, 나의 친가이면서 아이에겐 외가가 되는 그 고택은 300여 년이 된 문화재다. 요즘 말로 #옥캉스를 바로 우리 집에서 보내는 것. 시골에 내려가기 전부터 외할아버지, 할머니와 먹을 양갱을 직접 만들고, 농협 몰에서 받은 급식 꾸러미 포인트로 보리굴비와 애플망고를 주문했다. 고택에서 차로 3분 거리 내에 있는 해수욕장에서 놀기 위해 물놀이, 모래놀이 장난감을 준비한 것도 당연.  그 고요한 문화재 전통마을에서 빗소리, 새소리, 햇살, 꽃과 과실을 보며 지내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건강한 부모님, 그리고 이제야 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 함께 여행할 수 있는 여덟 살 꽁이가 고마웠다.




여름방학의 마지막 주는 초등학교 입학식을 앞둔 2월의 모습이다. 코로나가 종식될 분위기로 졸업여행을 다녀온 후,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가 증가해 모든 일상이 올 스톱되던 그때의 2주가 오버랩된다. 하루에 주변 확진자가 17명이 뜬 며칠 전, 나는 다짐했다. 이 가을과 겨울, 집에서 또 아이만 뒷바리지 할 수 없다고. 코로나 19로 버려질 시간이 아니고, 버려진 시간도 아니다. 이 시간 안에서 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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